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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에 질렸나, 다시 ‘순한 맛’ 로맨스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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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SBS ‘사내맞선’은 6회를 기점으로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로맨스 드라마 흥행을 이끌고 있다. 넷플릭스 주간(21~27일) 순위 비영어권 TV부문에서도 각각 1위를 차지, 세계적 인기도 입증했다. [사진 SBS]

SBS ‘사내맞선’은 6회를 기점으로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로맨스 드라마 흥행을 이끌고 있다. 넷플릭스 주간(21~27일) 순위 비영어권 TV부문에서도 각각 1위를 차지, 세계적 인기도 입증했다. [사진 SBS]

‘매운맛’ 대신 ‘순한맛’이 다시 인기다.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들이 다시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요즘 안방극장 얘기다. 지난해 선정성 높은 막장 드라마와 장르물의 흥행에 가려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순수·청춘 로맨스물이 최근 다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흐름의 선두에는 tvN 토일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SBS 월화드라마 ‘사내맞선’이 있다. 각각 지난달 12일과 28일 스타트를 끊은 두 드라마는 극 중반에 해당하는 회차에서 시청률 10%를 돌파했다. 첫 방송 6.4% 시청률로 시작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8회 10.9%로 두 자릿수를 찍은 후 현재까지 유지 중이고, 첫 회 4.9%로 출발한 ‘사내맞선’도 6회에서 10.1%를 기록한 뒤 순항 중이다.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8회를 기점으로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로맨스 드라마 흥행을 이끌고 있다. 넷플릭스 주간(21~27일) 순위 비영어권 TV부문에서도 2위를 차지, 세계적 인기도 입증했다. [사진 tvN]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8회를 기점으로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로맨스 드라마 흥행을 이끌고 있다. 넷플릭스 주간(21~27일) 순위 비영어권 TV부문에서도 2위를 차지, 세계적 인기도 입증했다. [사진 tvN]

두 드라마는 OTT 시청 순위 등 각종 지표에서도 나란히 상위권을 싹쓸이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국내 시청 순위에서(30일 기준)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1위, ‘사내맞선’이 4위를 기록 중이고, 넷플릭스가 29일(현지시간) 발표한 주간(21~27일) 글로벌 TOP10 순위 비영어권 TV 부문에서도 각각 1위(‘사내맞선’)와 2위(‘스물다섯 스물하나’)에 올라 세계적 인기도 입증했다.

무거운 장르물 홍수 속 웃으며 보는 맛

이들 작품의 인기 배경으로는 무거운 장르물 홍수 속에 ‘웃으며’ 볼 수 있는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생긴 것에 더해, 기존 로맨스물 형식에 흡입력 있는 변주를 줬다는 점이 꼽힌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1998년 IMF (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흔들리던 청춘들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이야기가 큰 줄기다. 김태리가 연기하는 나희도는 고등학생 펜싱선수로, 학교 펜싱부가 없어지자 새로운 학교로 전학 가기 위해 범죄에 휘말리는 ‘작전’도 마다치 않는 당찬 캐릭터다. 그런 희도와 우연히 엮이게 된 백이진(남주혁)은 몰락한 부잣집 아들로, 가족과 떨어져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이 현실의 아픔을 잠시 잊고 달리다가 “둘이 있을 땐 아무도 몰래 잠깐만 행복하자”고 희도가 말하는 2화 마지막 장면은 청춘을 형상화한 ‘역대급 엔딩’으로 이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꼽히고 있다.

2017년 연재된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사내맞선’은 캔디형 여주, 재벌 남주, 둘 사이의 계약 연애 등 로코물의 클리셰를 때려 넣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감독 스스로 “‘아는 맛이 맛있다’는 말처럼 예상 가능한 상황은 직설적으로 보여주려 했다”(박선호 감독)고 할 정도로 클리셰를 대놓고 드러낸 연출이 되레 입소문을 타며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친구를 대신해 맞선에 나갔다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장과 얽히게 된 신하리 역 김세정의 코믹하지만 어색하진 않은 연기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갯마을 차차차’ ‘그해 우리는’ 줄줄이 흥행

지난해 하반기부터 로맨스물 흥행 대열을 잇고 있는 작품들. 왼쪽부터 tvN ‘갯마을 차차차’, SBS ‘그해 우리는’, JTBC ‘기상청 사람들’. [사진 tvN, SBS, JTBC]

지난해 하반기부터 로맨스물 흥행 대열을 잇고 있는 작품들. 왼쪽부터 tvN ‘갯마을 차차차’, SBS ‘그해 우리는’, JTBC ‘기상청 사람들’. [사진 tvN, SBS, JTBC]

이런 ‘순한맛’ 로맨스물의 약진은 지난해 하반기 방영된 tvN ‘갯마을 차차차’, SBS ‘그해 우리는’ 등이 흥행한 것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달 12일 시작한 JTBC ‘기상청 사람들’도 기상청 직원들 간 사내연애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로맨스물 열풍에 가세했다. 뚜렷한 악역이 없고, 자극적인 사건 대신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극의 중심축이라는 게 이들 작품의 공통점이다. 지난해 OTT 시장에서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지옥’과 같은 장르물이 성공을 거두고, 지상파·종편 드라마 중에선 SBS ‘펜트하우스’,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 등 소위 막장 드라마들이 화제성을 휩쓴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무게감 있는 장르물 흥행의 반작용으로 로맨스물이 다시 인기를 얻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들어 장르물이 인기를 끌자 OTT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뿐 아니라 지상파에서도 너도나도 장르물에 뛰어들었다”며 “사회 분위기도 무거운데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로맨스물이 다시 사랑받는 흐름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도 “사람들이 장르물의 높은 완성도에 환호하긴 하지만, 꾸준히 몰입하다 보면 피로감도 쌓인다”며 “진지한 주제 대신 감성을 쫓아가는 말랑말랑한 로맨스물은 이런 피로도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흐름을 로맨스 장르 전체의 재부상보다는, 로맨스물 중에서도 기존 모델에서 한 단계 진화를 꾀한 작품이 호응을 얻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같은 로맨스 장르여도 과거 작품들에 비해 나아간 지점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기존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복고 코드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1998년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우리의 고통이나 시대정신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한층 성장한 작품”이라며 “‘사내맞선’도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따르긴 하지만, 신분 차이가 나는 진영서(설인아)와 신하리(김세정) 간의 우정 등 여성들의 연대라는 새로운 매력 포인트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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