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해 키워드 30] 중국에만 4억 명, 중국 소비 혁명 일으킨 주역 ‘왕훙’

중앙일보

입력 2022.04.01 11:50

업데이트 2022.11.25 10:01

라이브 방송 한 회에 억대 매출을 올리는 완판남이 있다. 

그는 바로 중국 라이브 커머스의 황제로 불리는 리자치(李佳琦)다. 난창의 한 화장품 매장의 직원이었던 리자치는 2017년 초 색조 메이크업 라이브 커머스 호스트로 등장해 5분 만에 립스틱 1만 5000여 개를 팔아 수억 위안의 매출을 올려 '립스틱 오빠'로도 알려져 있다.

영화배우도, 가수도, 스포츠 스타도 아니지만, 그의 웨이보 팔로워 수는 현재 3067만 명에 달한다. 중독성 있는 표현과 개성 있는 진행 방식으로 업계 등장 이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솽스이(双十一)를 앞두고 12시간 동안 중계된 리자치의 라이브 방송 누적 거래액은 106억 위안(약 2조 277억 원)에 달했다.

2021년 11월 6일, ‘2021 아시아 아프리카 쇼핑데이’ 라이브 방송에 등장한 리자치(오른쪽)와 중국중앙방송총국(CMG)의 유명 MC 왕빙빙(王??) [사진 CMG]

2021년 11월 6일, ‘2021 아시아 아프리카 쇼핑데이’ 라이브 방송에 등장한 리자치(오른쪽)와 중국중앙방송총국(CMG)의 유명 MC 왕빙빙(王??) [사진 CMG]

리자치 같은 이들을 중국에선 ‘왕훙(網紅)’이라 부른다. ‘인터넷’을 뜻하는 왕뤄(網絡)와 ‘핫(hot)한 사람’이란 뜻인 훙런(紅人)의 합성어다. SNS를 통해 오락, 쇼핑, 여행, 요리, 패션, 게임 등 분야에서 실시간 온라인 방송을 통해 대중에 영향력을 끼친다. 한국의 ‘인플루언서’ 개념이다. 중국에서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하는 왕훙은 4억 명이 넘는다.

“모바일 소비혁명을 못 잡으면 도태되는 세상이 왔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말이다.

중국에 온라인 세상이 본격 도래한 201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왕훙들은 자본주의로 무장한 21세기의 홍위병이다. 중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격인 광군제(光棍節·11월 11일) 때 유명 왕훙인 파피장(papi醬)은 화장품 판매를 통해 몇 시간 만에 10억 위안(약 1910억원)을 벌어들였다. 2016년 그가 자신의 1인 방송에 실을 광고를 경매에 부치자 7분 만에 2200만 위안(약 42억200만원)에 낙찰됐다.

유명 왕훙인 파피장(papi醬) [사진 바이두]

유명 왕훙인 파피장(papi醬) [사진 바이두]

왕훙 라이브 방송을 주 사업으로 하는 다채널 네트워크 회사 루한(如涵)홀딩스는 2019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내수시장 활성화를 경제 발전의 새 동력으로 삼으려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 왕훙들이 주도하는 전자 상거래는 혈관을 타고 신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혈액 같은 존재다.

부작용들도 생겨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웨이야의 사례처럼 탈세와 각종 일탈이 뉴스에 등장했다. 루한홀딩스는 간판 왕훙 장다이(張大奕)가 알리바바 총재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폭로되며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10월엔 후난(湖南)성의 왕훙 뤄샤오마오마오쯔가 방송 도중 네티즌들의 요구로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후엔 ‘영혼결혼식’을 하려는 누군가에 의해 유골이 도난당하기도 했다.

2019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다채널 네트워크 회사 루한(如涵)홀딩스 [사진 바이두]

2019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다채널 네트워크 회사 루한(如涵)홀딩스 [사진 바이두]

부작용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의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말 당국은 유명 왕훙 88명의 콘텐츠에 대해 탈세 등 이유로 ‘경고’ 조치를 내리고 벌금을 부과했다. 이들의 웨이보 계정도 삭제됐다. 같은 시점부터 왕훙이 온라인에서 주식 종목을 추천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한국 기업들에게 왕훙의 등장은 새로운 기회의 문이 되었다.

유명 왕훙들의 제품 추천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키우고 매출 확대로 이어지는 성공 사례들이 생겨났다. 화장품이 대표적인 분야다. 아모레퍼시픽은 한방 샴푸 ‘려’ 홍보를 위해 왕훙들을 초청해 제품을 사용케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후 두 달 만에 중국 현지 매출이 670% 증가했다.

지난 2월엔 한중왕훙교류협회가 창립됐다. 중국 진출 기회를 노리는 국내 기업들에 ‘왕훙 마케팅’을 주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왕훙 박람회와 포럼, 왕훙 초대전을 열고, 왕훙 빅데이터 플랫폼도 개발할 계획으로 중국의 유통·IT 종합 플랫폼 회사인 ‘빅체인’을 공식 파트너로 지정했다. 국내 체류 중국 유학생과 중국어가 가능한 한국 학생을 ‘K-왕훙’으로 육성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김태희 협회 초대 회장은 “중국에 진출하려면 중국을 알고, 왕훙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지만, 현재 국내에는 중국 라이브 커머스 시장을 제대로 알리는 단체가 전무한 실정”이라며 “왕훙을 활용해 국내 기업이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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