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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만에 단 1명 뽑은 독일어교사 "외국어가 학생 시야 넓히죠"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7월 임용시험 준비를 위해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던 고등학교를 떠나게 될 당시 가르치던 학생들이 작별을 아쉬워하며 꾸며준 칠판 앞에서 신지인 교사가 고마움의 제스쳐를 취하고 있는 모습. [본인제공]

지난해 7월 임용시험 준비를 위해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던 고등학교를 떠나게 될 당시 가르치던 학생들이 작별을 아쉬워하며 꾸며준 칠판 앞에서 신지인 교사가 고마움의 제스쳐를 취하고 있는 모습. [본인제공]

지난해 8월 서울시교육청의 교사 임용시험 공고는 많은 수험생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 2000년 이후 21년간 한번도 뽑지 않았던 독일어와 불어 교사를 채용한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제2외국어로 독어와 불어를 가장 많이 선택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고교 제2외국어가 일본어와 중국어로 양분된게 이미 오래 전이다. 독어와 불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극히 드물다보니 교사를 뽑지 않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교육청이 공립 독어 교사를 단 1명 채용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에서 22년만에 뽑힌 단 1명의 독일어 교사는 신지인(32)씨다. 그는 "2009년 대학 입학 때부터 '(독일어) 채용 공고가 뜰거다'란 소문이 매년 있어서 작년에도 믿기 어려웠다"며 "실제 공고를 보고 나서야 귀한 기회란 생각이 들어 시험에 '올인'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유일 독일어 정교사

신 교사는 3월부터 경기고로 출근하고 있다. 22년만에 뽑힌 독일어 교사일 뿐 아니라, 이제 서울시 공립학교의 유일한 독일어 정교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두 명의 독일어 정교사가 퇴임했기 때문이다. 기간제 교사까지 합하면 서울 공립학교의 독일어 교사는 총 4명이다.

그는 "독일어 교사가 적을 것은 예상했지만, 내가 유일한 정교사일 정도인 줄은 몰랐다"며 "학생들이 공교육을 통해 독어를 배우는게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신 교사는 대학에서 독일어교육과를 졸업했다. 공립 독일어 교사 채용이 20년 넘게 없다보니, 독일어교육을 전공한 사람들 중 전공을 살린 경우는 드물다. 영어나 국어교육을 추가로 전공하거나 교사가 아닌 진로를 택해야 한다. 신 교사는 "예정된 채용 인원이 있어야 인재들이 준비를 할 텐데, 그게 없다보니 악순환이다"고 했다. 채용 예고가 없다보니 준비하는 사람도 없어지고, 준비하는 사람이 줄어드니 자리가 더 사라진다는 얘기다.

"제2외국어, 일찍부터 학생들 시야를 넓혀줘"

신지인 교사

신지인 교사

독일어는 대입과 큰 연관이 있지 않다. 학생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공교육 3년 과정으로 독일어가 유창해지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제2외국어 교육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신 교사는 "제2외국어는 학생들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시야를 넓혀준다"고 했다.

그는 "5년 전 기간제 교사로 일하던 일반고에서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독일어 집중이수반을 운영했는데, 이 수업을 들었던 40명 중 5명이 졸업 후 독일 대학으로 진학해 자동차공학과, 수학학과 등에 입학했다"며 "독일어를 이전까지 배운 적도 없고 성적도 최상위권이 아닌 학생들이었지만, 수업을 통해 해외에서 경쟁력을 키우자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제2외국어를 배우면 일찍부터 넓은 세상을 알게 되고 그 세상에 진입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해도 학교에서 배운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자신감이 생기고, 그 나라를 더 친숙하게 여긴다"며 "공교육이 키워줄 수 있는 학생의 경쟁력은 이런 경험을 많이 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신 교사는 학생맞춤·학생선택 교육이 강조되는 만큼, 다양한 외국어 수업이 많은 학교에 개설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 과목이 개설돼 있어야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 없는 수업을 선택하라고 하기는 어렵다"며 “제2외국어에 대한 최소한의 학생 수요는 공교육을 통해 보장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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