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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강수의 시선

김오수(검찰총장)와 한동훈(검사장)의 엇갈린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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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누구에게나 루비콘강은 있다. 건널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선택이 운명을 가른다.

김, 거취 요구에 “수사 재개“ 응답 #한, 윤 당선인이 간 길 따라가나 #정치보복 금물, 민생적폐 수사를

 지난 3·9 대선 결과 윤석열 시대가 열리면서 가장 먼저 김오수 검찰총장이 공론장으로 소환됐다. 윤 당선인 측근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5일 대장동·백현동 수사를 거론한 뒤 "총장으로서 수사지휘를 제대로 했느냐"고 꾸짖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각오와 자신이 없다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윽박질렀다. 김 총장의 임기는 14개월 남아있다. 새 권력이 친정부 성향 검찰총장의 직무 수행에 대해 근본적 회의감을 표명함과 동시에 똑바로 안 할 거라면 그만두라고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날 법무부와 대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는 애초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별도 보고로 방침이 바뀐 상태다. [연합뉴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날 법무부와 대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는 애초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별도 보고로 방침이 바뀐 상태다. [연합뉴스]

 다음날 검찰총장의 반응이 묘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겠다." 사퇴할 뜻 없다는 건 알겠는데 '법과 원칙'이란 구호를 복창하다니? 열심히 할 테니 자리는 흔들지 말라는 해명 같다. 하긴 요즘 발 빠른 검찰의 행보는 새 정부 코드 맞추기라고 봐도 과하지 않을 수준이다. 3년 동안 잠자던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재개한 것부터 그렇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등 윤 당선인의 검찰개혁안에도 법무부와 엇박자를 내면서까지 찬성 입장을 냈다. '풍향계'라는 별명에 걸맞은 처신인 듯도 하다.
 여태 뭐하다가 지금 와서 이러느냐, 김 총장이 법과 원칙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윤 당선인과 조국 일가 비리 수사 등을 놓고 여러 번 충돌했고 봐주기 수사, 늑장 수사로 정의를 지체했다는 평가가 많다. 정권 방패막이 수사 지휘를 했다는 것이다. 김 총장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장치는 검찰총장 임기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1988년 도입됐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조남관 법무연수원장이 "검찰의 정치 중립 시금석이 총장의 임기 보장"이라고 두둔하고 나서며 힘을 보탰다.
 하지만 역대 임기제 검찰총장 22명 중 14명이 임기를 못 채웠다. 정권교체기 때 자진 사표와 재신임 임기 진행 중 어느 선택이 좋을지는 알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총장인 임채진 전 총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재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박연차 사건 수사 도중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중도 퇴진하는 비운을 맞았다.
 결정적 변수는 윤 당선인의 의사다. 국정 철학이 달라 같이 일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전한다면 김 총장이 결단해야 한다. 2003년 초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해 김각영 검찰총장이 전격 사퇴한 전례가 있다. 요즘엔 그런 상황이 와도 버티기로 맞서면 내분이 불가피하다. 피의자 고검장, 피의자 총장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풍조가 만연한 탓이다.
 거취 표명 논란 이후 김 총장을 대통령 후보에 빗댄 풍자 포스터까지 등장했다. 전임자처럼 대통령이 될 수도 있으니 절대 쫄지 말고 버티라는 취지다. 그러나 김 총장은 윤 당선인과 다르다. 살아온 길이 다르고 갈 길도 다르다. 김 총장에겐 윤 당선인이 가진 9수 끝 사시 합격,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항명, 산 권력 수사 등의 스토리가 없다.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지난 1월 말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유 전 이사장은 2019년 12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추측되는데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듬해 4월과 7월 ″한동훈 검사가 있던 (대검)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발언해 한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뉴스1]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지난 1월 말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유 전 이사장은 2019년 12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추측되는데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듬해 4월과 7월 ″한동훈 검사가 있던 (대검)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발언해 한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뉴스1]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핵심인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돌연 소환한 이는 윤 당선인이다. 그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지난 9일 한 검사장을 두고 "이 정권에 피해를 많이 입고 거의 독립운동처럼 해 온 사람"이라며 "(그런 사람은) 서울중앙지검장을 시키면 안 되느냐"고 언급했다. 여권은 "사정 정국을 조성해 피바람을 몰고 오려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미리 알려지면서 부담은 커졌지만 윤 당선인의 스타일로 볼 때 한 검사장을 요직에 기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 법조인의 말이다.
 "사시 기수와 경력 등으로 볼 때 대형 사건을 관장하는 중앙지검장의 적임자인 건 맞다. 반대 여론이 부담되면 이재명 관련 사건이 산적한 수원지검장으로 배치할 수도 있고.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우니 검찰총장 기용도 검토함 직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윤 당선인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려다 주변에서 극구 반대하자 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가 2년 뒤 기어코 총장에 발탁했다. 비슷한 상황이 한 검사장을 통해 재연될 수 있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김 총장이나 한 검사장이나 5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반목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검사라면 어느 자리에 있든 공정하고 정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수사 결과를 내놓으려 진력해야 한다. 정치보복 수사는 피하되 피폐해진 금융시장과 민생을 살리는 수사, 정의가 지연된 산 권력 수사, 신(新)적폐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