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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대못 ‘비대한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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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민근 기자 중앙일보 경제산업디렉터
조민근 정책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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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범하자 관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폐지가 예고된 여성가족부만이 아니었다. 각 부처는 인수위원 면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저마다 조직의 역할과 기능을 지키기 위해, 혹은 키우기 위해 언론과 목소리 큰 인사들을 상대로 치열한 물밑 여론전도 펼쳤다. 통폐합이 거론되는 부처 관련 단체와 학계에선 불만 가득한 ‘홀대론’이 흘러나왔다. 정권교체기면 벌어지는 관가의 생존게임이 어김없이 시작된 것이다. 인수위에서 그리는 국정 우선순위, 조직개편 방향에 따라 부처와 관료들의 향후 5년의 운명도 정해지니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엔 유독 극성맞다. 압권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가 벌인 통상교섭권 쟁탈전이다. 경쟁적인 ‘언론 플레이’가 횡행하는 가운데 상대에 유감을 표하는 공개 입장문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인수위가 “조직개편은 이제 논의를 시작한 상황”이라며 말리고 나서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정부 개편 앞두고 ‘홀대론’ 견제
이전투구식 조직 쟁탈전 불사
‘작은 정부’에 강력한 저항 예고

비대한 정부.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비대한 정부.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두 부처는 통상 기능을 뺏고 빼앗기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리턴 매치’를 벌여왔다. 각자의 명분과 논리도 팽팽하다. 서로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본부가 외교부에 있던 시절, 또 산업부로 옮겼을 때 모두 겪어본 기자의 생각은 ‘정해진 답은 없다’는 것이다. 나라마다 통상교섭권을 갖는 부처가 다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정작 통상직들 사이에선 어느 부처에 있든 “2중대 취급받는다”는 불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노골적인 진흙탕 싸움까지 벌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염불’보다 ‘잿밥’에 대한 동기가 더 강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조직이 커지면 자연히 예산과 간부 자리도 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부는 기존 산업정책 담당 차관, 통상교섭본부장에 이어 에너지 담당 차관 자리를 신설하며 차관만 세 명인 ‘매머드 부처’로 등극했다.

단지 두 부처만의 문제는 아니다. 쏟아지는 각종 ‘홀대론’의 근저에도 여론을 일으켜 권한과 자리를 지키겠다는 관료조직의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내 건 ‘작은 정부’에 대한 집단적인 경계감도 표출되고 있다.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달 28일 “‘작은 정부’ 개편안에 강력히 유감을 표명하며 당장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관료사회가 이처럼 예민해진 건 그만큼 지킬 게 많아졌다는 의미다. 지난 5년간 정부는 몸집을 불릴 대로 불려 놓았다. 지난해 말 기준 공무원 정원은 115만6952명에 달했다. 2016년 말보다 12만7481명이 늘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의 증가 폭(5만4000명)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일선 공무원만 늘어난 게 아니다. 이런저런 명분으로 고위직도 늘렸다. 예컨대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한다며 질병관리본부를 외청으로 독립시키면서 보건복지부에는 보건담당 차관 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자리를 늘린 만큼 일은 더 잘했을까. 오히려 효율은 떨어지고 책임 소재는 모호해졌다. 복지부 중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질병청은 연일 엇갈리는 메시지를 내놓으며 오히려 혼선만 부추겼다는 평가다. 또 부처는 커졌지만 정책 주도권은 청와대로 넘어가며 오히려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매머드 부처가 된 산업부 역시 무리한 ‘탈(脫)원전’ 드라이브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며 뒷수습하기에 바빴다. 오죽하면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나왔겠나.

팽창을 거듭하는 건 관료조직의 속성이다. 영국의 패권이 저물던 20세기 초 군함과 해군 병사는 주는데 행정직원 수는 오히려 늘었고, 관리해야 할 식민지는 줄었지만 식민청 직원은 오히려 증가했다. 영국 저술가 노스코트 파킨슨은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을 ‘팽창 본능’에서 찾았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기존 직원이 승진하기 위해 직원이 늘고, 인력이 늘면 보고·감독 등 부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직원이 다시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파킨슨 법칙’이다.

이런 관료조직 본능을 현 정부는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겼다. 덩치를 키운 정부와 예산의 혜택을 받는 관변단체 등 이해관계자도 따라 늘었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기득권의 저항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여소야대 국회 역시 만만찮은 장벽일 것이다. 하지만 ‘크고 비효율적인 정부’라는 ‘대못’을 그대로 두고는 당선자가 내건 규제 완화, 민간의 활력을 기대하긴 어렵다. 험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하나하나 뽑아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청와대에 난립한 옥상옥 조직부터 슬림화하겠다는 약속을 확실히 지키는 게 그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