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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하의 시시각각

성공한 문 대통령, 실패한 문 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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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디렉터

김정하 정치디렉터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초 지지율이 80%대를 오르내렸을 때 임기 말이 되면 문 대통령도 예외일 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대통령은 누구나 처음엔 화려하게 출발하지만 마지막엔 반드시 초라해지고 만다는 이른바 ‘지지율 붕괴의 법칙’에서 말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임기말 역대 최고 40%대 지지율 #지지층만 바라 본 통치전략 덕분 #나라는 두 쪽, 5년 만에 정권 내줘

지난 1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42%에 달했다. 올해 들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하고 난 이후에도 지지율이 끄떡없다.

한국갤럽이1일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      자료:한국갤럽

한국갤럽이1일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 자료:한국갤럽

그런데 역설적으로 문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 도입 이후 집권 5년 만에 정권을 야당에 내준 첫 사례다. 역대 최고의 지지율을 자랑하지만 어이없게도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임기 마지막 석 달 지지율 평균(한국갤럽)이 24.1%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21.1%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는데 그보다 훨씬 지지율이 높은 문 대통령은 왜 실패한건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전례 없는 극단적인 통치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의 설계자들은 과거 노무현 정권이 무너진 이유가 진영 내부의 분열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 5년을 관통하는 통치 전략 2개가 세워졌는데, 그 첫 번째는 아무리 중요해도 지지층이 싫어하는 정책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를 추진해 지지층의 대거 이탈을 자초했다. 지금 와선 노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평가받지만 당시엔 좌파의 비판이 대단했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도 열린우리당 지지층이 크게 반발했으며, 심지어 임기 말에 인기 없는 국민연금 개혁까지 단행했다.

노무현(왼쪽) 대통령이 2007년 4월 2일 청와대에서 한.미 FTA 타결에 대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오른편에 문재인(오른쪽에서 세번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병준(오른쪽 첫번째) 당시 대통령 정책특보가 서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왼쪽) 대통령이 2007년 4월 2일 청와대에서 한.미 FTA 타결에 대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오른편에 문재인(오른쪽에서 세번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병준(오른쪽 첫번째) 당시 대통령 정책특보가 서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래서 문 대통령은 5년 동안 지지층의 호감을 살 수 있는 적폐청산, 반일, 남북정상회담, 최저임금 인상 같은 것만 열심히 했다. 지지층이 반발할 정책은 일절 꺼내지 않았다. 보험료 인상을 좋아할 사람이 없으니 국민연금 개혁은 손을 놨고, 민노총 눈치를 살피느라 노동개혁은 엄두도 못 냈다. 골치 아픈 방폐장 추가 건설은 차기 정권에 떠넘겼다. 전기료ㆍ도시가스요금도 임기 내내 꾹꾹 억누르더니 대선이 끝나니까 슬그머니 인상했다. 나라엔 골병이 들어도 인기 관리엔 큰 효과를 봤다.

두 번째 전략은 진영 내부에서 대통령을 성역화하고 일체의 도전을 용납지 않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여권에서 확실한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이 기용한 복지부 장관(김근태)으로부터 “계급장 떼고 논쟁해 보자”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대통령의 취약한 리더십이 노무현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본 문재인 정권은 대통령 보위(保衛)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것들은 모조리 척결 대상으로 취급했다. 여당에서 청와대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는 의원들에겐 ‘문파’들의 문자폭탄이 쏟아졌다. 당론에 반기를 든 의원은 징계를 받고 탈당을 선택했다. 대통령 측근인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가 벌어지자 ‘불손한 검찰’을 응징하자며 정치권 안팎의 친여 세력들이 총출동해 난리법석을 떨었다. 친여 성향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이건 아니지 않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정권은 귀를 막았다.

2019년 9월 28일 오후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이른바 '조국 수호' 집회.  [뉴스1]

2019년 9월 28일 오후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이른바 '조국 수호' 집회. [뉴스1]

이런 통치는 지지층의 열광을 이끌어내기 쉽지만, 반드시 반대편에선 그보다 더 큰 환멸과 증오가 쌓이기 마련이다. 중도층의 이탈을 막으려면 임기 중반 이후엔 통치 전략에 변화를 줬어야 하는데 5년간 한 길로만 달렸다. 결국 나라는 두 쪽이 났다. 그에 대한 민심의 판정이 이번 대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일까?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로 퇴임한다는 측면에선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성공한 정권일까? 5년 만에 야당에 권력을 뺏긴 정권을 그렇게 보긴 어렵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남긴 얄궂은 패러독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