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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윤 회동 사흘 만에 다시 불거진 ‘알박기’ 인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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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우조선 사장에 대통령 동생 친구 선임

협치 약속대로 새 정부에 인사권 넘겨야

부실 경영으로 지난 7년간 7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의 신임 대표이사에 문재인 대통령의 동생 재익씨의 대학 동기인 박두선씨가 선임됐다. 인수위가 “임기 말에 부실 공기업에 알박기 인사를 강행했다”고 비판하자 청와대는 “인수위가 대우조선 사장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회사를 빠르게 회생시킬 내부 출신 경영 전문가가 사장으로 필요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 말마따나 대우조선의 최우선 목표는 경영 정상화인데, 선박 생산관리 분야에서만 일해 온 박 사장이 그런 전문성을 갖췄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임기가 40일밖에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기관과 공기업 ‘알박기’ 인사가 줄을 잇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최소한 15명의 낙하산 인사가 알박기식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대선 다음 날인 지난달 10일 임명된 임찬기 한국가스안전공사 상임감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지낸 인물이다. 또 김제남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윤형중 전 국정원 1차장은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각각 임명됐다. 정기환 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도 한국마사회 회장에 올랐다. 신동화 한국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와 명희진 한국남동발전 상임감사, 김명수 한국남부발전 상임감사도 전부 민주당 보좌진 출신이다. 청와대나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본인의 경력과 무관한 공공기관 고위직에 잇따라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알박기식 낙하산 인사가 줄을 이으면서 전국 공공기관 349곳 중 67%인 234곳의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았다고 한다. 공공기관장 3명 중 2명이 차기 정부 출범 뒤에도 상당 기간 어색한 동거를 하게 되는 셈이다. 이로 인해 윤석열 당선인이 올해 임명할 수 있는 기관장은 한국수력원자력 등 4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차기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야당 시절 정부의 알박기식 인사를 비판하며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겠다고 강조해 왔다. 또 3·9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자 “차기 정부가 국정 공백 없이 안정적으로 출발하도록 협력하겠다”는 방침도 천명했다. 민주당도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협치’에 나서겠다고 목이 터져라 외쳐 오지 않았나. 공공기관장 인사는 그 외침이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대선용 ‘쇼’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잣대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지난달 28일 만찬 회동에서 인사권 문제를 협의해 풀기로 한 것도 물거품이 됐다. 정부는 알박기 인사를 중단해야 한다. 잠시도 비워둘 수 없는 자리가 아니면 차기 정부에 인사권을 넘기는 게 순리다. 차제에 여야는 정권 이양기마다 되풀이되는 알박기 인사 논란을 항구적으로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도출해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