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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모두 민간인…세계가 분노한 부차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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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러시아군이 한 달여간 점령한 후 퇴각한 우크라이나 북서부 소도시 부차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 학살)’가 일어났다는 정황이 3일(현지시간) 속속 드러나면서 이번 전쟁이 또 다른 변곡점을 맞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더욱 강도 높은 대러시아 제재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러시아의 전쟁 범죄 혐의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다.

이날 CNN·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키이우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약 37㎞ 떨어진 소도시 부차의 한 교회 앞마당에는 실종 가족을 찾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이곳에서 14m 길이의 민간인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CNN은 시신이 겹겹이 쌓여있어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3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철수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부차에서 시 직원들이 거리 등에 방치된 민간인 희생자의 시신을 검은색 비닐백에 수습해 옮기고 있다. 이날 부차의 한 교회 앞마당에서는 최소 118구의 시신이 매장된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 [AFP=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철수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부차에서 시 직원들이 거리 등에 방치된 민간인 희생자의 시신을 검은색 비닐백에 수습해 옮기고 있다. 이날 부차의 한 교회 앞마당에서는 최소 118구의 시신이 매장된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 [AFP=연합뉴스]

아나톨리 페도루크 부차 시장은 “교회 매장지에서 발견된 시신이 118구에 달한다”며 “거리·공원·광장 등에 있는 시신을 수습해 정확한 수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키이우 외곽에서 발견된 민간인 시신 410구가 옮겨졌으며, 법의학 전문가들이 140구를 검시했다”며 “부차의 민간인 매장지는 러시아의 전쟁 범죄 의혹 사건 2500건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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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부차에서 주민들이 집단 매장지(아래 사진)에 모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는 국가 전체를 말살하려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부차에서 주민들이 집단 매장지(아래 사진)에 모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는 국가 전체를 말살하려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지역에서 다수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이날 가디언은 전했다. 사진작가인 미하일 팔린차크가 공개한 키이우 외곽 고속도로에서 찍은 남성 1명과 여성 3명의 시신 사진에서 여성들은 나체였으며, 신체 일부가 불에 탄 상태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미국 CBS방송에 출연해 “러시아군이 국가 전체를 제거하려 한다”면서 “이는 제노사이드”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이에 반발했다. 4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화상 기자회견에서 “부차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우크라이나 측의 민간인 학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 문제가 국제적 수준에서 논의되길 원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단 매장지. [AFP=연합뉴스]

집단 매장지.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일부 유럽연합(EU) 국가들과 노르웨이, 스위스, 아이슬란드 등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국가’ 국민에 대한 비자 발급 간소화 제도를 중단키로 했다.

국제사회의 대응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군의 전쟁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노가 대러시아 추가 제재의 ‘추진력’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로부터 원유와 가스를 수입하는 국가는 이를 정당화하기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매우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침략 이후 러시아군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고 있다”며 “국무부를 포함한 관련 조직과 기관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들을 정확하게 평가하도록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을 자료로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 부차 민간인 학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러시아군 부차 민간인 학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날 워싱턴포스트(WP)는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 2명을 인용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러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와 교역하는 제3국에 대한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 정상들도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의 비열한 공격”(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러시아는 이런 범죄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고 강하게 규탄했다. 동시에 그간 러시아산 가스 수입 금지에 반대 의견을 피력해온 독일 등 유럽에서도 입장 변화가 나타났다.

역대 집단학살 사례.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역대 집단학살 사례.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도이체벨레 등에 따르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서방 동맹국들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에 동의할 것”이라면서 “푸틴과 그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느낄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곧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군의 전쟁 범죄 혐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조사도 이뤄지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부차에서 살해된 시민들의 사진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며 “독립적인 조사가 책임 소재를 효과적으로 밝히기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 WSJ에 따르면 앞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전쟁 범죄를 확인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조사단을 파견했으며 목격자들이 신고할 수 있도록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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