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모르는데 자립이라니"…서울시 '탈시설 조례' 뭐길래

중앙일보

입력 2022.04.04 05:00

업데이트 2022.04.04 05:59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부모회)가 지난달 29일 오전 지하철역에서 '탈시설 반대' 시위를 열고 있다. [사진 부모회]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부모회)가 지난달 29일 오전 지하철역에서 '탈시설 반대' 시위를 열고 있다. [사진 부모회]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돕는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안)’가 논란이다. 자립할 수 있는지 의문인 (최)중증 발달장애인까지 조례 지원대상에 포함돼서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부모회)는 “무리한 탈시설은 오히려 인권유린”이라며 조례 제정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 반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탈시설은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라며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탈시설 조례' 무슨 일이 

서울시는 지난해 3월 전국 최초로 ‘탈시설 조례’ 제정 계획을 발표했다. 그해 말까지 조례를 제정하고, 2022년까지 800명 장애인의 탈시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는 2009년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지원사업을 시범 운영해왔다.

하지만 서울시의 이같은 계획이 알려진 후 특히 발달장애인 부모의 반발을 불러왔다. 장애인 거주 시설 이용자의 80%는 발달장애인이다. 부모회는 서울시의 탈시설 조례 제정 이후 혼자 생활이 불가능한,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까지 자립대상에 포함돼 시설을 벗어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김현아 부모회 대표는 “글씨도 말도 모르는 중증 발달장애인들에게까지 조례를 통해 ‘자립 생활’을 강요하는 건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자립 지원에 관한 조례(안) 중 일부. 탈시설 반대측은 특히 제4조에 대해 상위법인 장애인복지법과 충돌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탈시설 조례안 캡처]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자립 지원에 관한 조례(안) 중 일부. 탈시설 반대측은 특히 제4조에 대해 상위법인 장애인복지법과 충돌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탈시설 조례안 캡처]

법적 대리인을 통한 '탈시설' 가능성

실제 조례(안) 4조를 보면, ‘장애인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능력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되면 서울시장이나 자치구청장이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보호자가 없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얼마든지 탈시설될 수 있단 의미다.

지난해 4월 폐쇄된 경기도 김포 A장애인 거주시설의 경우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퇴소한 일이 있었다. ‘퇴소 동의서’엔 본인 명의 도장을 찍었다. 해당 장애인은 한국형 간이정신상태검사(K-MMSE) 결과 0점(30점 만점)을 받았다. 시계·볼펜과 같은 사물의 이름을 댈 수 없고, ‘100-7=?’ 수준의 계산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시설 퇴소에 ‘동의’한 것으로 돼 있다. 법적대리인이 지명돼 가능했다.

부모회 관계자는 “부모가 사망한 뒤 (거주시설에 홀로) 남겨진 발달장애 자녀가 이런 방법으로 시설 밖으로 내몰리는 게 아닌지 가장 걱정된다”고 밝혔다.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회원들이 지난해 8월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인 탈시설 정책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뉴스1]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회원들이 지난해 8월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인 탈시설 정책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뉴스1]

"장애인거주시설 입소 지금도 '바늘구멍'인데" 

부모회는 서울시의 ‘탈시설 조례’ 제정 이후 타 시·도로 확산, 가뜩이나 부족한 장애인 거주시설이 더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현재도 거주시설 입소는 ‘바늘구멍’이다. 한 발달장애인 보호자 A씨(68)는 최근 투석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30대 아들을 더는 돌볼 형편이 못된다. 아들을 맡길 곳을 찾으려 수도권 내 장애인거주시설 다섯 군데 이상을 돌아다녔지만, 모두 거절 당했다. “자리가 없다”는 이유였다.

A씨는 “‘엄마’ 소리도 못할 정도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애다. (데리고 있으려 해도)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언젠가는 시설에 보내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 같다. 앞으로가 정말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29일 오전 대통령직인수위와 면담이 진행되는 시각 서울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29일 오전 대통령직인수위와 면담이 진행되는 시각 서울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탈시설 조례 지방선거 전에 제정해야”

장차연 등 장애인 인권 단체는 오히려 “탈시설 조례를 지방 선거 전에 제정하라”는 입장이다.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자립생활주택 공급’을 시작으로 탈시설 정책이 추진됐는데도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조례)가 매번 미뤄져왔기 때문이다. 탈시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제대로 정착해 생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는 “UN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탈시설’ 용어를 지자체 조례에 언급한 것만으로도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조례를 통해 탈시설 이후 안정적인 삶의 형태가 보장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하고 시설 종사자들에 대한 고용보장정책도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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