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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기 위한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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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국제부장
강혜란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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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를 끌어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휴전 기미를 보인다는 소식에 귀신같이 세계 증시가 오르고 유가가 떨어졌다. 글로벌 마켓의 반응은 단지 5차 협상 결과 발표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러시아는 ‘특수 군사작전’이 성공리에 1차 마무리 됐다면서 ‘출구 전략’을 내비쳤다. 푸틴이 체면치레를 원하는 선에서 협상 타결을 원한다는 터키 쪽 전언도 흘러나왔다. 결과를 예단하긴 이르지만, 1만 명 이상(추정) 전사자와 유례없는 경제제재,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엑소더스 등에 푸틴이 초조해진 건 분명해 보인다.

지금 당장 종전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가 입은 피해는 참혹한 수준이다. 수천 발 포탄에 국토가 만신창이 되고 400만 명 넘게 나라 밖을 떠돌고 있다. 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러시아 역시 적잖은 타격을 입고 있다. 그렇다고 푸틴의 전쟁이 쉬 끝날 것 같진 않다. 현재 협상안을 보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저지는 달성한다 해도 유럽연합 가입은 길을 열었다. 돈바스·크림반도 등 영토 문제와 관련해서도 “15년간 협의”라는 유예 방식이 거론된다. 러시아가 개전 당시 바랐을 결과엔 턱없이 못 미친다.

29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탈출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독일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탈출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독일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쟁은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으로 지속되는 정치다.” 19세기 카를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에 관해 내린 고전적 정의다. 푸틴이 이번 전쟁을 통해 어떤 ‘정치’를 노렸는지에 대해선 18세기 장 자크 루소의 말이 더 도움될 것 같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주권·사회계약에 대한 공격, 다시 말해 상대국의 헌법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말하자면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헌법을 공격하고 그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서 다시는 ‘찍’ 소리 못하게 할 패권 과시를 노렸다. 이른바 ‘탈나치화’라고 표현된,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행보를 저지하고 친러 세력의 집권을 도모하는 것 말이다. 현재 군사적 실패로 인해 저지된다 해도 ‘완충지대’를 필요로 하는 푸틴식 세계관에선 불씨가 남아 있다.

때문에 이 전쟁은 시작만큼이나 끝도 예측 불허다. “러시아가 한반도 같은 우크라이나의 분단을 바라고 있다”는 관측 속에선 ‘휴전’이란 말도 섬뜩하다.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질서가 부딪치는 점이지대에서 우크라이나도 ‘끝나지 않는 전쟁’을 맞게 되진 않을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역사적으로 전쟁을 벌인 쪽이 승리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그 내부에서 새로운 사회질서 요구가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1·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태평양전쟁 후 일본이 그랬다.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전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어 사회개혁이 절실했다는 점인데, 푸틴의 러시아가 아직 그렇지 않다는 게 비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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