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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괴물 케이타, 2위 팀 MVP 넘어 우승까지

중앙일보

입력

네트 위로 자신의 세리머니를 펼치는 케이타. 수원=장진영 기자

네트 위로 자신의 세리머니를 펼치는 케이타. 수원=장진영 기자

'괴물' 노우모리 케이타(21·말리)가 최우수선수상(MVP)을 예약했다. 케이타의 눈은 더 큰 왕관, 소속팀 KB손해보험의 우승을 향한다.

프로배구 정규시즌이 30일 막을 내렸다. 대한항공이 2년 연속 1위로 챔피언결정전(3전2승제)에 직행한 가운데 KB손해보험은 2위로 봄 배구 티켓을 따냈다. 2005년 프로 출범 이후 최고 성적이다. KB손보는 우리카드-한국전력의 준플레이오프(PO·4월 1일) 승자와 3일 의정부체육관에서 단판 PO를 치른다.

MVP 경쟁은 사실상 끝난 분위기다. 대한항공 선수들은 고른 활약을 펼쳐 도드라지는 선수가 없다. 오히려 2위팀 KB손보의 케이타가 유력하다. MVP 경쟁자인 대한항공 곽승석은 "이미 MVP는 케이타로 정해진 것 아니냐"고 했다. 케이타가 MVP를 받는다면 2005년 프로출범 이후 KB손보 선수로는 처음이다. 지금까지 2위 팀에서 수상한 선수는 2016~17시즌 문성민(현대캐피탈)뿐이다.

알파벳 'K'를 만들어 보인 케이타. 수원=장진영 기자

알파벳 'K'를 만들어 보인 케이타. 수원=장진영 기자

KB손해보험 훈련장인 수원 인재니움에서 만난 케이타는 "MVP 후보라 기분 좋고, 주신다면 감사하게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내 집중하지 않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우승이다. 힘든 과정이지만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시즌 KB손보에 입단해 득점 1위에 오른 케이타는 득점왕 2연패에 성공했다. 36경기에서 1285득점을 올려 2위 삼성화재 카일 러셀(915점)을 멀찍이 따돌렸다. 레오(당시 삼성화재)가 2014~15시즌 세운 단일 시즌 최고 득점(1282점) 기록도 넘어선다.

2m6㎝의 장신에 놀라운 탄력을 앞세워 어떠한 어려운 공도 공격으로 연결한다. 팀 전체 공격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지만 지치지도 않는다. 올 시즌 네 번이나 50득점 이상을 기록했다.전세계 배구리그 최초다. 많이 때리는데 공격성공률도 1위다. 케이타의 활약을 본 유럽 팀들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일각에선 케이타가 지나치게 많은 공격을 한다는 우려를 한다. 하지만 케이타는 "더 때리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시즌이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는 "시즌이 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 남은 경기들까지 100% 몸 상태를 유지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지난 22일 대한항공전에선 신발 바닥 에어쿠션이 터져 갈아신는 해프닝도 있었다. 케이타는 웃으면서 "쿠션이 터졌다고 열심히 한 건 아니다"라면서도 "정규시즌 36경기 중 한 번도 쉽게 치른 경기가 없다. 늘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고 자신했다.

케이타의 강력한 무기는 서브다. 지난해보다 서브 득점 숫자가 50% 이상 늘어나면서 1위에 올랐다. 코트 안쪽까지 날아와 때리는 그의 서브를 받는 상대팀 선수들은 "서브가 아니라 공격"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케이타의 서브타임 때 상대는 리듬을 흔들기 위해 작전시간이나 비디오 판독을 쓰지만 소용없다.

케이타는 "특별히 지난해보다 좋아진 이유는 없다. 다만 지난해 기록을 다 깨자는 생각으로 지난해보다 웨이트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나를 좀 더 발전시켜 나 자신을 놀라게 하고 싶다"고 했다.

케이타는 실력 뿐 아니라 퍼포먼스도 뛰어나다. 프로레슬러 존 시나를 흉내내 손바닥을 눈 앞으로 가로지르는 '유 캔트 시 미(You can’t see me)' 세리머니가 대표적이다. 새처럼 날개짓을 하거나 양팔 근육을 뽐내는 동작도 한다. 케이타는 "시나를 좋아한다. 동료들이 블로킹 위로 스파이크를 할 때 공이 안 보인다는 얘기를 해주서 그런 세리머니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 캔트 시 미' 세리머니를 하는 KB손해보험 케이타. [사진 한국배구연맹]

'유 캔트 시 미' 세리머니를 하는 KB손해보험 케이타. [사진 한국배구연맹]

WWE 프로레슬러 존 시나. [사진 블루 다이나믹 피트니스]

WWE 프로레슬러 존 시나. [사진 블루 다이나믹 피트니스]

가끔 다른 팀 선수들이 케이타의 세리머니를 따라하기도 한다. 케이타는 "그것 때문에 기분 나쁜 적은 한 번도 없다. 상대팀도 '즐기고 있구나'란 생각이다. 내 배구철학은 '즐기면서 하는 것'이다. 얼마든지 따라해도 상관없다. 양팀 선수들이 모두 경기를 즐기면 팬들도 즐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타는 배구선수지만 그의 롤모델은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다. 르브론의 별명인 '킹(king)'을 좋아해 유니폼 안쪽 셔츠에 'I'm King(난 왕이다)'이란 문구를 쓴 뒤 들어올리는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여자프로농구 KB 스타즈 경기에 시투자로 초대됐을 땐 덩크슛을 선보였다.

케이타는 "르브론이 모델인 농구화를 신는다. 발이 편한 신발이기도 하지만, 그의 강한 정신력을 본받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내게도 있다. 르브론과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고 미소지었다.

2남2녀의 장남인 케이타의 남동생 케바는 농구선수다. 케이타보다 세 살 어린 그는 신장 2m3㎝로 케이타 못잖은 탄력을 지녔다. 현재 미국 명문 대학 농구부 진학 절차를 밟고 있다. 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밝아진 케이타는 "동생과 함께 농구와 배구를 했다. 지금도 만나면 가끔 한다. 동생이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케이타는 '청년 가장'이다. 14살 때 카타르로 건너갔고, 세르비아에서 프로에 데뷔해 한국까지 왔다. 케이타는 한국에서 받은 연봉을 절반 이상 말리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금세공사로 일한 아버지가 한국에 방문할 계획도 세웠으나 코로나 때문에 오진 못했다.

30일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단일시즌 최다득점을 올린 뒤 기뻐하는 케이타. [연합뉴스]

30일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단일시즌 최다득점을 올린 뒤 기뻐하는 케이타. [연합뉴스]

케이타는 "13살 때 해외 팀들에서 제안이 왔다. 부모님이 반대하셨지만, 내가 설득했다. 가족이 그리워 힘들었지만, 그 시간 덕분에 빨리 성숙하고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깨달았다. 한국 생활도 그래서 잘 한 것 같다"고 했다.

말리는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다. 겨울 종목 중에선 농구가 인기있다. 케이타는 "말리에선 배구가 인기있는 편이 아니다. 그래도 내가 말리를 대표해 외국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알려져 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뿌듯해했다.

케이타는 "팬들에게 격려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게 뿌듯하다. '잘 하는 선수'보다 '팬들을 행복하게 만든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포스트시즌에서도 KB 팬들을 웃게 만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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