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과 대규모 화산 폭발, 유성 충돌 등으로 엄청난 먼지가 솟아 태양 빛을 가릴 경우 세계적으로 식량 대란이 올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달라질 기상 조건에 적응할 수 있는 작물이나 곤충 먹거리 리스트를 만들고, 재배·채취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연구팀은 최근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에서 발간하는 암바이오(Ambio)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주장을 내놓았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전쟁 가능성을 언급했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는 상황에서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얘기다.
1년 내에 핵전쟁 발생 확률 0.1%
연구팀은 기존 연구를 인용, 핵전쟁이 1년 동안 발생할 확률이 0.1%로 추정되고, 100년 이내에 발생할 확률은 6분의 1이나 된다고 지적했다. 화산 폭발이나 유성 충돌, 초신성 폭발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날 확률은 1만분의 1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만일 핵전쟁 등 재앙이 발생하면 지구를 덮고 있는 상층 대기로 블랙 카본(검댕)이 유입되고 몇 년 동안 태양 빛이 차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연구에서 컴퓨터 모델로 예측한 결과,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대규모 핵전쟁이 발생해 약 4400회의 핵폭탄이 터지고, 그로 인해 산불이 대대적으로 발생한다면 상층 대기에 150 테라그램(Tg), 즉 1억5000만 톤의 검댕이 주입된다는 것이다.
이 1억5000만 톤의 먼지는 이집트 기자의 세 피라미드 무게를 모두 합친 것의 11배나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물론 65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할 때 유성 충돌로 발생한 검댕의 양(750~3만5000Tg)에 비해서는 적지만, 최소 추정치인 750 Tg일 경우 핵전쟁으로 인한 검댕의 5배 수준인데도 햇빛을 99% 이상 차단하고 공룡을 멸종시킨 셈이 된다.
연구팀은 "태양 빛이 차단되면 세계 기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전쟁이 벌어지면 적도 부근은 정상적인 조도(照度)의 40% 미만, 극지방은 정상 조도의 5% 미만의 태양 빛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온대 지방에서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세계적으로 강수량이 절반으로 줄면서 심각한 가뭄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핵겨울'이 15년 후에야 완전히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핵겨울 벗어나는 데 15년 걸려
연구팀은 "햇빛 감소와 강수량 감소 등은 전 세계 작물 생산에 재앙을 초래하고, 필연적으로 극심한 식량 부족을 유발할 것"이라며 "현재 세계 식량 비축량은 인구 대비 4~7개월 분량 뿐이기 때문에 대체 식량 공급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 Tg, 즉 500만 톤의 검댕만 주입돼도 전 세계 작물 생산량이 평균 10% 감소한다는 예측이 있는 만큼, 대규모 핵전쟁으로 인해 150 Tg의 검댕이 주입될 경우 적어도 4~5년 동안 세계적으로 흉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상황에서도 북위 20도에서 남위 15도 사이 열대 지방은 온도 감소가 덜해서 일부 농업이 가능할 것"이라며 "부족한 태양 빛과 낮은 온도, 가뭄 등에 적응할 수 있는 작물을 골라서 단기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야생 식용 식물(WEP)이나 식용 곤충 등을 선별해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팀은 잠재적인 야생 식용 식물이 갖춰야 할 특성으로 ▶흔하게 볼 수 있고, 가공이 쉬울 것 ▶에너지 밀도(열량)가 상대적으로 높을 것 ▶필수 비타민과 미네랄이 많을 것 ▶지역 사회에 잘 알려진 것 ▶냉장하지 않아도 장기간 보관할 수 있을 것 ▶일 년 중 대부분의 달에 수확하거나 재배할 수 있을 것 ▶비교적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줄 수 있을 것 ▶이전에 재배한 적이 있을 것 등을 제시했다.
"애벌레·버섯 등이 유력한 대체 식량"
연구팀은 재배나 사육이 가능한 야생 식용 식물·곤충으로 ▶야자나무 바구미 애벌레 ▶구약나물의 땅속줄기인 곤약(Konjac) ▶구황식물로 예전부터 이용했던 카사바 ▶야생 느타리버섯 ▶아프리카 자두로 알려진 사포우(Safou) 등을 제시하고, 장점을 소개했다.
또, 채집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대체 식량으로 ▶야자 열매 ▶바오바브 나무 열매▶아카시아 씨앗 등을 추천했다.
연구팀은 "대재앙으로 운송시스템이 손상돼도 문제가 없도록 지역별로 종자를 저장하는 시설을 갖춰야 하고, 관련 식물의 품종을 개량하려는 노력, 야생 식용 식물의 서식지를 보호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또, 온대 지방에서는 농사가 불가능할 수 있는 만큼 브라질·인도·인도네시아·에티오피아 등 열대 국가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