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청년층·고령자 투표수 격차 커져 ‘질투정치’ 낳을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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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실버 민주주의 시대의 그늘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지난 20대 대선은 청년·고령 세대 간 투표자 수 차이가 적잖았다. 20·30대 유권자 수는 60대 이상과 거의 같았지만, 투표율이 훨씬 낮았다. 투표 성향 분석은 별개로 하고 수적 측면에서 보면 60대 이상의 결정력이 더 큰 선거였다. 대선의 또 다른 승자는 고령 세대인 셈이다. 고령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실버 민주주의(silver democracy)가 뚜렷해지고 있다. 고령자가 다수인 유럽 선진국과 일본의 정치적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본격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리는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고, 출생률은 가장 낮다. 청년과 고령 세대 간 유권자 수 격차 확대는 불 보듯 뻔하다.

더불어 근대화·산업화 이래의 메가트렌드인 청년 승자시대도 저물고 있다. 행정·입법 권력을 뽑는 선거가 고령자의 수적 우위로 바뀌어 나가면서다. 다수자의 표에 자유로운 정치는 없다. 선거에서 고령 다수자의 불패 시대가 오기 전에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가뜩이나 청년 세대는 사회보장을 둘러싼 부담과 수익의 격차에 민감하다. 세대 간 균형을 꾀하지 않으면 청년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 모태의 진영 간 내전적 정치에 세대 간 질투 정치도 생겨날 판이다. 질투는 증오보다 모질다.

20대 대선, 세대간 투표수 분기점
60대 이상이 20·30대 처음 추월

10년 후엔 유권자 수 15%P 차이
세대간 불공정 문제 더 심각해져

일본도 연금개혁 논의 진척 없어
미래세대 정책 참여 제도화해야

청년시대 저물고 고령자가 다수로

20대 대선의 연령대별 유권자 구성비(행정안전부 자료)를 보자. 20·30대가 30.0%(각각 14.9%, 15.1%)로 60대 이상(29.8%)보다 0.2%포인트 많다. 하지만 실제 투표자 수는 역전된다. 방송 3사의 출구조사를 통한 예측 투표율은 20대 이하 65.3%, 30대 69.3%, 60대 이상 84.4%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율 분석은 나중에 공표된다). 이를 바탕으로 투표자 수 구성비를 내면 60대 이상이 33.1%로, 20·30대(각각 12.9%, 13.8%)보다 6.4%포인트(215만여표) 웃돈다. 투표자 세 명 중 한 명이 고령 세대인 셈이다. 선관위 분석도 이대로라면 대선 사상 처음으로 60대 이상 투표자 수가 20·30대를 앞지르게 된다.

20대 대선 유권자와 투표자 비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대 대선 유권자와 투표자 비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12년 18대 대선으로 거슬러 가보자. 20·30대의 유권자 수 구성비가 36.1%로, 60대 이상(21.1%)을 압도했다. 올해와 비교하면 고령화 속도를 실감하게 된다. 연령대별 투표율은 20대 68.5%, 30대 70.0%, 60대 이상 80.9%로 올해처럼 큰 차이가 났다. 하지만 젊은 유권자가 훨씬 많다 보니 20·30대와 60대 이상 투표자 수 구성비는 33.1% 대 22.6%로 크게 좁혀지지 않았다.

2017년 19대 대선은 20·30대와 60대 이상 유권자 비율(33.5% 대 24.4%)과 투표자 수 비율(32.5% 대 25.5%) 이 비슷했다. 20·30대와 60대 이상 투표율 차가 5%포인트 이내인 점이 작용했다. 하지만 올해는 20·30대 유권자 수에 육박한 60대 이상의 투표율이 15%포인트 넘게 웃돌았다. 60대 이상은 실버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2012년 대선 이래 유권자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12년 대선 이래 유권자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향후 고령 세대의 이해가 걸린 선거에선 60대 이상의 적극적 투표 성향은 태풍의 눈이다. 5년, 10년 후 통계청의 연령대별 추계 인구는 고령 세대 쪽으로 기운 운동장이다. 추계 인구는 3개월 이상 거주 내외국인을 합쳐 도출한다. 21대 대선이 치러지는 2027년 만 18세 이상 인구 기준 20·30대와 60대 이상 구성비는 27.8% 대 34.7%다. 대선 사상 처음으로 두 세대 간 유권자 수 역전이 일어난다. 2032년엔 그 구성비가 25.6% 대 40.0%로 벌어진다. 약 1600만 명의 거대 인구 덩어리인 베이비부머(1955~74년생)가 속속 60대 이상이 되면서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베이비부머는 우리가 목도하는 고령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로, 지난 30~40년 정치·경제·사회 변화를 주도해온 세대”라며 “이들은 상상하는 것보다 부자이고 똑똑하며 사회 참여 의지가 강하다”고 말한다.

사회 전체 바꾸는 게임 체인저

5년 후, 10년 후 선거에서도 60대 이상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사회는 또 다른 얼굴의 게임 체인저를 맞는다. 고령자의 전제(專制)라는 난제에 부닥칠 줄 모른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지도는 바뀌어왔지만, 인구 구조는 수십 년 동안 지속한다. 인구 동태는 예측대로 가는 과학의 영역이다.

일본에서 실버 민주주의 잣대로 곧잘 비교하는 20대와 60대 유권자 구성비를 따로 떼어보자. 2014년 지방선거 16.0% 대 11.1%, 2017년 대선 15.9% 대 12.9%로 20대가 많았지만, 올해 대선에서 14.9% 대 16.4%로 역전됐다. 20대와 60대 유권자 수는 올해가 분기점인 셈이다. 2027년과 2032년의 추계 인구 구성비는 12.3% 대 17.8%, 10.7% 대 18.1%로 격차가 가팔라진다.

실버 민주주의는 세대 간 불공정 해소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사회보장의 세대 간 부담과 수익의 균형은 일종의 사회계약이다. 이것이 굳건해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도 열리고, 복지 제도도 지속할 수 있다. 하지만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저출산 고령화로 고령 세대와 그 이전 세대 간에 부담과 수익의 격차가 생겨난다. 다수인 고령 세대의 세금·사회보험료 부담은 줄지만, 연금 등 수급이 늘면서 그 초과 비용이 이전 세대로 전가하면서다. 청년의 세대 간 회계는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고령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는 세대 간 불균형을 심화할지 모른다.

야시로 나오히로

야시로 나오히로

저출산 고령화의 ‘과제 선진국’ 일본은 실버 민주주의의 경향이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 야시로 나오히로(八代尙宏·76) 쇼와여자대학 특명교수(전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는 이 분야에 밝다. 2016년 『실버 민주주의』라는 단행본을 낸 그를 서면 인터뷰했다.

일본의 세대 간 투표자 수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
“2021년 중의원 선거 투표율은 20대가 36.50%로 60대(71.43%)의 약 절반 수준이었다. 이 패턴은 1996년께부터 거의 변화가 없다. 20대 투표율은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던 1980년대 말까지는 50~60%로 고령자와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고령화에 따른 연령별 유권자 비율 변화를 고려하고 2021년 시점의 투표율이 바뀌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2040년 60대의 20대 대비 투표자 수 비율은 2015년보다 2.5~3.3배 더 높아진다.”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급속하게 높아지고 있어 현재의 세대 간 투표율 격차가 유지되면 결국 고령자가 투표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정치인이 고령자의 이익이 되는 정책에 더 중점을 두는 실버 민주주의 경향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버 민주주의는 일본에 무엇을 가져왔는가.
“연금제도 개혁 저지가 가장 현저하다.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남성 81.64세, 여성 87.74세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후생연금(국민연금)의 지급 개시 연령은 65세로 미국과 독일의 67세와 비교하면 이르다. 그런 만큼 평균 연금 수령 기간이 너무 길어 연금 재정을 유지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는 고령자의 반발을 우려해 개혁의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수령자의 연금액을 임금 증감률에 비례해서 억제하는 룰에도 정치적으로 개입해 연금액의 유지를 꾀하고 있다.”

비례대표 청년할당제 검토할 만

지난달 9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개표소에서 20대 대선 개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9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개표소에서 20대 대선 개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현실적 대처 방안이 있다면.
“젊은 세대의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피선거권 나이(현재 중의원 25세, 참의원 30세)를 낮추고, 인터넷 투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고령 세대에 대해서는 현재의 사회보장제도가 어린이와 손자 세대에 큰 부담을 주는 현상에 대해 바르게 설명하고 이해를 얻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령자 인구 비율 상승은 피할 수 없지만, 적어도 75세까지 건강한 고령자가 계속 일하고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부담한다면 그만큼 현역 세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나이와 관계없는(Age-free) 사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은 실버 민주주의 개화기이지만, 65세 이상 고령화율은 2049년 37.7%로 일본을 추월한다. 실버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충재가 급해졌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층이 급진화할지도 모른다. 정책 분야 의사 결정에 청년을 참여시켜야 한다. 미래 설계에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은 세대 간 상생의 출발점이다. 국회의 비례대표 여성 할당제를 청년으로 넓히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미래 세대 권익을 대변하는 국회 상임위 설치도 곧잘 거론되는 대안이다. 젊은층의 각성도 필요하다. 참정권을 소홀히 하는 세대에 정치는 냉담하다.

한국 정치는 겹겹이 대립 축이다. 진영 너머로 젠더와 세대 간 갈등도 꿈틀대고 있다. 여기에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도 임계점에 왔다. 통합의 용광로 정치, 세대·지역·젠더 간 격차 해소가 시대정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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