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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일손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출근" 40대 확진 회사원 최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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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7일간 격리 통보를 받은 40대 남성 A씨는 격리 5일째인 지난 18일 저녁 느닷없이 경찰 ‘피의자’가 됐다. 오후 8시쯤 서울시 중구 소재 자신의 직장으로 출근했다가 벌어진 일이다. 그의 출근 사실을 안 지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A씨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회사의 다른 직원들도 확진돼서 격리된 이들이 많아 일손이 부족했다”며 “어쩔 수 없이 자발적으로 출근했다”고 말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지난 25일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고 31일 밝혔다.

지난 2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 마련된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지난 2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 마련된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손 없어서” “일 있어서” 일터로 나오는 확진자들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000만명을 넘기면서 코로나19 판정을 받고도 격리 장소를 이탈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인천 서구에선 한 60대 남성이 지난 16일 확진 판정을 받고도 이튿날 회사에 출근해 구청에 의해 고발 조치되는 일이 있었다. 이 남성은 “치료 장소를 벗어나면 안 되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출근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GPS 기반 자가격리자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이 폐지되면서 자가격리자 이탈은 신고가 아니면 적발이 어려운 상황이다. 일일 확진자만 수십만명 넘게 발생하면서 지자체 공무원들이 일일이 전화로 확인하기도 불가능하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상사가 확진인데 출근했다”라거나 “격리 5일째인 상사가 ‘이제는 전파력이 떨어진다’며 출근한다고 한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30일 서울 송파구보건소를 찾은 한 시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PCR검사를 위해 검체채취를 하고 있다. 뉴스1

30일 서울 송파구보건소를 찾은 한 시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PCR검사를 위해 검체채취를 하고 있다. 뉴스1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직장에서 확진된 직원에게 격리 기간 동안 불이익을 주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은 코로나19에 확진됐음에도 휴가를 못 쓰게 하거나 결근 처리 또는 출근을 강요하는 등의 사례가 신고되고 있다. 이 단체에 지금까지 166건의 관련 사례가 접수됐다.

한 소상공인 커뮤니티에선 “일주일을 격리하면 식자재를 버려야 하고 월세나 관리비 등 수백만원을 손해 보니 무서워서 검사를 할 수 없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들처럼 검사 자체를 회피할 경우 방역 당국의 집계도 어렵다.

생계유지 이유 들어도 ‘무죄’ 판결받기 어려워

지난 2월 23일 서울 동대문구 동부병원 24시간상담센터에서 의료진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택치료 환자들과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월 23일 서울 동대문구 동부병원 24시간상담센터에서 의료진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택치료 환자들과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뉴스1

격리 지역 이탈이 적발될 경우 형사처분 대상이 된다. 코로나19 확진자는 7일간 격리를 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생계유지를 이유로 들어도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기는 어렵다. 지난해 8월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음에도 사흘간 의류 매장에 출근한 B씨는 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확진자 접촉으로 격리됐으나 무단이탈해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한 C씨도 벌금 100만원형을 받았다. 법원은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에서 비롯된 위반 행위는 모두의 안전을 해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직장갑질 119의 윤지영 변호사는 “회사에서 분명히 범죄(출근)를 지시하거나 조장했을 경우에는 지시자에 대해 방조죄나 교사죄가 성립되지만, 인과관계가 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 상황 때문에 부득이하게 출근했더라도 확진자 혼자 형사처분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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