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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동식이 고발한다

지역구 40%엔 청년·여성만 공천…광주의 위헌적 시의회 선거

중앙일보

입력

주동식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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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청년에 대한 공천 할당제를 주장한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배경은 지방선거 전략공천에 반대하는 대구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 그래픽=전유진 기자

여성과 청년에 대한 공천 할당제를 주장한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배경은 지방선거 전략공천에 반대하는 대구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 그래픽=전유진 기자

58년 개띠 광주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갔을 때 5·18 항쟁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1985년에 민주화운동청년연합(당시 의장은 김근태)에 소속돼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경기도 안양 지역에서 공장 노동자가 됐다. 87년에는 민중의당 안양 지구당 위원장직을 맡으며 노동 운동을 이어갔다.

이런 내가 현직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당협위원장(서구갑)이다. 광주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선거에 나가 당선한다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2년 전 총선에 출마해 예상대로 고배를 마셨다. “호남이 변해야 대한민국이 살아난다”고 외쳤는데,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던진 유권자의 시선은 싸늘했다. “광주는 5·18 제사의 도시”라는 말을 해 ‘막말 후보’라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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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에서의 민주당 독주는 광주에, 그리고 대한민국 전체에 불행한 일이라는 소신을 접을 수 없기에 남들이 무모하다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친노·친문 세력, 운동권 출신 586, 호남 토호세력이 호남과 광주를 정치적 숙주로 악용하는 현실을 타파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여성·청년 선거구 지정은 참정권 박탈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계단에 붙어 있는 지방선거 안내문. [연합뉴스]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계단에 붙어 있는 지방선거 안내문. [연합뉴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광주는 요즘 6월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의 공천 때문에 시끄럽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이 20개 선거구 중 4개를 ‘청년 선거구’로, 다른 4개를 ‘여성 선거구’로 지정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전체의 40%가 지정 선거구가 됐다. 동구 제2, 서구 제2 등 8개의 해당 지역구까지 정했다. 이에 따라 그 여덟 곳에서는 청년이 아니면, 여성이 아니면 민주당 후보로 나설 수가 없다. 광주의 여성 후보 전용 선거구는 전에도 있었지만, 청년 전용은 이번에 처음 도입된다.

남의 당 일인지라 내가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광주가 정치적 발전이 멈춘 채 점점 외딴 섬처럼 돼 가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기가 힘들다.

민주당은 여성과 청년의 정치적 진출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차별 시정을 위한 ‘적극적 차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이라서, 청년이 아니라서 자기 지역의 시의원이 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는 것은 중대한 참정권(피선거권) 침해다. 헌법에 명시돼 있는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공천 과정에서 청년과 여성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성별과 나이를 이유로 입후보 자체를 막는 것은 폭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광주에서 민주당 공천증은 당선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광주 지역 국회의원들이 개인적 친소 관계를 개입시켜 사실상 공천이 아닌 사천(私薦)을 하는 수단으로 여성과 청년 간판을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성·청년 선거구의 유력 후보 명단이 돌고 있는데 대부분이 운동권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과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여성 환경운동가는 작고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원로의 딸이다. 여성·청년 할당제가 ‘세습 공천’으로 기득권 카르텔 유지에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준호 광주시장 예비후보는 28일 “광주시 광역의원 공천의 여성·청년 특구 선거구 결정이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특정인 배려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내정설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기득권 위한 썩은 생태계 

해마다 5000~7000명의 청년이 광주를 떠난다. 일자리 부족과 청년 세대에 적합한 문화 인프라의 부재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일자리 부족은 광주의 정치권이 비대화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천 경쟁이 전개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청년들이 수도권 등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지만 좋은 곳에 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광주에 남은 청년들은 시민단체와 노조의 상근자, 지역 언론사 등에서 일자리를 찾는다. 모두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직역이다. 여기에서 경험과 역량을 쌓고 주변의 인정을 받으면 국회의원 보좌진을 거쳐 금배지를 달게 되는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유지된다.

이런 생태계는 다른 지역보다 치열한 공천 경쟁을 낳는다. 대개 경쟁이 치열해지면 그 생태계는 좋아진다. 열린 공간일 경우에는 그렇다. 하지만 광주의 정치판은 철저하게 닫힌 공간이다. 오직 5·18과 특정 이념을 내세운 세력만이 그 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 특정한 정치적 상징 자산과 이념을 독점한 정치 집단이 정상적인 경쟁을 배제하고 자신들의 사적 관계에 따라 정치적 결정을 좌우한다. 이렇게 썩은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여성·청년 공천 할당제가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민주화의 성지라는 곳에서 개인의 참정권과 유권자의 선택권을 근원적으로 빼앗는 일이 벌어지는데, 민주당은 ‘균형 있는 정치 생태계 조성’ 차원이라고 말한다. 경쟁 당 소속인 내가 부끄럽다.

지난 16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이 광주 북구 운정동 5·18 국립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이 광주 북구 운정동 5·18 국립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광주 등 호남 출신 고위 공직자는 역대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광주가 과거 군사정권 시대의 대구와 비슷해졌다. 군사정권 시절 대구에서 서너 집 가운데 한 집은 청와대와 연결되는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광주도 그렇다.

한국처럼 경제와 산업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큰 나라에서는 ‘고위직 효과’가 나타나기 쉽다. 특정 지역 출신이 정부 고위직에 많이 진출하면 그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광주에 등록된 승용차 가운데 외국산 비율은 2015년에 2.3%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에는 12.25%로 급격히 상승했다. 문제는 그런 경제적 활성화가 인프라 확대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토호세력과 그 주변의 이득으로 집중된다는 점이다.

광주의 변화는 결국 시간문제 

6월 지방선거가 2018년처럼 민주당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기는 어렵다. 수도권에서 민주당의 기반이 약화할 경우 거기에서 활동했던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다음 총선부터 광주와 호남으로 몰려올 가능성이 크다. 이는 광주와 호남 정치 생태계의 악순환을 더욱 고착시킬 수 있다. 최근에 만난 전남대의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586 좌파 카르텔이 깨져야 광주가 발전한다. 그들의 시대가 끝나야 광주에 새로운 길이 열린다.”

광주의 근본 문제는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가치와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5·18과 민주화는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이자 희생이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라는 근대화 과정의 연장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좌경화와 반기업, 반시장, 반대한민국으로 흐르기 쉽다. 그렇게 되면 좌파의 이념적 가두리 양식장으로 전락하는 것이며, 이는 다시 광주의 고립을 심화시킨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광주의 변화가 시작됐고, 그 변화가 비가역적이라는 점이다. 당분간 민주당과 기득권 세력으로의 결집은 더 강화될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승리가 부른 반작용 때문이다. 그럼에도 광주의 변화는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광주의 지식인과 엘리트들이 이 분명한 역사의 진실을 외면해도 나는 계속 괴물 거인을 향해 돌을 던질 것이다. 대한민국과 광주가 하나 되는 미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