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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상욱의 미래를 묻다

과학과 기술의 융합시대, 그 성장판은 기초과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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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과학의 미래, 과학의 위기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올해는 국제연합(UN)이 정한 ‘기초과학의 해’다. 오는 19일 한국 선포식을 시작으로 강연 등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정확히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세계 기초과학의 해’인데, 이 특별할 것 없는 이름이 ‘기초과학이 국제 사회가 나서 지켜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인가’라는 의문을 일으켰다. 2021년 아동노동 근절의 해, 2019년 토착언어의 해, 2009년 고릴라의 해처럼 말이다.

기초과학의 위기가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니 유엔이 나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005년 특수상대성이론 100주년을 기념해 ‘물리학의 해’가 선포된 이래 2009년 ‘천문의 해’, 2011년 ‘화학의 해’, 2014년 ‘결정학의 해’, 2015년 ‘빛과 광학기술의 해’, 2016년 ‘파동의 해’, 2019년 ‘원소주기율표의 해’까지 유엔이 정한 과학의 해가 여러 차례 이어져 왔다. 만약 이것이 위기의 상징이라면, 기초과학의 위기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다는 얘기다.

또 다른 의문은,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목적을 붙여야 하는가’이다. 혹시 기초과학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말하는 것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더니 유엔이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SDG)에서 기초과학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 맞았다. 마치 “기초과학은 지속가능한 개발에도 쓸모가 있다니까”라고 강변하는 듯하다. 기초과학의 위기는 지난 수십 년간 서서히 진행됐다. 위기 극복의 희망도 밝지 않다. 그래서 더 심각한 위기다.

올해는 유엔 선정 ‘기초과학의 해’
“돈이 돼야” 시장논리에 미래 암울

과학에 무관심한 ‘과학문맹’ 늘어
기술패권주의도 기초학문 위협

미지의 세계를 밝혀온 과학의 힘
과학은 인류공동체의 ‘믿을 구석’

17세기 과학혁명이 바꾼 세상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소설 『새로운 아틀란티스』에 등장하는 이상국가 ‘벤살렘’. 자본주의 체제에서 과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진보와 풍요를 이룩하는 사회를 그렸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소설 『새로운 아틀란티스』에 등장하는 이상국가 ‘벤살렘’. 자본주의 체제에서 과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진보와 풍요를 이룩하는 사회를 그렸다.

17세기 과학혁명으로 현대 과학이 태동했다. 핵심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얻는 경험적 증거다. 증거가 수리와 논리를 거쳐 가설을 검증한다. 반증에 열려 있되 반대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면 검증된 가설은 이론이 된다. 과학 이론은 현시점에서 가장 그럴듯한 모형이며 집단지성의 합의다. 과학은 야만의 시대를 끝내고 합리적 이성으로 작동하는 현대 사회의 밑그림을 그렸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1626년 소설 『새로운 아틀란티스』에는 과학이 중심에 있는 이상국가 ‘벤살렘’이 등장한다. 토머스 모어의 1516년 소설 『유토피아』가 공산주의적 이상사회를 그렸다면 벤살렘은 프로테스탄트 자본주의 체제에서 과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진보와 풍요를 이룩하는 사회로, 요즘 말로 ‘과학기술 중심 국가’고, 끊임없이 추구되어 온 이상향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프랜시스 베이컨

지난 300여년간 과학은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었다. 과학은 미신을 타파했을 뿐 아니라 종교의 힘을 약화시켰다. 또한 과학은 믿음직하고 쓸모있는 도구였다. 호주의 과학사학자 존 개스코인은 저서 『과학과 국가』에서 19세기 초 과학자들이 도량형 정비와 등대 설치와 같은 일에서 능력을 발휘했고, 이것이 과학과 국가의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19세기 중반 과학은 한량의 취미에서 벗어나 전문직업이 되었고, 독지가의 후원이 아닌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됐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과학 연구뿐 아니라 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의 조직적 지원체계를 공고히 했다. 기술은 과학의 응용이라는 과거의 상식을 깨는, 기술 발전이 과학적 발견을 가능케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과학과 기술을 묶고 연구와 개발을 묶어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슘페터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뒤 대기업이 자체 연구소에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을 목격하고 발명가와 혁신가를 별개로 보았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과학기술은 새로운 산업을 낳고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끄는 동력으로 역할해 왔다. 연구개발로 혁신을 창출하고, 혁신에 대한 기대가 금융투자를 당긴다. 혁신이 경쟁력이 되어 부를 창출하고, 이것을 다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순환 구조가 현대의 과학기술혁신 자본주의의 양식이다. 역설적이게도 ‘잘나가는’ 과학기술이 기초과학의 위기를 잉태했다. 과학이 경제의 도구가 되어 스스로 응용과학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 체제경쟁과 과학기술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와 신공공관리론이 득세하면서 기초과학에도 성과주의가 적용됐다. 비용 대비 편익이나 효용을 증명해야 한다. 기술이전 수입을 따지고, 돈 안 되는 연구는 논문 편수라도 많아야 한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국가 간 이념 대립과 체제 우월성 경쟁은 기술 경쟁력을 무기로 하는 무역 전쟁으로 바뀌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거나 양적 지표로 평가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나랏돈을 쓰는 만큼 성과를 내야 하는 책무는 당연하다.

하지만 기초과학의 존재 의미인 장기적이고 간접적인 성과가 평가절하되는 게 문제다. 연구는 시장화되었다. 프로젝트 연구는 정부 용역 경쟁 입찰에 다수의 연구자가 경쟁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에 어울리지 않는 기초과학의 입지는 계속 좁아 들었다. 이런 현상들은 여전히 진행형이어서,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이비과학과 음모론 기승

그럼에도, 미래 사회는 기초과학을 계속 지원할 것인가. 이 질문은 과학정책 연구자인 필자에게는 일생의 질문이다. 아마 산업경제적 목적이 뚜렷한 응용과학 연구와 기술개발은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기초과학의 미래는 우려스럽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과학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 과학자들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개탄하면서도 ‘과학기술은 중요하니까’라는 당위론에 의지해 기술에 묻어가는 것 같다. 과학의 미래를 생각하며, 닥쳐올 위기에 대한 경고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과학이 고도로 전문화하고 분화하면서 대중과 과학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대중은 과학 연구실에서 어떤 활동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과학 학술지는 좁은 같은 분야 연구자들끼리만 읽을 뿐이다. 학술지 개수는 나날이 증가한다. 과학연구 커뮤니티가 세분화하고 각각 딴살림을 차려 고립을 가속하는 것이다. 과학에 무관심한 ‘과학 문맹’이 늘어나고 있다. 과학 문맹이 당연한 사회에는 사이비과학과 괴담, 그리고 음모론이 똬리를 튼다.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 조치에 반발하고 백신 괴담이 퍼진 몇몇 선진국에서 이미 목격된 모습이다. 대중의 과학 문해력(science literacy) 향상은 세계 각국에서 중요한 정책적 과제가 됐다.

둘째, 과학지식 생산이 한계에 다가가고 있다. 과학에는 한계가 없지만, 과학지식 생산의 한계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과학의 눈부신 진보는 엄청난 양과 질의 과학지식을 축적했고, 이제 인류는 자연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남은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려면 극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갈릴레이가 목성의 위성을 관측한 장비는 흐릿한 망원경 한 벌이었고, 톰슨이 전자를 발견한 실험장치는 작은 음극선관이었다.

오늘날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약 100억 달러(한화 약 12조원) 짜리이고 힉스 입자를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가속기(LHC)의 건설비는 75억 유로(한화 약 10조원) 이상이다. 첨단화한 과학은 재현성 위기(reproducibility crisis)를 낳고 있다. 2016년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과학자 대상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한 연구실의 실험 결과가 다른 실험실에서 재현, 검증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과학 연구의 신뢰성과 과학 지식의 보편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셋째, 첨단과학과 기술의 간극이 거의 사라진 가운데, 기술패권주의의 부상이 과학의 위기를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 분야는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의 간극이 매우 작다. 2006년 미국 펜실베이나대학 연구실에서 시작된 mRNA 백신 개념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극적으로 상용화되었다. 양자컴퓨터는 극저온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의 융합이다. 기술패권주의는 그동안 인류의 공공재로 여겨졌던 기초과학에도 국경을 그을 공산이 있다. 폐쇄주의와 배타성은 기초과학의 적이다.

인공지능은 과학을 발전시킬까

넷째,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인공지능 과학자가 등장한다면 과학 연구의 지위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 기존 데이터에서 패턴을 발견하는 것도 과학의 주요한 방법론인데, 이것은 머신러닝으로 무장한 인공지능의 장기다. 한양대 이상욱 교수(과학철학)는 “인공지능 과학자가 등장하면 인간 과학자는 과학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고급 과학자와, 인공지능을 위한 데이터를 생산하는 과학노동자로 양극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학과 창의성은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인공지능 과학자는 과학 연구의 숭고함을 과학자로부터 앗아갈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과학은 상대적으로 신뢰할만한, 인류 공동체의 ‘믿을 구석’이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케스는 저서 『왜 과학을 신뢰하는가』에서 과학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는 과학 지식이 여러 과학자의 양심적인 상호검증을 거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예측된 기후변화를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한 예다.

차기 정부는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의 중심에 두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기초과학 살리기는 필수다. 서울대는 올해 과학학(science studies)과를 신설했다. 물리학자인 오세정 총장은 과학학과 출범에 부쳐 “과학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통해 과학의 사회적 함의에 대한 논의에 기여하라”고 주문했다. 세계 기초과학의 해를 맞아 과학의 미래를 고민해 본다.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