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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사라능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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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조선 명종 때 명나라와 무역을 금지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중국에 간 사신들이 나랏일보다 물건을 사고파는 데 혈안이 되어서다. 심지어 명나라 측에서는 조선 사신들의 상행위가 너무 심하니까 이들 숙소 주변에 울타리를 쳐버렸다. 정해진 일정 외엔 나오지 못 하게 한 것이다. 나라 망신이었다.

당시 조정은 이 문제를 여러 차례 검토했지만 결국 금지하지 못했다. 당시 사신들이 명나라에서 사 오는 물품 중에는 사라능단(紗羅綾段)이 있었는데, 고위층이 이것에 사족을 못 썼기 때문이다. 사라능단은 당시 중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고급 비단이었다. 영의정 심연원은 “당상관 이상이 사라능단을 입는 것은 곧 조종조의 구법(舊法)이니,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주장했고, 우의정 윤개도 “재상들이 사라능단을 입어온 지는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금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가세했다.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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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중종 때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연산군 시대 이후 부녀자들이 사라능단으로만 옷을 만들어 입는 등 사치풍조가 심각하다며 중국에서 들여오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왕 중종은 “사라능단을 쓰지 못 하게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처리하기가 진실로 어렵다. 종실(宗室)·재상 및 부녀들의 겉옷은 모두 아청색(鴉靑色) 비단으로 마땅히 중국에서 무역해야 한다”며 넘어갔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연산군 때 행해진 많은 것을 ‘적폐’로 몰아 단죄했지만, 패션만은 건드리지 못했다. 당시 그렇게 애써 사라능단으로 몸을 감쌌던 그들이지만, 후세에 권위 있고 품격 있는 조상들로 기억되고 있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