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410구 쏟아진 '부차 학살'…미·유럽 "러 전쟁범죄 책임져야"

중앙일보

입력 2022.04.04 19:03

업데이트 2022.04.05 14:25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탈환한 수도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 등에서 러시아군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례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제사회가 들끓고 있다. 미국은 물론, 그간 러시아의 석유·가스 수출에 대한 제재를 꺼려온 유럽 국가들까지 더 강력한 제재 필요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부차 대학살’이 중국 등 대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국가들을 겨냥한 ‘세컨더리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3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에 의한 부차 등지의 민간인 희생을 ‘전쟁 범죄’로 규정하면서 "매우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무부를 포함한 관련 조직과 기관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들을 정확하게 평가하도록 자료로 만들고 있다"면서 "미국과 유럽 파트너들은 매일 새로운 러시아 제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도시의 주거지역 공터에 조성된 러시아군 공격에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임시 묘지. EPA=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도시의 주거지역 공터에 조성된 러시아군 공격에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임시 묘지. EPA=연합뉴스

앞서 러시아군의 퇴각 이후 키이우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약 37㎞ 떨어진 도시 부차의 한 교회에선 민간인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 아나톨리 페도루크 부차 시장은 “집단 매장지에 묻힌 시신의 수가 118구에 달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에 따르면 키이우 외곽에서 발견된 민간인 시신이 현재까지 410구에 이른다. 러시아군이 부차에 있던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볼로미디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를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라고 규탄하는 한편,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사법 기구 창설을 승인했다. 나치 독일 히틀러의 무차별 학살을 연상시키는 이번 '부차 참상'에 세계 정상들은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의 비열한 공격"(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러시아는 이런 범죄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는 등 한목소리로 개탄했다. 

美, 대러 추가 제재 검토...블링컨 "분개" 

3일 부차의 한 시민이 남편이 러시아군에게 살해된 경위를 설명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일 부차의 한 시민이 남편이 러시아군에게 살해된 경위를 설명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워싱턴포스트(WP)는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 2명을 인용해 키이우 인근에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살해에 관한 명백한 증거가 발견됨에 따라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대러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제재 방안으론 러시아와 무역을 이어가는 나라에 대한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와 광물·운송·금융 등 분야에 대한 추가 제재 가능성이 거론된다고 WP는 전했다. 2차 제재가 발동될 경우 러시아와 거래한 제 3국의 기업·기관 등은 미국 제재 위반으로 간주된다.   

WP는 "이 조치는 중국·인도 등 친러 국가에 미국과 러시아 중 어느 쪽과 교역해야 할지 선택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미 재무부 선임고문 출신인 댄 캐츠 엠버웨이브파트너스 창업자는 "2차 제재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 봉쇄령'에 해당되는 매우 강력한 규제"라고 평했다. 다만 미 정부의 구체적인 대러 추가 제재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러시아군 부차 민간인 학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러시아군 부차 민간인 학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유럽에서도 "러시아산 가스 수입 금지해야"  

러시아군이 퇴각한 후 키이우 인근 부차의 교회에서 발견된 민간인 집단 매장지. AFP=연합뉴스

러시아군이 퇴각한 후 키이우 인근 부차의 교회에서 발견된 민간인 집단 매장지. AFP=연합뉴스

특히 그간 러시아산 가스 수입 금지에 반대 의견을 피력해 온 독일 등의 입장 변화가 두드러진다. 도이체벨레·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크리스티네 람브레흐트 독일 국방부 장관은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가스 수입 중단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서방 동맹국들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에 동의할 것"이라면서 "푸틴과 그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느낄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이) 새로운 제재로 이어질 분노를 촉발하고 있다"며 "곧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트위터에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EU 차원의 강력한 5차 제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러시아에 대한) EU의 추가 제재를 준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로이터통신은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 금지 조치할 경우 러시아는 수천억 달러의 외화 수입을 잃게 되고, 유럽과 나아가 세계 경제에 충격을 안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ICC 조사 착수...유엔도 나서나  

젤렌스키 대통령. EPA=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 EPA=연합뉴스

국제 기구 차원의 전쟁 범죄 조사 요구도 잇따르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부차에서 살해된 시민들의 사진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며 "독립적인 조사가 책임 소재를 효과적으로 밝히기 위해 중요하다"고 했다.

WSJ에 따르면 앞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전쟁 범죄를 확인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조사단을 파견했으며 목격자들이 신고할 수 있도록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한 상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국제형사재판소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범죄에 대해 수사를 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역대 집단학살 사례.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역대 집단학살 사례.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한편 이날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14일까지 체르니히우와 하르키우, 키이우 등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지역에서 발생한 여러 전쟁 범죄 사례를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는 러시아군의 반복된 강간 범죄와 남성 6명에 대한 살해, 민간 재산 약탈 등이 포함됐다. 휴 윌리엄슨 HRW 유럽·중앙아시아 국장은 "우리가 기록한 사건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에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의적인 잔혹 행위와 폭력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다수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신고된 피해 사례에는 집단 성폭행,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저지른 성폭행도 있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러나 전쟁범죄 사건은 ICC에 제소할 순 있지만 법원에 집행력이 없기 때문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고위 관리들이 실제로 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NYT는 전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ICC의 판결을 집행할 수 있지만 러시아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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