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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도 협찬도 절대 안쓰는데…116년 세계최고 명품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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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작고 예쁜 꽃이 핀다. 하나 둘 셋 넷…지금은 4시다. 요정이 정원 사이를 오가고, 엄마 새는 아기 새가 기다리는 둥지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프레데릭 레벨로 반클리프 아펠 한국 지사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프레데릭 레벨로 반클리프 아펠 한국 지사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의 보석과 시계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한 편의 입체(팝업) 동화책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작품에 이야기가 담겨있고, 곳곳에 숨겨진 장치가 있어 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특별하다.

반클리프 아펠은 1906년 파리의 보석 세공사 아들인 알프레드 반 클리프와 보석상 딸인 에스텔 아펠이 결혼하면서 두 집안의 성을 붙여 만들었다. 특히 116년 동안 별도의 스타 마케팅 없이도 두터운 고객층을 쌓아 온 것으로 유명하다. 오는 5월엔 서울 청담동에 연녹색 청잣빛을 띈 대표매장을 연다. 1989년 한국 진출 33년 만이다. 올해 새롭게 한국 수장을 맡은 프레데릭 레벨로 반클리프 아펠 코리아 지사장을 만나봤다.

1885년 에스텔 아펠과 알프레드 반클리프의 결혼식 사진. [사진 반클리프 아펠]

1885년 에스텔 아펠과 알프레드 반클리프의 결혼식 사진. [사진 반클리프 아펠]

보석을 지닌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보석이란 건 ‘마음의 조각(Piece of heart)’이다. 서울에 부임해 집을 보러 다녔는데 지금 집에 들어선 순간 ‘여기가 내 집이다’란 느낌이 들었다. 보석도 그렇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 마음에 다가와 말을 거는 보석이 있다. 그래서 보석은 마음의 일부를 사는 거라고 믿는다.”
저마다 최고라는 명품들이 많다. 반클리프 아펠만의 특징이 있다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브랜드라고 하고 싶다. 그걸 위해 ‘자연’과 ‘사랑’을 소재로 삼는다. 분위기는 서정적이고 꿈을 꾸듯 몽환적이다. 주된 소재인 숲·꽃·잎사귀·동물·나비·무당벌레 등 자연과 연인들, 모두 우리를 미소짓게 만드는 대상이다. 잘 보면 우리 꽃에는 가시가 없고, 동물엔 날카로운 발톱이 없다.” 
반클리프 아펠의 '플로럴 워치'. 무작위로 피어나는 꽃의 개수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반클리프 아펠의 '플로럴 워치'. 무작위로 피어나는 꽃의 개수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반클리프 아펠의 깃털 모양 브로치. 보석이지만 가볍게 흩날리는 듯한 느낌을 정교하게 표현했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반클리프 아펠의 깃털 모양 브로치. 보석이지만 가볍게 흩날리는 듯한 느낌을 정교하게 표현했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유난히 요정이나 발레리나가 많이 등장하는데.  
“춤, 특히 발레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가볍고 우아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자연 속에 피어나는 꽃이나 바람에 흩날리는 잎과 닮았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요정은 실제 발레리나들의 신체와 움직임을 본 따 만들어진다.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도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다.” 
반클리프 아펠의 요정과 발레리나 브로치. [사진 반클리프 아펠]

반클리프 아펠의 요정과 발레리나 브로치. [사진 반클리프 아펠]

반클리프 아펠은 강렬한 화려함이나 도발적인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다. 섬세하고 아기자기해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보석과 시계에 쓰인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란 평가다. ‘미스터리 세팅’의 경우 보석을 고정하는 금속이나 테두리가 보이지 않게 해 원석 자체의 크기와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시계도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과 달이 실제 공전 주기 그대로 움직이고, 꽃봉오리가 무작위로 피어나며 시침 역할을 하는 등 고도의 기술이 담겼다.

보석의 고정부분이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 세팅' 기술을 적용한 반지. 1972년작. [사진 반클리프 아펠]

보석의 고정부분이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 세팅' 기술을 적용한 반지. 1972년작. [사진 반클리프 아펠]

최첨단 기술을 강조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는 보석을 고르고 세공하는 장인들을 ‘맹도르(Mains d’Or)’라고 부른다. ‘손(Mains)’과 ‘황금(Or)’, 즉 최고의 ‘금손’들이다. 하지만 장인정신은 스토리를 구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늘 먼저 스토리를 생각한 뒤 제작에 들어간다. 베로나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로미오와 줄리엣’ 컬렉션, 방주에 오른 동물 커플의 여정을 담은 ‘노아의 방주’ 컬렉션 등이 그 예다.”
반클리프 아펠의 '로미오와 줄리엣' 브로치 제작 전 그림작업 모습.[사진 반클리프 아펠]

반클리프 아펠의 '로미오와 줄리엣' 브로치 제작 전 그림작업 모습.[사진 반클리프 아펠]

이야기를 넣다보니 많은 제품이 ‘변형’된다. 목걸이를 분리하면 팔찌 두 개가 되고, 팔찌 장식을 떼어내면 반지나 브로치가 되는 식이다. 비밀 이야기가 담기기도 한다. 목걸이 장식 뒷면에 새 둥지가 있다든지, 잎사귀 속에 무당벌레가 숨어있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럭셔리’다.

값비싼 보석과 시계치고 의외로 재미있다.
“우리 삶이나 자연을 즐겁게 하는 게 유머나 의외성이지 않나. 그래서 사자 브로치의 머리를 마구 흩트려놓는다든지, 강아지가 혀를 빼꼼히 내민 모습을 표현하기도 한다. 정오와 자정에 다리 위에서 연인이 만나는 시계에도 키스하기 전에 아주 잠깐 망설이는 움직임을 넣었다.”
반클리프 아펠의 사자 브로치. 1964년작. 프데데릭 레벨로 신임 지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인터뷰 중 옷깃에도 꽂았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반클리프 아펠의 사자 브로치. 1964년작. 프데데릭 레벨로 신임 지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인터뷰 중 옷깃에도 꽂았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정오와 자정에 연인들이 만나도록 설계된 반클리프 아펠의 '사랑의 다리' 시계. 계절에 따라 네 가지 버전이 있다. 사진은 '봄'의 시계. [사진 반클리프 아펠]

정오와 자정에 연인들이 만나도록 설계된 반클리프 아펠의 '사랑의 다리' 시계. 계절에 따라 네 가지 버전이 있다. 사진은 '봄'의 시계. [사진 반클리프 아펠]

한국에도 반클리프 아펠의 애호가로 알려진 유명인이 많다. 하지만 반클리프 아펠은 연예인 등을 모델로 기용하거나 홍보 목적으로 협찬하지 않는다.
로베로 지사장은 이에 대해 “우리의 스타는 바로 제품이다. 요란하게 드러내는 건 자연을 영감으로 하는 브랜드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예술가와의 협업은 늘 환영한다”며 “한국의 서영희 아트 디렉터가 한지를 사용해 베스트셀러인 ‘알함브라’ 컬렉션을 재해석했을 때 정말 감동했다”고 소개했다.

네잎 클로버는 반클리프 아펠을 대표하는 '알함브라' 컬렉션의 대표 소재다. 사진은 지난 2020년 겨울 서영희 아트 디렉터와 협업한 목걸이. [사진 반클리프 아펠]

네잎 클로버는 반클리프 아펠을 대표하는 '알함브라' 컬렉션의 대표 소재다. 사진은 지난 2020년 겨울 서영희 아트 디렉터와 협업한 목걸이. [사진 반클리프 아펠]

한국은 최근 몇 년 사이 럭셔리 보석·시계 업계의 중요한 시장으로 떠올랐다. 반클리프 아펠도 오는 5월4일 서울 청담동에 5층짜리 대표매장을 연다. 세계적인 건축가 산지트 만쿠와 디자이너 패트릭 주앙이 설계와 인테리어를 맡았다. 이들은 한국을 둘러보던 중 청자와 수려한 산세에 깊은 인상을 받아 건물에 반영했다. 세라믹을 사용해 빛에 따라 오묘하게 변하는 청잣빛 외벽을 표현하고 내부엔 4계절을 주제로 정원을 꾸몄다.

한국 시장의 특징이 있다면.
“보석이나 시계는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독창성을 인정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한국은 과거보다 ‘최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문성과 식견, 취향이 크게 높아졌다고 느낀다. 특히 보석을 순수예술처럼 접근해 자손에 물려주거나 투자의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더 많은 분에게 우리의 철학과 창의성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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