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킹] 소화불량‧두통·피로 있다면 밀가루 한 번 끊어 봐야

중앙일보

입력 2022.04.04 00:04

〈닥터라이블리의 부엌에서 찾은 건강〉 

글루텐은 밀가루 음식뿐만 아니라 보리와 호밀에 포함된 단백질을 말하는데 인간에겐 글루텐의 일부를 끝까지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없다. 사진 pixabay

글루텐은 밀가루 음식뿐만 아니라 보리와 호밀에 포함된 단백질을 말하는데 인간에겐 글루텐의 일부를 끝까지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없다. 사진 pixabay

요즘 건강식을 지향하는 제품에 자주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 바로 ‘글루텐 프리’다. 글루텐을 섭취하지 않는 것만으로 염증성 장 질환, 류머티즘 관절염 등의 자가면역질환뿐만 아니라, 조현병과 자폐증과 같은 정신과 질환의 증상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글루텐 프리’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글루텐은 빵‧국수‧라면‧파스타 등의 밀가루 음식뿐만 아니라 보리와 호밀에 포함된 단백질을 말한다. ‘글루텐 프리’가 등장한 본질적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인간에게 글루텐의 일부(글리아딘)를 끝까지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없기 때문이다. 소화 과정에서 분해가 덜 된 글루텐 일부는 장벽을 약화할 수 있는데, 이 틈을 통해 장내로 들어오지 않아야 할 균과 음식물 등이 침투할 수 있다. 이때 우리 몸은 과도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다양한 염증성 질환이 생기거나 악화된다.

밀가루, 디저트 음식에 포함되어 있는 글루텐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까. 사진 pexels

밀가루, 디저트 음식에 포함되어 있는 글루텐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까. 사진 pexels

‘글루텐은 정말 우리 몸에 나쁠까?’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꼭 알리고 싶은 개념이 있다. 의학에는 전문가가 있다. 장기별로 각 분야의 전문의가 진료하며, 약이나 시술로 증상과 질환을 해결한다. 이 과정을 아주 단순화해 보면, ‘이 질환에는 이 약, 저 질환에는 저 약’ 같은 식이 된다. 그런데 이때 소외되는 것이 있다. ‘나’라는 개인이다. 병원에서 ‘나’라는 개인은 증상과 질환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같은 질환,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라고 해서, 그 문제가 나타난 경위까지 같을까? 당연히 아니다. 치료에도 개인화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그럼 맞춤 의료가 가능해지기 전까지, ‘나’를 증상이나 질환으로 분류하지 않고 한 개인으로 봐 줄 수 있는 건 누구일까? 맞다, 오직 ‘나’뿐이다.

우리 몸을 총체적으로 건강하게 돌보기 위해서는 내 몸을 알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진 pexels

우리 몸을 총체적으로 건강하게 돌보기 위해서는 내 몸을 알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진 pexels

우리 몸은 하나의 ‘작은 우주’라고 표현된다. 이 작은 우주를 총체적으로 건강하게 돌보려면 스스로 주도권을 잡고 내 몸을 알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화가 안 될 때 소화제를 먹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왜 소화가 안 됐는지 소화가 안 될 때 어떤 문제가 함께 생기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 칼럼부터는 ‘내 몸을 알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보려고 한다. 서두가 길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내 몸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면역 반응과 염증’이다. 코로나 시대의 화두 역시 ‘면역력’이었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적절히 조절’될 때 가장 좋다. 면역력이 높으면 건강이 좋은 것이겠거니 생각하지만, 예상외로 정말 많은 증상이 ‘면역 반응이 과해서’ 생긴다. 면역 반응이 과해서 생기는 질환을 통칭해 ‘만성 염증성 질환’이라고 한다. 비만‧당뇨병‧지방간‧노화‧만성피로‧과민성대장증후군‧고지혈증‧우울증 등이 만성 염증성 질환에 해당한다. 현대에 가장 만연한 병들이다.

비만, 당뇨, 지방간, 만성피로 등 만성 염증성 질환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식습관, 운동, 생활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진 pexels

비만, 당뇨, 지방간, 만성피로 등 만성 염증성 질환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식습관, 운동, 생활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진 pexels

문제는 이런 질환들이 약을 먹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식습관이나, 운동, 생활습관을 바꿔야 개선된다. 이런 사실을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칼럼을 통해 ‘내 몸을 알아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안내하기로 마음먹은 후, 그 첫 번째 주제로 ‘글루텐’을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과도한 면역 반응’은 여러 만성 염증성 질환들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즉, 이러한 반응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줄이면, 우리의 건강도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거하거나 줄여야 하는 원인 중에, 최근 중요한 인자로 떠오른 것이 ‘장의 염증’이다. 그 중에도 장의 투과성(intestinal permeability)과 관련이 있다. ‘장 누수’라고도 한다. 장의 투과성이 높아져서 장내 물질들이 우리 몸 내부로 들어오고 면역계가 과도한 면역 반응을 보일 경우, 만성 염증성 질환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어디서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서두에 설명한 글루텐의 작용과 같다. 그렇다, 장 누수의 원인이 되는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글루텐’이다.

글루텐을 면역 반응에 불을 지피는 악당으로 몰아가기 전에, 과학이 우리의 장에 대해 밝혀낸 역사적 흐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장은 빈틈없이 아주 단단한 벽으로 이해됐다. 그러다 1993년, 장내 세포들 사이를 열고 닫을 수 있는 채널(zonula occludens)이 발견되면서 장에 ‘투과성’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20여 년 전인 2000년, 이 채널을 조절할 수 있는 리모컨 역할의 단백질(zonulin)이 장내 세포에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면서 장의 투과성을 조절할 수 있는 인자에 관심이 쏠렸다.

자, 그러면 ‘장벽을 여는 리모컨’을 누를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여기서 밀가루가 등장한다. 이 리모컨을 누를 수 있는 인자는 크게 두 가지로 알려져 있는데, 한 가지가 글루텐이고 다른 한 가지가 장내세균 불균형(bacterial overgrowth, dysbiosis)이다. 재미있는 점은 글루텐이 리모컨을 누르게 하는 ‘수용체’가 있는데, 이 수용체는 모두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밀가루는 모두의 장벽을 약화할 수 있으니, 모두에게 나쁜 것일까? 이 분야의 대가인 하버드대의 알레시오 파사노(Alessio Fasano)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분명 밀가루의 ‘글루텐’에 의해 영향을 받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 많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말이다.

밀가루와 디저트 음식을 아주 조금만 먹어도 염증성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이들이 있다. 사진 pixabay

밀가루와 디저트 음식을 아주 조금만 먹어도 염증성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이들이 있다. 사진 pixabay

사실,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밀가루 음식과 디저트를 매일 먹어도 염증성 증상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있고, 반면 아주 조금만 먹어도 여드름이 나거나 소화가 안 되는 등의 염증성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시 말해, 밀가루 음식을 먹어도 특별한 염증성 증상이 없다면, ‘글루텐’이 리모컨을 눌러 장 투과성을 늘려도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이미 만성 염증성 질환을 갖고 있거나, 여드름‧두통‧피로‧생리통‧방광염‧질염 등 ‘염증’과 관련된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자. 이들 몸에는 과도한 면역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 같은 염증 질환에 직면했을 때 약을 먹는 것에서 그칠 게 아니라, 내 몸의 면역 반응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면역 반응을 조절해주는 대표적 인자가 ‘글루텐’과 ‘장내세균총’이라는 것도 말이다. 한 가지 설명을 더 보태자면, 장내세균총을 좋게 만드는 경험적인 방법에도 ‘글루텐 줄이기’가 포함돼 있다.

'만성 염증'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글루텐을 잠시 끊어보는 것이다. 사실 ‘글루텐’이 누구에게는 괜찮고, 누구에게는 나쁜지 판별할 수 있는 생체 마커는 안타깝게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해볼 수 있는 최선의 접근법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글루텐 프리’를 했는데 전혀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면역 반응을 자극하는 다른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다른 원인을 찾아가면 된다. 반면 ‘글루텐 프리’로 증상이 좋아졌다면, 글루텐이 내 면역 반응을 자극하는 중요한 인자라는 걸 알 수 있다.

긴 글이었기에,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하는 포인트를 몇 개 짚으며 마무리할까 한다. 첫 번째, ‘글루텐은 모두에게 나쁜 게 아니'지만, 염증성 증상이 있는 나에게는 나쁠 수 있다. 두 번째, 만성 염증성 질환과 염증성 증상들은 단순한 ‘증상 완화’만으로 낫지 않는다. 그러니 염증성 증상에 꽤 시달려왔다면 글루텐 프리를 시도해볼 만하다. 내 건강을 위한 시도이며, 꽤 단단한 과학적 연구가 뒷받침된 방법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라는 사람을 ‘증상’과 ‘질환’으로 분류하지 않고 총체적 유기체로 봐줄 수 있는 사람 역시 나 자신뿐이라는 것도 잊지 말자. 스스로 돕는 방법을 터득할 때, 우리는 비로소 건강해질 수 있다.

최지영 피부과 전문의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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