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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덕담만 나눴나" 文·尹 회동 사흘 만에 또 신구권력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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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31일 '청년무역 국가대표와의 만남'에서 청년 무역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당선 후 개별 경제단체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31일 '청년무역 국가대표와의 만남'에서 청년 무역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당선 후 개별 경제단체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의례적인 덕담만 나눴던 것일까. 지난 28일 역대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의 만남 치곤 가장 길었다는 2시간 51분간의 청와대 만찬 회동이 있었지만 사흘 만에 신구 권력이 다시 충돌하고 있다. 이번엔 대우조선해양 ‘알박기 인사’ 논란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포문은 인수위가 먼저 열었다. 인수위는 31일 오전 ‘임기말 부실 공기업 알박기 인사 강행에 대한 인수위 입장’이란 성명을 발표하며 언론에 현안 브리핑을 했다. 이례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며 “비상식적”“몰염치”“내로남불”이란 거친 표현을 사용했다. 정치적 언사뿐 아니라 “직권남용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법적 표현까지 등장했다. 예고되지 않은 깜짝 기자회견이었다.

인수위가 문제 삼은 건 4조 원대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산업은행 지분이 55.7%인 대우조선해양의 28일 경영진 인사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날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 동생인 문재익씨의 대학 동기인 박두선 조선소장(부사장급)을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전무와 상무에 이어 부사장까지 고속 승진을 한 박씨는 지난 2월 대우조선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상태였다. 박씨 외에도 부사장 2명과 사외이사 4명도 선임됐다.

원일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부대변인 3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실에 입장하고 있다.인수위사진기자단

원일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부대변인 3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실에 입장하고 있다.인수위사진기자단

인수위는 이날 입장문에서 “대우조선해양엔 고통스러운 정상화 작업이 뒤따라야 하고 이는 새 정부와 조율할 새 경영진이 필요한 것이 상식”이라며 “금융위원회가 산업은행에 유관기관에 대한 임기 말 중단 지침을 두 차례나 내려보냈지만, 대우조선해양이 신임대표 임명을 강행하는 무리수를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인수위는 “민간기업의 이사회 의결이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쳤다지만, 사실상 임명권자가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한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처사”라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격탄도 날렸다. 인수위는 “대통령 동생의 동창으로 지목된 인사를 임명한 건 상식과 관행을 넘어 직권남용 소지도 다분하다”며 “감사원에 면밀한 조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5년 전 정권교체기 인사를 반대한 문 대통령에 대해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또 하나의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했다. 사흘 전 화합의 상징이란 ‘봄나물 비빔밥’에 레드와인이 곁들여진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상춘재 만찬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인수위는 이날 산업은행 부행장 등 간부들을 불러 강한 질책도 했다. 산은 측에서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하자 인수위는 “감사원 조사 뒤 수사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경고장을 날렸다고 한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우리가 바보인 줄 아느냐. 이사회 과정의 분초 단위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준장진급자 삼정검 수여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준장진급자들에게 삼정검 수여를 마치고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준장진급자 삼정검 수여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준장진급자들에게 삼정검 수여를 마치고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인수위의 성명에 청와대는 즉각 반발했다. 청와대는 “인수위가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며 비난했기에 말씀드린다”며 “대우조선해양의 사장 자리에 인수위가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입장문을 냈다. 청와대는 “대우조선해양엔 회사를 빠르게 회생시킬 내부 출신의 경영 전문가가 필요할 뿐, 현 정부든 다음 정부든 정부가 눈독을 들일 자리가 아니다”라며 불쾌감을 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우조선은 민간기업이고 임명에 관여할 수 없다”며 “인수위가 공식 브리핑을 한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과거에도 대통령과 당선인이 공존하는 권력 교체기 기간중 종종 양측의 갈등이 불거지긴 했지만, 이런 식의 전면전은 전례가 없다. 게다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만찬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듯 했지만, 결국 사흘 만에 다시 파열음이 나면서 권력 인수인계 과정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번 알박기 인사 논란뿐 아니라 청와대 용산 이전과 소상공인 지원 관련 추경 등에서도 양측간 원활한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추경호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는 브리핑을 열고 소상공인 50조원 규모 손실 보상에 대해 “추경 관련 작업은 인수위에서 하고 국회 제출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할 것”이라며 사실상 현 정부의 협조를 얻기 어렵단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고 해도 민주당의 지원이 없다면 추경안 통과는 불가능하다. 청와대 용산 이전 역시 예비비 예산을 두고 양측의 이견이 완전히 좁혀지진 않은 상태다. 현재로선 윤 당선인이 5월 10일 취임 뒤 용산에서 집무를 보긴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만찬 회동 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간의 만남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문 대통령이 당선인과의 만남을 덕담을 나누는 자리라고 했는데, 정말 덕담만 나눈 것 같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후 만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향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후 만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향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측은 이번 ‘알박기 인사’ 충돌이 파문을 일으키자 확대 해석은 하지 말아달라며 진화에 나섰다. 인수위 관계자는 “수조원대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알박기 인사를 그냥 넘어갈 순 없어 입장을 낸 것”이라며 “용산 이전과 추경, 공기관 인사 등은 계속해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대우조선해양 문제와 이철희 수석·장제원 실장간의 협의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양측 간 실무 협의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앞으로 신구 권력의 충돌이 잠잠해질지는 두고봐야 한다. 국회 관계자는 “정부조직개편안이나 새 내각의 인사청문회 등 서로 충돌할 사안이 수두룩 한데다 무엇보다 6월 1일 지방선거가 다가오기 때문에 여야가 전투모드를 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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