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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투표 90%가 해외…한국서 안 떠도 대박, K팝 글로벌 팬덤 [K팝 세계화 리포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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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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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9인조 신인 걸그룹 케플러. [사진 웨이크원·스윙엔터테인먼트]

한중일 9인조 신인 걸그룹 케플러. [사진 웨이크원·스윙엔터테인먼트]

일본에 거주하는 40대 영국인 대니얼은 K팝 걸그룹 케플러의 팬이다. 지난해 일본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아베마TV에서 방송한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플래닛 999: 소녀대전’을 보고 일본인 연습생 사카모토 마시로에 빠져들었다. 매일 온라인 투표에 참여했다. 그의 바람대로 마시로는 최종 순위 8위에 올라 9인조 걸그룹 케플러로 데뷔했다.
 12회 방영된 걸스플래닛 999는 단 한 번도 시청률 1%를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유튜브의 관련 영상 누적 조회 수는 4억4000만 회를 넘겼다.
 올 1월 3일 신곡을 내고 데뷔한 케플러는 멜론 같은 국내 음원 서비스 시장에선 상위권에 오르지 못했다. 한국의 유튜브 주간 인기 아티스트 순위도 데뷔 주는 73위, 그다음 주는 4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첫 1주일간 20만6000여 장의 앨범을 팔면서 신인 걸그룹 기록을 깼다. 신인 걸그룹이 첫 주에 20만 장을 판 것은 역대 처음이었다. 한국에서의 인기와 해당 그룹의 ‘성공’이 꼭 일치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유튜브에서 케플러가 소비되는 주요 국가 20. 일본 인기가 압도적이다. 자료: 유튜브

유튜브에서 케플러가 소비되는 주요 국가 20. 일본 인기가 압도적이다. 자료: 유튜브

 한국인 6명, 일본인 2명, 중국인 1명으로 구성된 케플러는 데뷔 멤버 선발권을 전 세계에 개방해 탄생했다. Mnet은 이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인에게만 투표권을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게임사인 NC소프트가 만든 ‘유니버스’ 앱을 통해 오디션 기간(2021년 7~10월)에 누구나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가 좋아하는 연습생이 꿈을 이루는 것을 도와준다는 개념이 좋아서 투표했다”(코바치 루카ㆍ21ㆍ헝가리), “매일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캡처해 방영기간 내내 트위터에 공유했다”(사라 나빌라ㆍ16ㆍ인도네시아) 등 해외 팬들의 참여가 봇물을 이뤘다. 총 누적 투표 수는 1억297만여 표. Mnet 측은 “해외 투표가 90% 정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오디션 선발은 팬덤의 결집력을 강력하게 만들었다. 직접 조립하는 가구 ‘이케아’가 최고 품질이 아니더라도 만족도가 높은 이유와 마찬가지다.

2020년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를 통해 데뷔한 보이그룹 엔하이픈. 하이브와 CJ ENM이 공동 제작해 글로벌 팬덤을 공략하고 있다. [사진 빌리프랩]

2020년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를 통해 데뷔한 보이그룹 엔하이픈. 하이브와 CJ ENM이 공동 제작해 글로벌 팬덤을 공략하고 있다. [사진 빌리프랩]

 대니얼은 30장이 넘는 케플러의 데뷔 음반을 구입했다. 앨범마다 무작위로 1장씩 들어있는 멤버 포토카드 중 마시로의 카드를 갖기 위해서다. 그는 “최근 ‘더 스타(The Star)’라는 잡지 2월호에 케플러 특집기사가 실리고 포토카드도 들어있어 36권을 샀다”고 말했다.
 가볍게 무료 음악을 듣는 사람만으론 K팝 그룹이 생존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앨범을 구매해 소속사에 수익을 올려주는 팬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앨범을 사는 팬의 국적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글로벌 팬덤의 위력은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2020)를 통해 데뷔한 엔하이픈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CJ ENM과 하이브가 공동 제작한 ‘아이랜드’도 시청률은 평균 0.75%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0년 11월 데뷔한 엔하이픈이 지난해 10월 낸 첫 정규 앨범 ‘디멘션: 딜레마’는 첫 주에만 81만8000장이 판매됐다. 2월 말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엔하이픈의 유튜브 음악 관련 조회 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필리핀, 일본, 인도네시아, 미국, 태국 순이었다. 한국은 10위에 그쳤다.
 한일문화교류기금 펠로로 방한해 한국 대중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모리 마유미 전 일본 아사히신문 싱가포르 특파원은 “K팝은 음악과 퍼포먼스 수준이 높아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에서는 군무를 잘 추는 가수가 적기 때문에 K팝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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