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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이수 "가습기 살균제, 기업 통큰 결단 설득했지만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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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 조정을 이끈 김이수 조정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조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 조정을 이끈 김이수 조정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조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문제가 처음 발생했을 때 책임 있는 주체가 적극 해결하려 나서지 않으면 방치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2011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뒤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최근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안이 나오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사적 조정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지난 6개월간 기업과 피해자 양측 의견을 수렴해 지난달 28일 최종 조정안을 내놨다.

김이수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장 인터뷰 #6개월 만의 최종안 "참사 큰 매듭 되길" #기업엔 "조정 수용이 사회적 책임 이행"

수천 명의 피해자 구제라는 중책을 맡은 조정위원장은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다. 재판관 시절 '미스터 소수의견'으로 불리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등 굵직한 사건에 참여해온 인물이다. 이번 조정안이 11년의 피해자 고통을 끝낼 수 있을까.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이번 최종안으로 사태가 진정될까
"최선을 다해 수용성 있는 조정안을 만들었고, 피해자·기업 측 답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여러 지적을 받다 보니 3~4개월 전에 가졌던 희망보다는 약간 어두워진 거 같다."

-조정에서 어려운 점은 뭐였나
"오래 해결되지 않은 난제인데다, 피해자 규모가 크고 상황도 워낙 달랐다. 기업 간 입장차도 꽤 있었다. 특히 부담된 건 장기간 갈등이 지속하면서 피해자·기업·정부 3자 간 신뢰가 낮아진 것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0년을 맞기 하루 전날인 지난해 8월 30일 서울 종로구 SK 서린빌딩 앞에서 피해자 구제 및 배보상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0년을 맞기 하루 전날인 지난해 8월 30일 서울 종로구 SK 서린빌딩 앞에서 피해자 구제 및 배보상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이번 조정안엔 피해자 유족에 2억~4억원, 최중증 피해자에겐 연령에 따라 최대 5억여원 이상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조정위는 특별법에 따른 피해 구제, 개별 소송 외에 제3의 선택지를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100% 만족스럽진 않아도 '차선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피해자 단체들은 미래 치료비 보장 등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고 반발하는데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엔 아쉽고 죄송한 마음이 있다. 다만 유족 지원금을 최대한 늘렸고 미성년자 피해엔 특별히 노력을 기울였다. 기대 여명 등을 고려해 치료비를 설계하고 추가 지원금도 책정했다."

'가습기살균제합의를위한피해자단체' 소속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가습기살균제합의를위한피해자단체' 소속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조정에 참여한 9개 기업이 분담금을 더 내서 총액(9240억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양측 입장 조정이 참 어려웠다. 기업들에 사회적 책임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면서 통 큰 결단을 하도록 많이 설득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조정액 분담 수준을 정하지 못해 현행 특별법상 비율을 그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몇몇 기업이 조정에 소극적인 건 어떻게 보나
"일부 기업은 분담금 때문에 조정안을 수용할지 모르겠다. 강제 조정이 어려운 만큼 최대한 노력해보겠다. 조정안을 수용하는 게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길이라는 걸 기업들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조정을 이끈 김이수 조정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조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 조정을 이끈 김이수 조정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조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번 조정은 공식적으로 정부가 빠진 민간 차원의 합의다. 하지만 참사에 책임이 큰 정부가 한 발짝 물러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조정 대상 7027명 중 5295명이 환경부의 피해 판정 대기 중이다. 피해 여부와 등급 등이 빨리 인정돼야 조정액을 받을 수 있다.

-정부의 역할도 크지 않나
"환경부가 조정을 위한 기초 자료를 지원했다. 하지만 이번 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피해자가 나오면 향후 국가 재원으로 피해 구제가 이뤄져야 하는데, 정부가 받아들일지 확실치 않다. 사태의 종국적 해결을 위해 정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

-여전히 판정 대기 중인 피해자도 많다
"피해자 전체로 조정 대상을 넓혔지만, 이들이 지원금을 받으려면 판정이 끝나야 한다. 환경부에 관련 절차를 서둘러달라고 계속 요구했고, 정부도 올해 말까지로 약속했다. 향후 권고안에 연내 피해자 판정을 신속히 해달라는 내용을 담으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조정 어떻게...

조정위는 이르면 다음 주에 최종 조정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때 함께 내놓을 권고안엔 정부의 피해 구제 책임, 국회의 추가 입법 필요성, 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조치 등에 대한 요청과 당부가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3개월 이내에 조정 대상자 절반 이상이 동의하면 조정이 성립된다. 김 위원장은 "이번 조정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큰 매듭을 짓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향후 안전 사회로 가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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