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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으로 떠먹던 '자투리 국수'…100년후 맥주로 부활하다[e슐랭 토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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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
지난달 29일 오전 10시30분 부산 북구 구포광장. 흰 한복을 입고 손에 태극기를 쥔 시민 100여명이 만세 삼창을 외쳤다. 103년 전인 1919년 3월 29일 구포 일대에서 일어난 구포장터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원래 1000여명이 참여했던 행사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폭 축소했다.

구포장터 만세운동은 상인, 노동자 등 서민 대중들이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포역에서 구포시장까지 형성된 ‘구포 만세거리’는 이를 기리기 위한 길이다.

365일 태극기가 펄럭이는 길을 따라 100m가량 걸어가면 맥주가게가 눈에 보인다. 당시 만세운동을 기념해 만든 수제 밀맥주 ‘구포만세 329’를 맛볼 수 있는 ‘밀당 브로이’다.

지난 3월29일 부산 북구 구포동 구포역 앞에서 구포장터 3.29 만세운동을 기념해 열린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진 부산 북구청

지난 3월29일 부산 북구 구포동 구포역 앞에서 구포장터 3.29 만세운동을 기념해 열린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진 부산 북구청

‘구포만세329’ 구포밀로 만든 맥주

일제강점기때 만세운동과 밀맥주는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10년대 밀 소비가 많았던 일본이 한반도에서 밀을 수탈한 게 시작이다. 당시 일제는 대량으로 밀 재배가 가능한 지역을 찾은 결과 황해도 사리원시 주변을 점찍었다.

이후 사리원에서 재배된 밀은 경의선과 경부선을 타고 구포역에 닿았다. 구포역에 도착한 밀은 밀가루로 빻아 일본으로 보냈다고 한다. 구포에 제분·제면 공장이 여기저기 들어선 이유다. 이때부터 구포에서는 밀이 흔한 식재료가 됐다.

부산 북구 구포동에 조성된 구포만세거리. 사진 북구청

부산 북구 구포동에 조성된 구포만세거리. 사진 북구청

일제 수탈의 역사…자투리 국수 추억도

구포국수는 1945년 해방 이후 부산을 넘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일제가 수탈한 밀 대신, 미국의 구호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었다.

구포국수에는 넉넉지 못했던 과거의 역사도 담겨 있다. 온전한 국수를 살 수 없었던 주민들이 자투리로 국수를 끓이다 보니 젓가락으로 먹을 수 없어 숟가락으로 마시듯 먹던 사연이다. 당시 주민들은 국수공장에서 건조된 국수를 포장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투리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국내 경제가 발달하면서 구포국수는 위기를 맞았다. 먹거리가 많아지면서 차츰 국수를 찾는 이들이 줄고, 제면 공장마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10년 구포역으로 집산된 밀을 이용해 여성들이 제면하고 있는 모습. 사진 부산 북구청

일제강점기였던 1910년 구포역으로 집산된 밀을 이용해 여성들이 제면하고 있는 모습. 사진 부산 북구청

2023년까지 밀당 프로젝트 운영 

이에 부산 북구청은 2019년 구포의 역사 자원을 바탕으로 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다. 이때 구포만세거리를 ‘밀:당(堂)거리’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들어선 게 ‘밀당 브로이’다.

당시 북구청과 수제 맥주 브랜드 ‘갈매기 브루잉’과 함께 2020년 1월 구포맥주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5개월 만인 그해 5월 ‘구포만세 329’가 탄생했다.

구포만세 329에는 ‘독립’, ‘강인함’, ‘성취’ 등 3가지 키워드를 담아냈다는 게 북구청의 설명이다. 이승훈 밀당브로이 대표는 “구포만세 329는 독립을 버텨낸 한국인의 강인함을 솔향이 나는 홉으로 표현해 씁쓸한 맛이 특징”이라며 “독립의 성취는 풍부한 열대 과일 향으로 맥주의 끝 맛을 채워 표현했다”고 말했다.

부산 북구청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밀당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2020년 구포만세거리에 수제 맥주를 판매하는 '밀당 브로이'가 들어섰다. 이은지 기자

부산 북구청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밀당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2020년 구포만세거리에 수제 맥주를 판매하는 '밀당 브로이'가 들어섰다. 이은지 기자

‘구포밀 테마’ 문화관광형 명소 탈바꿈 

구포만세 329가 인기를 끌자 그해 12월 구포의 노을을 주제로 한 ‘놀구포’가 출시됐다. 올해 1월에는 구포의 황금기를 표현한 구포맥주 시즌3 ‘낭만구포’가 탄생했다.

과거 구포국수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젊은 청년들의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일 구포역 앞에 문을 연 ‘프린체’는 구포밀로 만든 스페인 요리를 선보인다. 같은 날 문을 연 ‘제과점빵’은 밀을 발효종으로 이용한 빵으로 젊은 층의 입맛을 공략하는 게 목표다.

'밀당 브로이'에서 판매하는 수제 맥주 3종으로 구포밀로 만들었다. 이은지 기자

'밀당 브로이'에서 판매하는 수제 맥주 3종으로 구포밀로 만들었다. 이은지 기자

‘구포국수체험관’서 제면·제빵 체험

앞서 지난해 9월에는 구포국수로 만든 어탕국수 ‘단연’이 문을 열었다. 박태규 대표는 “구포국수는 다른 일반적인 국수면에 비해서 염도가 높다”며 “면이 더 탄력적이고 국수로 음식을 만들었을 때 잘 퍼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북구청은 2023년까지 밀당 프로젝트를 운영할 계획이다. 구포에서 나고 자라는 밀의 명맥도 이어간다. 북구청은 매년 10월 화명생태공원 내 약 6000㎡ 부지에 밀을 심어 이듬해 6월 1000㎏을 직접 수확한다.

부산 북구청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밀당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2021년 구포만세거리에 '구포국수체험관'이 들어섰다. 이은지 기자

부산 북구청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밀당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2021년 구포만세거리에 '구포국수체험관'이 들어섰다. 이은지 기자

작년엔 ‘구포국수체험관’ 개관 

정명희 북구청장은 “구포밀이 가진 다양한 스토리를 살려서 북구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문화관광형 지역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말했다.

밀당거리에는 부산에서 유일한 우리밀 체험관도 조성돼 있다. 2021년 개관한 ‘구포국수체험관’에서는 구포국수 제면을 비롯해 우리밀 빵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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