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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수정의 시선

궁금한 건 '여사님 옷장'이 아니라 투명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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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김여사 의상이 외교 행위라면

패션쇼 런웨이 옷도 설명해야

특활비 내역 모두 공개하라

색채 선명한, 감각적 연출이었다. 흰색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대통령과 참모들이 커피잔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보하고, 대통령의 부인이 핫핑크 원피스 차림으로 뛰어나와 출근길 남편의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청와대 처마에 주황색 곶감을 널어놓고 양반 다리로 앉아 여유롭게 신문을 읽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촛불 시위를 업고 탄생한 문재인 청와대가 2017년 5월 취임 후 보여준 이미지다. '비선' '불통' 같은 단어에 질린 국민은 이제 서민적 소박함과 소통, 투명성을 기대했다.
 그해 10월 청와대 홈페이지엔 ‘김정숙 여사의 패션이 궁금하세요?’란 카드뉴스가 올라왔다. 민소매 홈웨어 차림 김 여사가 돋보기를 끼고 바느질하는 사진과 함께다. 10년간 같은 옷, 직접 수선한 옷도 입는다는 글 뒤 설명은 이랬다. '일상생활 의상은 김정숙 여사 부담이지만, 공무로 참석하는 순방행사는 청와대 예산을 일부 지원받는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미국 순방 때 김정숙 여사가 입었던 옷들. [연합뉴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미국 순방 때 김정숙 여사가 입었던 옷들. [연합뉴스]

 일명 '쑤기템'(김정'숙'여사의 패션 아이템)을 칭송하는 이들 관심도 반영한 것이지만, 당시 정미홍씨(작고)가 페이스북에 쓴 "취임 넉 달도 안 돼 옷값만 수억 쓰는 사치로 국민 원성을 사는…"식의 비난 글이 퍼져가자 이에 대응한 측면이 컸다.
 그런데 퇴임 한 달여 남은 시점, 김 여사의 옷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의상비를 포함한 특별활동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을 청와대가 항소로 거부한 뒤다. 시민들이 김 여사 공식 행사에서 찾아낸, 다채로운 178벌 옷 사진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상,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의 전투복과 나란히 퍼졌다. 세금인 특활비로 쓴 것 같으니 이를 공개하라는 여론에 청와대와 여당은 "사비로 부담했다. 공개할 게 없다"고 했다. "카드로 지출했다. 왜 개인 옷장을 열어봐야 하느냐"(탁현민)는 주장에 누비 명장의 옷 수벌을 오만원권 700만원을 내고 산 게 드러나며 의혹은 더 커졌다. "명인 디자이너 예우 차원에서 현금으로 계산할 때도 있지 않겠나"(박수현)는 해명은 군색했다.
 대통령의 매곡동 사저를 두 달 전 17억 넘게 차익을 남기고 26억(지난해 공시지가는 2억9400만원)에 직거래로 팔았고, 퇴임 후 사저 건축에 쓸 11억원을 김 여사가 지인에게서 빌렸다는데 거래자·채권자가 누군지도 밝히지 않아 청와대의 반(反)투명성은 더 비판받는다.
 청와대는 "(여사의) 상징적 의상은 상대국에 대한 외교적 예의"라고 했다. 맞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의 51회(45개국) 해외 방문 중 48회 동반했고, 대통령 전용기로 인도를 단독 방문했다. 라오스 방문 뒤 문재인 대통령에 앞서 레드 카펫을 걷고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 청와대에선 10대 기업 CEO급 인사들을 불러 오찬을 주재했다. 논란은 차치하고, 공적으로 상징성을 찾아 입은 옷이라면 옷에 담긴 스토리, 그 디자이너를 자랑해야 맞지 않나.
 시중엔 김 여사가 애용한다는 A 디자이너의 패션쇼 런웨이 동영상과 모델들이 입은 옷을 다시 맞춰 입은 김 여사의 사진이 돈다. 패션쇼를 보고 김 여사가 선택해 대여 형태로 입었다는데, 그 디자이너의 딸(프랑스 국적)이 청와대 6급 행정관으로 채용돼 의상 의전을 맡고 있단다. 청와대 인사의 설명처럼 재능기부로 봐 줄 일일까. 신혜현 청와대 부대변인은 "관저 근무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나"라고 한다. 그런 논리면 지인이 별반 없던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을 통해 윤전추 행정관 등을 옆에 둔 건 왜 문제였을까.
청와대는 "특활비는 96억원, 역대 정권 최저다. 감사원 감사에서 문제없었다"고 했다. 규모를 물은 게 아니고 법원 판결대로 내역을 공개하라는 거다. 전직 대통령과 국정원장들이 특활비 문제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살았고, 살고 있다.
 1998년 고위층 옷 로비 사건, 2016년 최순실 의상실 CCTV에 이은 '청와대 옷값' 데자뷔(최고위 공직자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최고위직 부인인 김정숙 여사 입장은 분명 다르다)는 힘들게 사는 국민에겐 분노를 준다. 4년 반 전 '여사님 패션'을 홍보할 때 청와대는 "여사님 옷장"(탁현민)을 국민이 주시한다는 걸, 바느질과 패션쇼 런웨이의 이질성을 몰랐던 걸까. 역시 지지자만 머릿속에 있었던 걸까.
 허탈해하는 국민을 위해 정치권이 우선 할 일이 있다. 특활비 공개다. 2015년부터 "청와대 특활비는 투명하게 집행, 공개돼야 한다"고 한 문 대통령이다. 윤석열 새 정부도 안보 항목을 뺀 권력기관의 특활비 공개를 약속하라. 다른 선진국 사례를 논할 것도 없다.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한 임기 후를 수십 년 지켜봐온 우리 국민이 요구하는 투명성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