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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경의 법률리뷰

“이제부턴 이게 법이니 이대로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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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21대 국회는 ‘법 제조공장’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법률을 쏟아냈다. 전 세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의원발의 법률안이 넘쳐났고, 청부입법, 단발입법도 적지 않았다. 국회의원 평가항목에 법률발의건수를 넣는 관행은 득보다 실이 큰듯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국가 시스템에 손대는 법안을 전쟁 치르듯 힘으로 밀어붙여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다. 법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 믿었나. 무슨 일이든 법부터 바꾸라는 정치 선동이 드셌고, 멀쩡하던 시스템이 무너지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국민은 힘들었다. 임대차 3법은 가뜩이나 빡빡한 살림에 월세 부담까지 안겨줬고, 세법을 누더기로 만든 부동산 파동이 대선 패배를 불러왔단 자조까지 나왔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두 기관의 수사역량만 퇴보시켰단 지적이고, 공수처는 아예 존폐까지 논의하는 처지다.

21대 국회, 입법독재 비판 받아
특정 ‘가치’ 국민에 일방적 강요
입법, 국민의견 수렴제 도입해야
법 만능주의는 금지된 환상일 뿐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학생 선발, 등록금 책정, 교육과정 편성에 이어 교원 인사권마저 박탈한 사립학교법은 사학의 자율성 훼손을 이유로 헌법소원 중이고, 중대재해처벌법도 위헌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은 미국 국회의 공식 이의까지 받지 않았는가. 그나마 혼인과 가족제도를 재편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검열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브레이크를 건 언론중재법 등은 거센 저항에 부딪혀 있는 상태다.

우리는 ‘이제부턴 이게 법이니 이대로 해!’ 식의 일방통고에 많이 짓눌려 있다. ‘법률혁명’이니 ‘입법독재’니 탄식도 많았다. 법부터 제정해 놓고 특정 가치를 ‘탑다운 방식’으로 강제하는 건 연성 전체주의를 불러올 수 있다. 법을 바꾸는 건 갈등의 공론화를 통한 ‘바텀업 방식’이 훨씬 민주적이다. 체계 정합성, 필요성과 부작용, 사회적 파장 등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정부나 민간이 부담할 예산과 비용을 검토한 후에야 법에 손대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다.

그런데, 국회는 나라의 운명이 걸려있는 거대정책에서도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는다. 정당들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필요한 조직’을 갖추라는 헌법의 명령을 애써 외면한다. 정치인들은 선거철에만 국민이 주권자라 떠벌릴 뿐, 투표가 끝나자마자 국민을 구경꾼 취급한다. 아니다. 국민은 구경꾼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주권이 묶인 정치적 실험대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공론화 없는 ‘졸속입법’이 불러온 참상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1주택자 종부세율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완화, 임대차 3법과 검경 수사권 재검토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조금도 협조할 분위기가 아니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에 이어 박홍근 원내대표까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도입과 검찰 및 언론개혁 추진을 표명했다. ‘정권교체도 별 소용이 없으려나’ 조금은 당혹스럽다. 국민을 대상으로 또 무슨 실험을 하려는 건지 두려운 마음도 들고, 새삼 무소불위한 거대의석의 힘도 실감한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 협조 없인 ‘법’ 개정이 불가능하니 고민이 많을 듯싶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숫자로 밀어붙인 각종 법률의 부작용을 꼼꼼하게 짚어보는 건 어떤가. ‘입법영향평가’를 제대로 추진해 보는 거다. 이건 최적의 법률을 찾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고, 국민의 고충을 경청하기 위한 명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명령’ 대신 ‘보고’를 받고 싶다. 국민을 걸핏하면 ‘의사능력이 떨어지는 피후견인’ 취급하는 오만도 이젠 멈춰야 한다.

한 가지 제안한다. 법 개정에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규정을 만들어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는 건 어떤가. 차제에 각국 사례를 참고해 입법 절차의 명문화를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규제는 국민만 대상이 아니다. 독일은 직무규칙 형식으로 ‘제정이유 설명과 입법효과 예측·평가의무, 주무부처 입장표명 의무’를 부과하고, 일본은 규정이 없더라도 특히 예산 관련 법령의 입법 절차는 재무성을 중심으로 각 부처 간에 충실한 협의를 거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법에 관한 한, 이 나라에 뼈아픈 교훈을 줬다. 법을 통해 이상적 정의를 만들려던 욕망은 법 만능주의 패착만 남겼다. 법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건, 고대나 중세에서도 오류였고, 현대사회에선 금지된 환상일 뿐이다.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