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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정훈이 고발한다

매일 녹초되는 '파김치 공화국'…尹, 주4일제 과감히 해봅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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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훈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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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정국에서 주4일제 논의가 활발했다.아래는 국회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 장면. 그래픽=김영옥 기자

지난 대선 정국에서 주4일제 논의가 활발했다.아래는 국회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 장면. 그래픽=김영옥 기자

한국에서 정치를 시작하기 전인 2000년대 말, 당시의 직장인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주4일제를 도입했다. 주5일 아니 주7일을 일하고 있던 나는 주4일제 도입에 당연히 시큰둥해 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별 제도를 다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곧 주4일제는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때부터 나는 ‘주4일제의 확신범’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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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의 한국은 어떨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국가인 만큼 빠르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과거의 모습을 안고 있다. 바로 초장기 노동사회란 점이다. 한마디로 매일 녹초가 돼 퇴근하는 ‘파김치 공화국’이다. 국가와 회사의 발전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산업화 시대의 모습,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진 노동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이 구시대적인 초장기 노동사회의 종식을 바라며 나는 주4일제 도입의 최전선에 섰다.

윤 당선인, 4주일제 해 보시죠 

새 정부를 만드는 데 한창 분주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힘주어 말해 본다. “주4일제, 과감하게 해 봅시다.” 윤 당선인은 그간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해왔다. 정말 노동의 유연성을 중시한다면 ‘짧고 굵게 일하는 주4일제’야말로 말이 된다. 120시간 동안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져 일하는 것이 유연성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근로자에게도 기업에도 좋은 주4일제의 최전선에 함께 서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를 바란다.

주4일제는 ‘급여 삭감 없이’ 주당 4일 32시간만 일하는 제도다. 이 의제를 처음 한국 사회에 던졌을 때, 가장 반겼던 이들은 대부분 젊은이였다. 이들은 알고 있다. 장시간 노동의 허구성을. 반드시 오래 일한다고 일의 능률과 생산성이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자신을 위한 시간이 곧 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순환을 인식하고 있다.

주5일제 도입 때도 저항 컸다 

주 5일제 도입 1년 전인 2003년의 한 뉴스 장면. [중앙포토]

주 5일제 도입 1년 전인 2003년의 한 뉴스 장면. [중앙포토]

반면, 산업화 시대를 겪은 세대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주4일제의 실현 가능성과 경제성장을 우려하고, 감정적으로는 ‘회사보다 자신이 우선인, 이기적인 제도’라고까지도 생각한다.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이란 표현이 나온 지 한참이지만 여전히 적게(시간적으로) 일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저항은 앞서 주6일에서 주5일제로 나아갔을 때 이미 겪었다. 당시의 우려는 현실이 되지 않았고, 이젠 주6일 일하는 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5일제가 정착됐다. 놀토는 ‘노는 토요일’이 아니라 ‘놀라운 토요일’(TV 예능 프로그램)인 시대다.

주5일제가 보편화 돼도 변하지 않는 기조가 있다. 바로 ‘사람을 갈아서’ 앞선 나라와 기업을 따라잡고 성장하는 것이다. 이젠 버려야 한다. 이러한 모습은 코로나 시대에도 드러난다. 의료진의 희생이 뒷받침되던 K-방역도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점점 무너지고 있다. 한 달 초과 근무가 100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다는 보건소 직원 중엔 공황장애를 앓는 경우도 생겼고, 죽음으로 이어진 안타까운 뉴스도 나온다.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코로나 시대지만, 이러한 의료진의 번아웃과 희생은 비교적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일할 수 없는 것’엔 민감하지만 ‘오래, 너무 많이 일하는 것’에는 안일하다.

핵심은 '휴식 양극화' 해소 

한편으로 코로나 사태 때문에 우리는 주4일제와 재택근무를 강제로 실험하게 됐고, 현실화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노동자와 사업자 모두가 알게 됐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든 업종이나 기업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주4일제를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내가 주4일제 도입을 촉구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과 생산성 문제 때문이 아니다. 4주일제로 정말 해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휴식의 양극화’다. 모두가 초장기 노동에 노출돼 있는 게 아니라서 이는 ‘격차’의 문제로 연결된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사람과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사람으로 점점 나뉘고 있다. 자산의 양극화만큼이나 이 휴식 양극화도 심각해졌다. 중요한 것은 주4일제 그 자체보다 왜 주4일제가 필요한가이다. 주4일제를 최근의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너도나도 이야기했지만, 휴식의 양극화를 이야기하는 정치인은 보지 못했다.

대기업은 점차 알아서 할 것

산업의 변화로 업무에서 창의성이 중요해졌다.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는 데 민간부문이 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다. 이에 따라 일부 정보통신(IT) 기업, 플랫폼 기업, 교육 기업 등은 필요에 의해 주4일제를 이미 도입했다. 직원의 복지 만족도뿐 아니라 매출 증가와 추가 인원 채용, 입사 지원자 증가 등을 효과로 설명한다. 이것이 국가 주도로 주5일제, 주52시간제가 시행되던 때와 크게 다른 점이다. 즉, 주4일제는 단순히 노동시간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소속된 정당 시대전환은 맞춤형 주4일제를 주장하며, 일률적으로 평일 중 4일만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주32시간을 토대로 한 다양한 형태의 주4일제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에 먼저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민간부문 중에서도 특히 중소기업에 집중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대기업은 좋은 인재를 뽑고,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알아서 할 것이다.

이것이 주4일제를 말하는 다른 정당과 시대전환의 생각이 다른 점이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들은 대기업과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부문에서 우선 실시하자고 말한다. 그곳들은 이미 휴식 시간까지 포함해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거듭 말하지만 단순히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만 고려하는 주4일제는 휴식의 양극화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중소기업 주4일제 지원 절실

민간부문 중 중소기업이 먼저 주4일제를 도입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기업의 필요로 이미 주4일제를 도입한 곳이 있음을 고려했을 때 민간기업 내에서도 자체 도입이 가능한 기업과 아닌 기업 간의 격차, 특히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존재한다. 실제로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를 걱정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주4일제를 찬성하지만 이를 도입한 대기업에 맞춰 중소기업은 주5일 근로를 하면서도 오히려 노동 강도가 올라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주4일제 정책은 정교해야 한다. 주4일제를 도입하는 중소기업에 재산세·취득세 등을 깎아주는 세제 지원 등으로 인센티브를 확실하게 보장해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일자리와의 휴식 격차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인건비 증가 등의 단기적 타격 손실 때문에 주4일제 도입을 꺼릴 가능성이 크다.

자료=한국리서치

자료=한국리서치

또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많이 생기고 있는 만큼, 제도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정부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업종뿐 아니라 시간제 노동자, 자영업자, 일용직 근로자, 플랫폼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근로자들이 임금 손실 없이 주4일제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제도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시대전환 홈페이지(www.4dayweek.co.kr)에는 주4일제를 도입한 곳의 다양한 사례와 적용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주4일제는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의제로 언급될 정도로 우리에게 가까이 왔다. 그러나 휴식의 격차를 말하는 대선 후보는 없었다. 일부 민간 기업은 한참 앞서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핵심에서 벗어난 수박 겉핥기식 논의만 있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 파김치 공화국을 고발하며 삶과 노동이 지속가능한 주4일제 도입을 촉구한다. 휴식의 격차를 해결하고 초장기 노동사회에서 벗어나야 행복한 노동이 지속할 수 있다. 한국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 주4일제 선도국이 되어 모두에게 휴식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정의당 등 별별시각] 심상정 "내년 시범", 이재명 "4.5일제부터"

지난 대선 정국에 주4일제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왔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내년에 일부 사업장에서 시범 운영을 하게 하고 2027년에는 모든 직장으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4.5일제 우선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정치인들의 주4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글이 '나는 고발한다. J'Accuse...!' 칼럼 시리즈에 게재돼 있습니다.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