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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이어온 ‘봄을 부르는 기도’의 힘, 코로나 극복 염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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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일본 나라 지역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 주변 숲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올 법한 신비한 풍경 속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고타키 지히로]

일본 나라 지역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 주변 숲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올 법한 신비한 풍경 속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고타키 지히로]

지난 주말 잠실에 있는 석촌호수공원을 산책했다. 아직 조금 쌀쌀했지만 밝은 햇살을 맞으며 다가오는 봄을 느꼈다. 곧 벚꽃이 피면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한국에서는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확진자가 폭증하고, 국제 세계에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아주 불안한 시기를 지내면서 이렇게나 봄이 기다려진 것도 처음이다. 봄이 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심적으로 조금 편해지는 건 사실이다.

일본 나라(奈良)에서는 매년 3월초부터 중순까지 스님들이 ‘봄을 부르는 기도’를 한다. 도다이지(東大寺)의 슈니에(修二会)라는 법회다. 올해도 코로나19 속에서 일부 비공개로 진행됐다. 752년부터 전쟁 때도 중단되지 않고 매년 이어온 행사다.

나라는 1300년 전의 수도로 오래된 절이나 신사가 많다. 나는 2008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하고 첫 근무지 나라에서 3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 오사카에 살면서 나라는 가끔 놀러 가는 곳이었는데 막상 살다 보니 나라는 종교가 생활화된 곳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자살률이 낮은 것도 관계가 있는 듯하다. 절이나 신사 건물이 오래된 것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행하는 축제나 행사의 역사도 오래됐다. 1년 내내 어느 절이나 신사마다 축제와 행사가 열리고 지역 사람들이 많이 참여한다. 그 중 12월에 열리는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의 ‘가스가와카미야 온마쓰리(春日若宮おん祭)’와 3월에 진행되는 ‘도다이지 슈니에’가 특히 유명하다. 슈니에는 일반적으로 오미즈토리(お水取り)라고 불린다. 온마쓰리는 오미즈토리에 비하면 역사가 짧지만 그래도 1136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도다이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

도다이지에 있는 높이 15미터의 큰 불상 ‘다이부츠’. [사진 나리카와 아야, 고타키 지히로]

도다이지에 있는 높이 15미터의 큰 불상 ‘다이부츠’. [사진 나리카와 아야, 고타키 지히로]

온마쓰리는 밤12시에 시작해 24시간 후 밤12시에 끝나는 축제다. 나도 어두컴컴한 밤에 관계자들과 함께 횃불을 들고 걸으면서 취재한 적이 있다. 그날은 나라 시내 초등학교들이 쉬는 날로 낮에는 아이들도 많이 참여해서 축제를 함께 즐긴다. 일본은 부처님 오신 날도 크리스마스도 공휴일이 아닌데 신사 축제날에는 학교를 쉰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편 도다이지 오미즈토리는 스님들이 인간의 죄를 참회하고, 천하태평과 풍년을 기원하는 법회다. ‘봄을 부르는 기도’라고도 하는 건 3월 중순 오미즈토리가 끝날 때쯤 날씨가 풀리고 따뜻한 봄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미즈토리 기간 동안 여러 행사가 열리는데 특히 ‘오타이마츠(お松明)’라고 불리는 횃불 행사가 가장 인기가 많아서 코로나19 유행 전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구경했다. 횃불의 불똥을 뒤집어쓰면 건강해진다는 말도 있어서 되도록 가까이서 보려고 하는 사람들로 꽤나 붐볐다.

가스가타이샤와 도다이지는 ‘고도(古都) 나라의 문화재’로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도다이지는 높이 약 15m나 되는 큰 불상, 다이부츠(大仏)로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국보 불상만 14체가 있다. 올해 1월 일본에 있는 동안 어머니와 함께 도다이지를 방문했을 때 국보 불상이 가장 많은 홋케도(法華堂)에도 들어갔다. 다이부츠덴(大仏殿)에서 홋케도까지 가는 길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올 법한 신비스러운 나무들이 있고 그 사이에서 사슴들이 놀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나라시대(710~794년)에 세워진 홋케도 건물 자체도 국보다. 안치돼 있는 불상도 대부분 나라시대에 제작된 불상으로 홋케도 안에 앉아 있으면 나라시대에 있는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이 든다. 언제까지나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불상에 빠져드는 건 예술적으로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만 아니라 1300년 동안 사람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기도해온 ‘기운’ 같은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누가 종교를 물어보면 ‘무교’라고 답하지만, 기운이 없을 때는 절에 가고 싶어진다. 3년 동안 나라에서 지내며 문화 담당 기자로 절에 취재하러 다녔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있던 2010년은 나라가 수도가 된 지 1300년이 되는 해로 ‘천도 1300년제(遷都1300年祭)’라는 큰 축제가 열리고 문화재 특별 공개 등 행사가 평소보다 많았다.

매년 봄이면 도다이지에선 봄을 부르는 기도로 유명한 ‘오미즈토리’ 법회가 열린다. 같은 기간 여러 행사가 열리는데 횃불 행사인 ‘오타이마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고타키 지히로]

매년 봄이면 도다이지에선 봄을 부르는 기도로 유명한 ‘오미즈토리’ 법회가 열린다. 같은 기간 여러 행사가 열리는데 횃불 행사인 ‘오타이마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고타키 지히로]

올해 1월 도다이지에 간 건 작년 8월에 이모, 9월에 할머니가 잇따라 세상을 떠난 다음 내가 기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모는 갑작스러운 심부전으로 돌아가셨고, 만99세로 돌아가신 할머니는 노쇠로 인한 자연사였다. 이모는 생전에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고, 할머니는 최근 몇 년 못 만났는데 12월 100세 생신 때 축하하러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바로 귀국해도 자가 격리를 해야 해서 장례식에 참석 못 하는 상황이었다. 11월이 돼서야 백신 접종을 마치고 귀국해 이모의 납골당과 할머니의 불단에 인사하러 갈 수 있었다.

조상을 모시는 불단은 큰아버지 집에 있다. 갈 때마다 손을 모아 먼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인사하곤 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자세히 보니 불단에 ‘과거장(過去帳)’이 있는 걸 발견했다.

과거장이란 돌아가신 사람의 이름과 계명(戒名), 사망 연월일, 사망한 나이 등을 적은 장부 같은 것이다. 계명은 불교 신자로 받는 이름인데 사망 후 받는 경우도 많다. 과거장을 열어서 보니 에도시대(1603~1868) 때부터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국의 족보까진 아니지만 그것에 가까운 것이 우리 친척 집에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본 문화를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거장이라고 하면 도다이지의 과거장이 유명하다. 도다이지와 인연이 있는 고인(故人)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걸 오미즈토리 때 스님이 낭독한다. 도다이지를 건립한 쇼무(聖武)천황을 비롯해, 화재를 당한 도다이지 부흥에 힘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 등 역사인물들이 나오는데 뜬금없이 ‘푸른 옷을 입은 여인’도 등장한다. 스님이 과거장을 낭독하는 사이에 나타나 “왜 나는 안 불러주냐” 물었다는 유령이다. 실존인물들 속에 가공인물이 섞인 건 뭔가 일본답다. 이 일화가 알려지면서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을 낭독하는 데까지 듣고 가는 관광객들도 많다고 도다이지 스님에게 들었다.

아픈 마음, 치유의 시간 가졌으면

나라에 있으면 시간 감각이 길어진다. 나의 39년 인생은 도다이지의 역사를 생각하면 아주 짧은 기간이다. 이건 사람의 성격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오사카 사람들은 성질이 급한 편인데 나라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여유가 있다. 손님 입장에서는 서비스가 느리다. 도다이지 산책 후 단골이었던 오뎅집에 오랜만에 갔다. 그런데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주문한 요리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몇 번 재촉해 봐도 주인장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듯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나라가 이랬지” 하고 어머니와 함께 웃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답답할 풍경이다.

이모와 할머니 장례식에도 못 가고 제대로 이별을 못 한 채 기분이 우울했던 나는 나라에서 하루를 천천히 보내고 나서 조금 회복했다. 오미즈토리도 직접 보고 싶었지만, 동영상으로 보면서 천하평화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나처럼 해외에 사는 사람이 아니어도 코로나19 영향으로 병문안을 못 갔거나, 장례식에 못 갔거나, 이별의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전 아사히신문 기자.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2020년 한국에서 에세이집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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