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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신정부의 경제안보 외교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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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주미대사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주미대사

신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큰 흐름은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미국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에서 밝힌 것처럼 한국 외교가 “한 단계 더 올라서야 한다(Korea Must Step Up)”로 요약된다고 생각한다.

그 큰 흐름 속에서 ‘어느’ 분야에서 ‘어떻게’ 올라설 것인지가 앞으로 인수위를 통하여, 그리고 신정부 하에서 부단히 고민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이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경제 안보에 대한 신정부의 인식과 대응 방향이다. 신정부는 우리의 경제 외교 환경이 급격히, 그리고 본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외교가 한 단계 올라설 시점
경제 외교는 외교부가 담당 부처
통상은 산업부가 맡는 이원화 구조
통상에 외교 네트워크 활용해야

미·중 전략 경쟁의 전방위 확산, 코로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통상, 금융, 기술, 투자, 원자재 공급 등 국제 경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분절화가 심화되고 있어, 고도의 개방 경제를 운영해 온 우리 나라는 각별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 방안과 관련, 윤 당선인은 공약에서 경제 안보 외교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신정부가 어떤 방안을 내 놓을지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나, 이러한 문제 의식과 대응 노력은 높이 평가 받을 일이다.

이와 관련, 한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리 정부 조직법상 경제 외교는 외교부가 담당 부처이다. 그런데, 2013년 정부 기능 개편 시 경제외교 중 통상외교 만은 외교부에서 떼어 내어 산업부로 이관되었다.

당시 외교통상부 제1차관으로서 일하던 필자는 이 것이 우리 정부 전체의 통상, 경제, 외교 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는 대단히 문제가 많은 결정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우려는 특히 경제 환경이 급격히 변화된 현재 더욱 커졌으며, 따라서 경제 안보를 고심하는 신정부에서는 경제 외교의 현업 부서인 외교부에 통상 외교 기능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세가지 절박한 이유가 있다.

첫째, 당시 인수위의 결정은 통상외교, 나아가서는 경제 외교를 위하여 170개가 넘는 재외 공관을 관장하는 외교통상부의 네트워크와 전문 인력의 효과적 이용을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 나라가 통상을 통하여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성장을 이루기 훨씬 전인 1950년대, 외무부 직원이 50명에 미달하고, 외무부에 단 3개의 국 단위 조직이 설치되어있을 당시에도, 그 3개국 중의 하나가 통상국이었고, 최규하 대통령이 그 시기에 통상국장으로 일한 바 있다.

그 이후 국가 원수들도 외교부의 특성과 중요성을 잘 이해하였다고 생각한다. 수출 입국의 신념을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본인이 직접 주재하였던 ‘수출 진흥 확대 회의’를 외교부에서 관장하도록 하였고,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이라는 국운이 걸린 과제 앞에서 수출을 통한 위기 극복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외교부에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하도록 결정한 것도 통상외교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관이 외교부라고 평가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통상 외교를 위하여 필수적으로 요구 되는 능력은 국제법 지식, 외국어 능력, 그리고 경제에 대한 이해이다. 이에 더하여 이제는 국제 정치에 대한 이해가 역시 중요해 졌다. 어떤 부처의 공직자들이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2013년 이전 외교통상부의 많은 직원들은 통상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선망하고, 일단 기회를 갖게 되면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 일과 공부를 병행하였다. 이들이 다시 신바람 나게 일할 기회를 돌려 주어야 한다.

‘경제에 대한 이해’와 관련 분명히 할 것은 이것이 비단 제조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례로, 한미 FTA 교섭 당시 3대 쟁점 품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약, 농, 차’였다. 약은 보건복지부, 농은 농림수산부가 주무 부처였고, 차는 쟁점이 안전 기준과 배출 가스 기준이었기에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주무 부처였었다.

셋째, 2013년 인수위의 결정은 경제 외교의 담당 부처를 모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예로 들어 보자. 우리 나라의 대 러시아 제재 참여 발표가 늦어졌는데, 미국이 자국산 기술을 활용해서 생산한 제품을 러시아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32개 예외 국가 명단을 발표하였고, 우리나라가 이 명단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이 큰 관심과 우려를 야기하였다.

이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이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근본적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고, 그 제재의 대상이 되는 러시아도 중요한 외교의 상대국이다. 언제 어떻게 제재에 참여할 지를 결정하는 것은 다양한 국가 이익을 상량하여 외교전반과 경제외교의 주무 부처인 외교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결정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이고, 대부분 국가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9년 전의 비정상적인 결정으로 인하여 ‘통상교섭’이라는 제한된 임무를 부여 받은 통상교섭본부가 경제 외교, 나아가서는 외교의 가장 중요한 결정 사항인 대 러시아 제재의 주무 부처를 맡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주미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