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건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가격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뉴시스
재건축·양도세 완화 움직임에 집값 꿈틀
새 정부, 서둘지 말고 종합 대책 내놔야
물이 차갑다고 밸브를 급격히 반대로 돌리면 뜨거운 물이 나와 자칫 화상을 입을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이런 행동을 ‘샤워실의 바보’라고 했다. 시장은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조심스럽게 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종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를 대증요법으로 접근해서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경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부동산 정책을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시장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전용 76.79㎡의 최근 호가는 27억7000만원으로 2억원가량 뛰었다. 서울 곳곳에서 역대 최고가 매물이 나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올해 들어 주춤했던 부동산 시장이 다시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윤 당선인의 정책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율을 1년간 한시적으로 배제하는 조치를 지난달 31일 현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인수위는 “부동산 세제 정상화 과제 중 첫 번째 조치로 국민에게 이미 약속한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현 정부가 거부할 땐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시행령을 고쳐 새 정부 출범 다음 날부터 시행하겠다고 했다.
새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예견돼 온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급·세제·금융에 걸친 28차례의 저인망식 규제로 집값이 폭등한 만큼 새 정부가 이 정책의 실패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를 앞두고 규제를 무차별적으로 푸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정책의 선명성을 과시하려고 보여주기식 땜질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 민감한 부동산 시장을 자극해 집값이 달아오르면 무주택자와 청년층이 지금보다 더 큰 절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은 원칙과 일관성이 중요하다. 그래야 투기 같은 불안 요인이 생겨날 틈이 없어진다. 무엇보다 거래세는 낮추되 보유세는 현실화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 부동산 세제는 난수표처럼 복잡하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또다시 폭등하자 현 정부는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는 땜질에 나섰다. 여기에 인수위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배제 방침을 내놓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90%로 높이고, 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이 분명하니 시장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은 다시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인수위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규제로 묶여 있고 금리 상승기라는 점에서 체계적인 수술을 할 시간을 벌고 있다. 규제를 완화해도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져선 안 된다. 새 정부가 샤워실의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나. 시간이 좀 걸려도 제대로 된 종합대책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