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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촉법소년, 감옥 안가" 이 뻔뻔함 없애나...연령 하향 급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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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범법행위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피하는 '촉법소년(觸法少年)'의 연령 기준이 지금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현행 소년법상 만 10~14세로 규정된 현행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방안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공약에 포함되기도 했던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 안은 국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법안으로 발의돼 있다.

지난해 강력범죄 촉법소년 8474명…법무부 "연령기준 조정 지원"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달 29일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업무보고에 참석해 촉법소년 연령기준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지원하겠다고 보고했다. 국회에 발의돼 있는 관련법 개정안 검토를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연령 기준 변경에 대한 찬반 의견이나 자체 고려하고 있는 구체적 연령 기준을 따로 밝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경제 1?2분과, 과학기술교육분과 업무보고 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경제 1?2분과, 과학기술교육분과 업무보고 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인수위사진기자단

촉법소년은 범법행위를 하더라도 형사 처분 대신 가정법원 소년부 또는 지방법원 소년부의 보호처분(감호위탁·수강명령·사회봉사명령·보호관찰 등)을 받게 되는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을 말한다. 반사회성이 있는 만 19세 미만 소년이 특별 조치를 통해 건전하게 성장하게끔 돕는 것이 목적이다.

촉법소년 문제는 소년범에 의한 흉악 범죄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논란이 됐다. 2017년 9월 부산 사상구의 한 목재공장 인근에서 여중생 5명이 또래 여중생을 공사 자재와 의자, 유리병 등으로 1시간 30분에 걸쳐 100여 차례 폭행한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때나, 지난해 4월 조건만남(성매매) 제안을 거부하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또래 여중생을 밤새 집단 폭행한 '포항 여중생 폭행사건' 때 가해자들은 대부분 가정법원 소년부에 송치됐다. 2020년 3월 서울에서 훔친 렌터카로 대전까지 운전해 갔다가 경찰의 추적을 피하던 중 오토바이 배달원을 들이받아 사망에 이르게 한 중학생들 일부도 촉법소년으로 알려졌다.

촉법소년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마저 있다. 지난해 3월 윤지선 세종대 철학 교수의 온라인 화상 강의에 무단 접속해 음란물 유포 및 욕설을 내뱉은 A군은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A군은 법적 대응하겠다는 윤 교수에게 "응 나 촉법소년"이라고 받아쳤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촉법소년 제도를 없애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촉법소년 SNS 인증샷. [페이스북 캡처]

촉법소년 SNS 인증샷. [페이스북 캡처]

촉법소년 범죄의 심각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살인·강도·강간·추행·방화·절도 등 강력범죄를 저질렀다가 소년부에 송치된 촉법소년은 모두 3만 5390명이었다. 촉법소년 강력범죄자는 지난해에만 8474명으로 ▶2017년 6282명 ▶2018년 6014명 ▶2019년 7081명 ▶2020년 7535명 등 점차 증가했다.

尹도 李도 "연령 하향" 공약…국회도 개정 입법 여러 건

지난 대선에서도 촉법소년 문제는 후보들 공약에 포함됐다. 윤 당선인은 '만 14세 미만'인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만 12세 미만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렇게 되면 최대 중학교 2학년생까지 적용받던 촉법 혜택이 초등학교 6학년생까지로 낮아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도 후보 시절 "만 14세인 촉법소년 상한을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이 문제에 있어선 여야 모두 큰 이견이 없었다.

이재명 공약 촉법소년

이재명 공약 촉법소년

국회에도 관련 개정법안이 고루 발의돼 있다. 국민의힘에선 이종배 의원을 대표자로 지난달 23일 소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촉법소년의 연령 상한을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추고, 특정강력범죄법상 특정강력범죄(살인·약취·강간·강도 등)를 범한 만 19세 미만 소년은 소년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형사처분을 받게 하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서영교 의원을 대표자로 지난 1월 18일 소년법을 적용받는 소년의 연령을 만 19세 미만에서 18세 미만으로 낮추고, 촉법소년의 연령 상한을 만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내용의 소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발의안 역시 소년이더라도 살인이나 치사·성범죄·특정강력범죄를 범했을 때는 소년부의 보호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하는 내용도 추가했다. 같은 당 김회재 의원도 동일한 내용의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법조계 "하한선 낮추는 것까지 논의 필요" 

촉법소년 연령 기준은 1958년 제정 당시 만 12세 이상에서 14세 미만으로 정해졌다가, 1988년 법 개정을 통해 하한선만 만 10세로 하향조정됐다. 법조계에선 근래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촉법소년 연령 상한선 하향조정을 환영한다는 목소리에 더해, 하한선까지도 낮출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형사처분 대상 소년의 연령을 낮추는 것만큼이나 보호처분 대상 소년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최근 소년범죄 추세에 맞는 대응이란 이유에서다.

학교폭력. [중앙포토]

학교폭력. [중앙포토]

검사 출신 이슬기 법무법인 창천 변호사는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8세 남자아이들이 동갑인 여자아이를 심각하게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현행 소년법상 촉법소년 규정 때문에 형사처벌은 물론 보호처분과 수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경우도 있다"며 "미디어 노출 등으로 아이들이 조숙해지는 현실과 최근 소년범죄의 흉악성 등을 고려하면 연령 기준 상한뿐 아니라 하한까지 낮추는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처벌 강화가 능사가 아니다”라며 촉법소년 연령 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선후보는 대선 과정에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반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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