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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타 쏟아지는 주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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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경제에디터

염태정 경제에디터

3월은 주총시즌이었다. 수퍼주총데이로 불린 지난달 29일 하루에 576개가 열린 것을 비롯해 3월 마지막 주에만 한국예탁결제원 집계 기준으로 1500개 넘는 회사가 주총을 열었다. 주총 소집통지서에는 ‘참석해 주시기 바란다’는 문구가 있으나 직접 참석한 소액주주는 불청객 취급받기도 한다. 주총을 온라인으로 중계하고 서면·전자투표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도 직접 참석한 주주는 주가·배당·정책에 대한 발언의 강도가 세고 물리적 충돌도 생길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선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주총엔 지난 2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인 투자자의 참석이 증가한 기업이 많다. 코로나19 거리두기 완화도 있지만, 대형사고나 물적 분할로 인한 주가 하락 등 개미투자자의 가슴을 터지게 만든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줄이은 대형사고 주주가치 하락
새 정부서 기업 역할 커지는데
환경·사회·투명경영 더 힘써야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HDC현대산업개발 주주총회에 입장하는 주주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HDC현대산업개발 주주총회에 입장하는 주주들. [연합뉴스]

퇴출 위기에 몰린 현대산업개발 주총에선 연이은 대형사고에 대한 질타와 함께 대책 마련, 사외이사 강화 목소리가 높았다. 물적 분할 이후 주가가 반 토막 난 SK케미칼 주총에선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대책이 부실하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트럭시위가 있었던 삼성전자 주총에선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주문과 함께 기능 문제로 논란을 빚은 ‘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GOS)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주주의 질타에 고개 숙여 사과한 경영진이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것이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육성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올해 주총 시즌 ESG 바람은 어느 때보다 거세다. 카카오뱅크·아시아나를 비롯해 ESG위원회 신설이 줄을 이었다. 그룹 차원의 ESG 협의체나 헌장이 나오기도 했다. ESG 경영에 대한 평가가 외부의 투자, 수익·이미지와 연결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주주가치·산업재해 등은 ESG의 주요 요소이기 때문이다.

ESG 바람이 거세지만 사실 모호한 구석이 많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구성요인, 책임범위, 평가방식도 복잡하다. 아직 하나의 통일된 표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하는 사람도 어려워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생산성본부와 공동으로 지난해 국내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를 보면 ESG 경영 수준은 5점 척도 기준 2.9점으로 보통(3점) 수준을 밑돈다. 용어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특히 G(governance)를 둘러싸고 그렇다. 거버넌스를 직역한 지배구조가 많이 쓰이나 의미에 초점을 두어 투명경영이라 하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은 ESG 경영을 대체할 우리말로 ‘환경·사회·투명 경영’을 권한다.

ESG 개념을 포함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1987년 유엔환경계획(UNEP)와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가 공동으로 채택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제시됐다. 이후 다양한 연구 보고서가 나오고 연기금이 ESG를 투자 기준으로 활용하면서 재계의 핫키워드가 됐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는 ESG 평가결과를 기업 신용등급에 반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말 170여쪽 분량의 ‘K-ESG가이드라인’을 내놨다. ESG 경영을 위한 진단항목과 평가기준 등을 담고 있다. 진단항목은 정보공시·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4가지로 구성됐다. 정보공시를 앞에 두고 있는 게 눈길을 끈다. 투자자·이해관계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ESG 관련 정보를 널리 정확히 알려야 한다는 거다. 진단 항목별 평가방법도 나온다. 예를 들어 사외이사 역할과 관련 ‘안건에 대한 수정, 보완, 반대 의견이 하나도 없는 경우’ 0점, 한 건 이상 있으면 50점, 5% 이상인 경우 100점으로 평가한다.

이런 평가 기준과 주총에서 쏟아진 질타를 보면 ESG 측면에서 한국 기업이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 듯하다. 직원이 2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횡령한 오스템임플란트나 감사의견을 거절당한 에디슨EV는 낙제를 면하기 힘들 듯하다.

ESG 경영을 강조하지만, 형식적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진정성·지속성에 대한 의문이다. 그러니 ESG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위장한다는 그린워싱(greenwashing·위장환경주의)이란 말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앞으로 설치할 민관합동위원회에 전·현직 기업 최고경영자를 중용할 것이라고 한다. 재계의 기대도 크다. 기업의 역할이 더 커지는 건데, 해당 위원회에서 기업인이 제 목소리를 내려면 친정 격인 기업이 어느 때보다 잘 해줘야 한다. ESG의 G가 그린워싱이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