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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가야 가장 큰 놈 만난다, 비싼 대게 싼 값에 먹으려면 [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봄이 오면 바닷속 산에 우글우글한 그것
양념이 필요 없는 자연이 내린 맛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나 그 시리즈를 보신 분들은 외계 행성의 사막 언덕을 가득 메운 공포의 외계 갑각류와 싸우는 인류 우주전사들의 모습을 인상 깊게 보셨을 것이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몰려드는 외계 생물체의 모습은 괴기스럽고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사실은 지구상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바닷속에도 산과 평지가 있다. 동해 앞바다에는 흔히 말하는 세 개의바닷속 산이 있는데, 이름은 각각 왕돌잠, 무화잠, 신바위라고 한다. 이 세 개의 봉우리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물이 난류와 섞이지 않는 역할을 하며, 큰 파도를 막아 주어 바닷말과 작은 해양생물의 생태계가 풍성하다 보니 이들 작은 생물들을 먹이로 하는 갑각류들에게도 좋은 근거지가 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게류다. 강력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대게들은 여름에 산란하는데, 산란기를 앞둔 이른 봄 바닷속, 수를 알 수 없는 수천 수만 마리의 대게들이 바닷속 봉우리를 가득 메운 광경은 자못 두려운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한국인들은 그 장면을 보고 입맛을 다실 것이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대게가 어마어마한 번식력을 자랑한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덕분에, 수백 년 전부터 대게를 보면 입맛을 다셔 온 한민족이 지금도 대게 맛을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동해안에서는 대게 외에도 왕게, 털게가 흔히 잡혔다고 한다. 대게가 대(大)게가 아니고 다리가 대나무같이 생겨서 대게라는 것은 이제는 국민 상식. 왕게는 요즘 우리가 부르는 이름으로는 킹크랩이다. 지금은 대게가 동해안에서 가장 큰 게지만 예전엔 아니었던 거다.

다들 아시다시피 왕게는 이제 러시아산으로나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대게와 홍게가 동해안을 대표하는 게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략 수심 600m를 경계로 좀 얕은 쪽에는 대게가, 더 깊은 쪽에는 홍게가 사는데 가끔 두 게들이 만나 너도대게라는중간종을 낳기도 한다. 육상동물로 비교하자면 라이거라고 해야 할까, 노새라고 해야 할까. 귀한 종이긴 한데 특별히 대게보다 비싸게 쳐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물론 대게도 해방 이후 개체 수가 날로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부터 영덕 대게를 소개하는 신문기사들의 내용은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 “조선 시대부터 명물로 여겨졌으나 ‘최근 남획으로 인해’ 점점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 19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똑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남획 남획 노래를 부르면서도 실제 대책은 없었다. 심지어 1970년대에는 15cm 이하면 작은 게로 쳤는데, 지금은 10cm 이상이고 살이 꽉 찼으면 ‘박달대게’라는 영예의 호칭을 얻는다. 그나마 요즘은 금어기(매년 바뀌지만 현재는 6월~11월)도 잘 지켜지는 편이고, 아직 대게는 명태나 참조기만큼 귀하신 몸은 아니다. 다행이다.

그래서 대게를 먹으러 동해로 떠났다. 물론 대게는 꼭 영덕에서만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다. 앞서 말한 왕돌잠이나 무화잠은 동해 바다 복판에 있다. 주문진에서 온 배가 잡으면 주문진 대게, 울진 배가 잡으면 울진 대게, 영덕 배가 잡으면 영덕 대게, 구룡포 배가 잡으면 구룡포 대게다. 다 같은 대게인데 영덕이 과거 일본강점기, 인근 지역에서 잡은 대게가 모이는 집하장이어서 대표로 ‘영덕 대게’라는 이름을 쟁취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은 울진 후포항이나 포항 구룡포항도 영덕의 강구항이나 축산항 못지않은 대게 산지다.

어쨌든 아직도 바닷바람이 찬 이른 봄날, 영덕 강구항에 도착했다. 포구 앞길 가득 ‘대게’ 간판이 가득하고, 집집마다 모락모락 대게 찌는 하얀 김이 하늘을 가릴 지경이다. 1년 중 대게를 먹을 수 있는 철은 대략 12월부터 4월까지. 그렇다면 그 중에선 언제 먹는 게 가장 좋을까. 일반적으로 ‘대게는 추울 때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론적으로는 3~4월이 가장 좋은 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이유를 설명한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대게는 다른 갑각류처럼 허물을 벗으며 성장한다. 가장 먹기에 나쁜 것은 허물을 벗고 새 껍질을 차지한 직후다. 게는 허물을 벗기 전 먹이를 먹지 않기 때문에, 불어난 몸집에 비해 살은 쪽 빠져 있다. 이런 게를 ‘물게’라고 부르는데, 영덕에서도 강구항 대게 식당가를 가면 ‘대게 5만원에 10마리’ ‘3만원에 10마리’ 같은 호객 간판들이 즐비하다. 비정상적으로 싼 가격에 혹해 주문하면 바로 저런 텅 빈물게를 먹게 된다.

아무튼 게껍질, 즉 외골격이 클수록 살이 들어갈 여지가 많고, 기왕 먹을 바에는 껍질도 크고 살도 꽉 찬 것을 먹는 것이 좋으니 금어기를 앞둔 4월이 가장 큰 게를 만날 가능성이 높은 철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나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 어느 게가 어느 날 허물을 벗고 어느 날 살이 꽉 찼는지는 영덕 사람도 모른다.

그럼 대게를 싸게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강구항에 가면 수십 군데의 대게 전문 식당들이 손님을 맞는다. 시간에 쫓기는 일반 관광객들은 그중 간판이 마음에 드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위에서 말한 ‘물게’만 피하면 된다. 게뿐만 아니라 회나 다른 해산물, 각종 요리들을 같이 취급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반대로 ‘내가 영덕에 게 먹으러 왔지 다른 걸 먹으러 왔나!’ 라는 분들, 그리고 시간과 정성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차유마을 쪽으로 북상하는 것도 좋다. 대게잡이 선주들이 직접 경영하는 가설식당 분위기의 대게 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부분 배 이름을 식당 이름 대신 내걸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게를 조금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무래도 전문 식당이 아니다 보니 대게 외의 다른 메뉴들, 예를 들어 생선회나 다른 해산물 같은 것들은 취급하지 않는다. 오직 대게찜과 대게탕, 대게라면 정도다.

검푸른 색의 대게 껍질은 열기에 닿으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자해(紫蟹)가 바로 대게일 것으로 추측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옛 문헌들을 보다 보면 경기도에서도 자해를 안주로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먼 거리를 유통시킨 것을 보면 아마도 살을 말린 해포(蟹脯)밖에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울진 영덕 등지에서도 게다리로 포를 만들지만, 비싼 대게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싼 홍게를 활용한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아무튼 대게는 일단 쪄 놓으면 끝. 왕도는 없다. 잘 쪄진 게 접시가 상에 놓이면 다들 말수가 적어진다. 통통한 게 다리를 뜯어 닥치는 대로 파먹는 게 최고다. 노련한 분들은 대게 다리의 위쪽 아래쪽을 톡톡 끊어 게맛살처럼 생긴 속살만 쏙 빼 먹는 고급 기술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먹어도 대게 살은 달다. 초간장? 초고추장? 아무 것도 필요 없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대게편. 인터넷캡처

대게 살만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사치스러운 일이겠으나, 대개는 대게 장에 밥을 비벼 먹어야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느낌이 든다. 생물 게를 찌면 게딱지 안에 그득히 내장과 국물이 괴고(이 때문에 대게를 찔 때는 반드시 게딱지가 아래로 오게 해서 쪄야 한다. 국민 상식), 그 국물에 참기름을 찔끔 뿌린 뒤 밥을 비빈다. 이 역시 다른 양념이 필요 없다. 냉동 대게를 찐 경우라면 간혹 이 게장 맛이 비릴 수도 있겠지만, 산지에서 생물을 쪘다면 그럴 수가 없다. 깨소금이 있다면 좀 뿌려도 좋고, 게장 비빔밥을 김에 싸 먹으면 감동적인 맛에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이쯤 되면 대게 라면을 끓이지 않고는 영덕을 떠날 수 없는 몸이 된다. 작은 대게에 살짝 된장과 고춧가루만 넣고 끓인 국물(이게 대게탕)에 라면 사리를 넣어도 좋고, 라면 수프 국물에 그냥 대게를 빠뜨려도 좋다.

잠시 후, 텅 빈 냄비 바닥을 보면서 탄수화물 과다 섭취로 인한 자책감과 노곤함에 빠질 수도 있으나 애당초 그 정도는 각오해야 했던 일. 1년에 단 한 철, 동쪽 바다 끝 영덕까지 왔으면 이 정도는 필수 아닌가. 자, 어서 몸을 일으키자. 기왕 이렇게 된 거, 게살 가루가 들어갔다는 영덕 대게 빵까지 먹으며 봄 바닷바람을 맞아야지.

 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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