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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검사님이 왜 공주죠" 되물은 정진석, 첫만남에 尹 친구됐다 [尹의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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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의원님, 저도 공주입니다.”

2016년 가을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윤석열 대전 고검 검사는 정진석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의원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당시 두 사람은 지인들이 만든 모임에 나갔다가 우연히 처음 만났다. 윤 검사는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우고 난 뒤여서 제법 인지도가 있는 인사였다. 공주 태생으로, 공주ㆍ부여ㆍ청양이 지역구였던 정 의원(현 국회 부의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윤 검사님이 왜 공주십니까. 서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윤 검사는 “아버님(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이 공주 농고 졸업생입니다. 그러니 저도 공주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침 1960년생 동갑인 두 사람은 “그럼 고향 친구로 지냅시다”라며 의기투합했다. 이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진석 국회부의장을 예방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진석 국회부의장을 예방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尹 대망론’ 띄운 정진석…“조국이 옳다면 1번, 尹 옳다면 2번”

한 차례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진석 부의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잠재력을 감지했다. 국민의힘 의원 중 가장 먼저 윤 당선인을 띄운 게 정 부의장이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2019년 조국 사태가 결정적 계기였다”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음에도 권력에 맞선 결연한 태도를 보고 윤 당선인에게 반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각종 매체에 자주 등장했던 정 부의장은 기회가 될 때마다 윤 당선인을 홍보했다.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곤 공주에 ‘공주 출신 윤석열 손발 자른 검찰 대학살, 국민은 분노한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윤석열 대망론’이란 말은 이때부터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1월, 정진석 국회 부의장이 충남 공주 시내에 건 현수막. 프리랜서 김성태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1월, 정진석 국회 부의장이 충남 공주 시내에 건 현수막. 프리랜서 김성태

윤 당선인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하자 더불어민주당도 긴장했다. 민주당은 정 부의장이 쓴 ‘공주 출신 윤석열’이란 표현이 허위사실이라며 선관위에 고발했다. 선관위는 정 부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윤 총장이 왜 공주 출신이냐”고 따져 물었다. 정 부의장은 “윤 총장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 직접 물어보라”라고 답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해프닝으로 끝났다.

총선 유세에서도 정 부의장은 “조국이 옳다면 1번을, 윤석열이 옳다면 2번을 찍어 달라”며 “고향 친구 윤석열을 지키겠다”고 외쳤다. 당시 총선 경쟁상대인 기호 1번 민주당 후보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수현 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었고, 결과는 기호 2번 정 부의장의 승리였다.

출마 고민 尹과 소주 회동…尹 출마에 의원 24명 대동

윤 당선인은 지난해 5월 정 부의장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 당시 검찰총장에서 사퇴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5월 26일 두 사람은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소주병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2016년 만남 이후 처음으로 다시 만난 날이었다. 윤 당선인은 전날 윤희숙 의원을 만난 데 이어, 현역 의원 중 두 번째로 정 부의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정 부의장은 윤 당선인에게 “지금 국민은 당신이 정치하기를 바란다”며 “국민의힘에 입당하라”고 권유했다. 현실 정치에 대한 여러 대화를 나눈 뒤 윤 당선인은 사흘 후 외가인 강원 강릉으로 가 권성동 의원을 만났다. 정 부의장은 “나를 찾은 데 이어 권 의원도 만난 것을 보고 정치에 뜻이 있다고 느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021년 7월 29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정진석 국회 부의장을 격려 방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21년 7월 29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정진석 국회 부의장을 격려 방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후부터 정 부의장은 물심양면으로 윤 당선인을 도왔다. 윤 당선인의 6월 29일 공식 출마 선언이 있기까지, 정 부의장은 윤 당선인의 핵심측근으로 알려진 권성동ㆍ장제원ㆍ윤한홍 의원과 수시로 머리를 맞댔다. 여의도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윤 당선인이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출마 선언을 할 때 국민의힘 의원 24명이 찾아온 것도 그의 공로다. 이날 정 부의장은 권성동 의원과 함께 윤 당선인 양옆에 서 ‘좌진석ㆍ우성동’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6월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앞두고 권성동, 정진석, 이종배, 유상범, 김성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과 건물 밖으로 나와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6월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앞두고 권성동, 정진석, 이종배, 유상범, 김성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과 건물 밖으로 나와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정 부의장은 “출마 회견을 앞두고 이틀 동안 의원 30여명한테 전화를 돌렸다”며 “누가 요청한 것도 없고, 자발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정 부의장이 전화를 돌리던 과정에선 이준석 당 대표가 정 부의장에게 항의하는 일도 생겼다. ‘당내 주자 자강론’을 펴던 이 대표는 정 부의장의 의원실을 직접 찾아와 “의원님, 나서지 말아달라”며 “출마 회견에 나간 사람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정 부의장은 “의원 개인이 판단할 문제지, 대표가 관여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尹에게 “내 직함 빼달라”…기자에겐 “‘윤백관’으로 써달라”

윤 당선인의 출마 선언과 국민의힘 입당을 끌어낸 이후 정 부의장은 철저히 뒤로 물러섰다. 당장 경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내정됐으나, 정 부의장은 윤 당선인에게 직접 “제 이름은 빼달라”며 “바깥에서 자유롭게 돕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 부의장은 충남총괄선대위원장 외에는 어떤 직함도 맡지 않았다. 하지만 물밑에선 민주당 출신 이용호 의원을 국민의힘에 영입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등 주요 변곡점마다 주요 역할을 했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첫 회의에서 정진석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점식 위원, 한기호 부위원장, 정 위원장, 김학용, 최재형 위원. 김상선 기자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첫 회의에서 정진석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점식 위원, 한기호 부위원장, 정 위원장, 김학용, 최재형 위원. 김상선 기자

현재 정 부의장은 당내 최다선(5선)이다. 초선 비율이 53%(110명 중 59명)인 국민의힘에서 정 부의장은 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아 6월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정 부의장은 “내 개인의 부귀영화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며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그렇게 될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윤백관’(윤석열을 위해 백의종군하는 관계자)이라 써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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