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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조달계획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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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주택 취득자금 조달 및 입주계획서’(자금조달계획서)는 2017년 8월 도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개월 만에 내놓은 두 번째 부동산 대책(8·2대책)에서다. 집을 살 때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작성하라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투기적 주택 수요에 대한 조사 체계 강화로, 투명한 부동산 거래 유도’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서울 강남 등 투기과열지구 내 3억원 이상 주택이 대상이었다.

그런데 적용 대상은 점차 확대됐고 현재는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내 모든 주택(나머지 지역 6억원 이상) 구매 시 거래 금액과 무관하게 제출해야 한다. 서울·수도권 대부분 지역, 대전·대구·세종·청주 등 사실상 전국 주요 도시의 모든 주택이 대상이다. 잠재적으로 집을 사는 모든 사람을 ‘투기적 주택 수요’로 보고 조사하겠다는 의미다.

자금계획서는 도입 초기부터 개인 재산권이나 개인정보보호법 침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주택 구매 후 30일 안에 제출해야 하는데 본인 명의 예·적금 통장 잔고부터 주식·채권 보유 상황, 보유하고 있던 금이나 패물을 팔았다는 영수증까지 증빙이 필요하다. 가족이나 제3자에게 빌린 돈은 계좌 이체 내역과 차용증을 첨부해야 한다.

자금계획서 도입 5년이 지난 현재도 온라인 커뮤니티에 “편법·불법 의혹 없이 집 샀다는 사실만으로 내 결백을 증명하고 정부에 허락받아야 하냐” “집 사려다 경찰서에서 조서 쓰는 느낌” “개인 재산을 관리·감독하는 게 영락없는 공산주의” 같은 글이 올라오는 이유다.

지난 2월 문 대통령이 옛 사저를 매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끌시끌하다. 경북 양산시 평산동에 있는 새 사저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해 김정숙 여사는 지난해 ‘누군가’에게 11억원을 빌렸고 지난 2월 매곡동에 있는 옛 사저를 ‘누군가’에게 팔아 그 빚을 갚았다고 한다. 매곡동 사저를 구매한 ‘누군가’는 26억여 원을 주고 집을 사고도 40여 일이 지나도록 등기를 하지 않아 이 집의 소유권은 여전히 문 대통령에게 있다.

국민이 1억원짜리 집을 사면서도 자금계획서를 쓰고 증빙서류 10여 장을 준비하는 것은 바보라서가 아니다.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투명한 부동산 거래가 옳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 제도를 만든 대한민국 수장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을 테다. 뒷모습이 투명한 수장을 기대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