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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우크라 '대학살'로 작전 변경…굶겨서 굴복시키기 추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시민이 타이어로 만든 화분 풀 포기를 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시민이 타이어로 만든 화분 풀 포기를 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군에 의해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이 집단 희생된 ‘부차 대학살’로 국제 사회가 공분하고 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서방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푸틴 전문가’로 유명한 피오나 힐(57) 전 미국 백악관 고문은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대한 ‘배신자’라고 보고, 국가를 장악하려던 기본적인 전략에서 ‘대학살(carnage)’ 또는 ‘절멸’(annihilation)로 작전을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고 4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에 말했다. “푸틴의 시각에서 위협을 제거하는 방법은 상대를 완전히 박살 낸다는 의미”라면서다.

우크라이나인들의 격렬한 저항에 맞닥뜨린 푸틴의 대응은 단순히 목표를 이같이 변경하는 것이라는 게 힐 전 국장의 설명이다. 힐 전 국장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를 거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러시아 선임 국장을 지내며 푸틴을 6번 대면하기도 했다.

힐 전 국장은 또 모스크바 정가에 의한 푸틴의 실각 가능성은 작게 봤다. 그는 “푸틴이 모스크바의 핵심층으로부터 축출될 거라 믿지 않는다”며 “현재로서 서방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접근은 (푸틴이)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권좌에서 내려오기를 바라며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푸틴은 학살이나 인명 손실을 폭넓게 용인한다”며 그의 이런 신념(목표를 위해 인명 손실을 감수하는)이 러시아 국민의 시험대에 올랐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3일(현지시간) 러시아로부터 한달 넘게 포위된 채 공격받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아파트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일(현지시간) 러시아로부터 한달 넘게 포위된 채 공격받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아파트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푸틴이 전쟁을 끝내게 하려면 “그가 보기에 스스로 무언가를 얻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고 힐 전 국장은 서방 세계에 조언했다. 다만 그는 현재로서는 전쟁이 길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던 푸틴의 과거 사례를 볼 때, 푸틴은 긴 전쟁을 치르는 데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다.

또 “전세계 지도자들은 전술핵무기 사용 의지에 대한 러시아의 불분명한 발언과 관련해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핵보유국들은 일반적으로 ‘분명하고 실존적인 위협에 닥쳤을 때만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데, 러시아가 ‘실존적인 위협’에 대한 정의를 변경하고 있다면서다. 그는 서방 세계가 중국을 비롯한 다른 핵보유국들과 이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촉구했다.

폴리티코 “푸틴, 우크라이나 굶겨 굴복시키려 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뉴스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뉴스1]

일반적으로 대학살은 무력에 의한 제거를 뜻하지만, 봉쇄를 통한 절멸을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날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굶겨’ 굴복시키려는 작전을 세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90년 전 소비에트연방 독재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비에트 정권이 야기한 ‘홀로도모르’(기근으로 390만명 사망) 사태가 모델이 될 수 있다면서다.

폴리티코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농기구를 파괴하고 농작물이 자랄 토양에 지뢰를 심는 등 농지를 황폐화하는 행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항구를 장악해 해상 공급로를 차단한 것을 근거로 봤다. 17만5000명이 한 달 넘게 갇힌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이런 관점에서 상징적이다. 러시아 측은 수차례 “인도주의적 피란길을 열겠다”고 공언해 놓고도 이 지역으로 들어가는 구호물자를 통과시키지 않았다. 실제로 4일 국제적십자사(ICRC)는 민간인을 피란시키기 위해 마리우폴로 향하던 구조팀이 중간에 억류됐다고 밝혔다. 마리우폴은 지난달 13일부터 식량이 바닥난 상태로 전해졌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연합(EU) 농업위원 야누시 보이치에초프스키는 “(러시아가) 굶주림을 유발하고 이 방법을 침략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를 원한다는 해석이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농업부 장관 로만 레셴코도 3월 24일자 서한에서 “러시아가 1930년대 스탈린처럼 대규모 기아를 무기화하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영 매체 “우크라 나치 제거해야”

이를 뒷받침하듯 최근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나치 제거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칼럼이 국영 매체에 실려 눈길을 끌었다. 지난 3일 러시아 리아노브스티는 “무기를 든 나치는 전장에서 최대한 파괴되어야 한다”며 “나치 정부를 선출한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공범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식으로 민간인 살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칼럼은 또 “무자비한 나치를 제거하고, 나치적 요소를 제거한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면서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부정하는 주장을 거리낌없이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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