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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교체기, 검찰의 급박한 모드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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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사회1팀장

정효식 사회1팀장

“바보들의 행진.” 영화 얘기가 아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사퇴한 전직 검사장이 최근 서울동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산업부 블랙리스트, 삼성웰스토리 수사 착수를 두고 냉소하며 한 말이다. 검찰이 범죄 혐의를 수사하는 당연한 일을 두고 뒷말이 무성한 건 정권 교체기란 묘한 시점뿐만 아니라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두 사건 모두 오래 묵힌 고발 사건이다. 특히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국민의힘 전신 자유한국당이 2019년 1월 24일 고발한 사건으로 장장 38개월만에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삼성웰스토리 의혹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6월 삼성전자 등 4개사가 삼성물산 자회사인 웰스토리에 급식 일감을 몰아준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로 삼성전자 등을 고발한 사건이다.

38개월을 묵힌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에 착수한 김오수 검찰총장. [뉴스1]

38개월을 묵힌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에 착수한 김오수 검찰총장. [뉴스1]

한전 4개 자회사 사장단을 포함해 산업부 산하 공기업 사장들에게 사표를 강요했다는 블랙리스트 사건은 엄밀히 말해 재수사다. 2019년 4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같은 성격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고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재판에 넘겼다. 같은 해 5월엔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에 착수해 고발장에 적힌 의혹과 같이 “산업부 국장이 2017년 9월 2일 발전사 사장들을 광화문에 있는 호텔로 불러 사표 제출을 종용했고 6일 뒤 일괄 사표를 받았다”는 진술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같은 해 7~8월 인사에서 고검장에 탈락한 당시 한찬식 동부지검장과 각각 서울고검 검사와 안동지청장으로 좌천된 권순철 차장검사, 주진우 형사6부장이 사표를 냈다. 환경부 수사에 대한 보복 인사로 수사 지휘부 전원이 옷을 벗고 수사팀도 해체됐다. 이후 동부지검은 ‘권력 수사의 무덤’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5명의 검사장을 거치며 문재인 정부 권력형 비리사건이 이곳에 가면 묻히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묻었던 사건 수사가 대선 보름 뒤 재개됐다. 그 시점도 김오수 검찰총장이 야당 정치인의 거취 압박에 “법과 원칙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겠음”이란 입장문을 낸 직후다. 공교롭게 수사를 재개한 최형원 현 동부지검 형사6부장은 김 총장의 고교 후배다. 삼성 수사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고교 후배이자 직전 검찰국장인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직전 검찰과장인 김태훈 4차장이 지휘한다. 마무리가 급한 대장동 의혹은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하면서다.

권력교체기, 검찰의 급박한 모드 전환은 뒤탈을 불렀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임명돼 이명박 정부 초까지 이어진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노 전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다. 수사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김오수 총장이 반면교사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