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톱니바퀴 같은 현대문명…독일 사진 거장 거스키의 시선

중앙일보

입력 2022.03.30 00:03

지면보기

경제 06면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사물과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아마존(Amazon), 2016. [사진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사물과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아마존(Amazon), 2016. [사진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앙상한 나무와 잡초만 보이는 겨울 강가, 거대한 화면 속에 보이는 사람들이 깨알 같다. 여기저기 흩어져 각자 따로인 사람들에게 기쁨은 없어 보인다. 간격을 둔 모습이 ‘따로 또 같이’다. 독일 출신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67)의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2021)에는 코로나 시대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있다.

스펙터클한 화면에 인류와 문명에 대한 통찰을 담아온 현대 사진의 거장 거스키 개인전이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31일 개막한다. 국내 첫 거스키 개인전이다. ‘파리 몽파르나스’(1993), ‘99센트’(1999, 리마스터 2009) 등 대표작 및 1980년대 초기작부터 올해 신작까지 총 40점을 선보인다. 세로 2m, 가로 4~5m 대형 작품이 즐비한 이번 전시에서 ‘얼음 위를 걷는 사람’(2021)과 ‘스트레이프’(2022) 등 신작 두 점은 전 세계 첫 공개다.

크루즈(Kreuzfahrt), 2020. [사진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크루즈(Kreuzfahrt), 2020. [사진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거스키는 1990년대 중반부터 수평과 수직의 기하학적 요소를 강조하며 현대성의 단면을 표현해왔다. 획일화된 아파트 입면, 현기증 날 정도로 상품이 빼곡한 할인점 진열장, 정형화된 사무공간 등 현대 사회 풍경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초반엔 아날로그 카메라로 작업했고, 1990년대 초중반부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후작업’으로 사진의 틀을 넓히는 실험을 해왔다.

거스키 작품은 현실을 닮았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과 장면을 보여준다.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이미지를 재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촬영’에서 ‘제작’으로 전환했다. 우혜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부관장은 “거스키는 공장이나 아파트같이 현대 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를 포착해 거대한 사회 속 개인의 존재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고 말했다.

시카고 선물거래소 Ⅲ (Chicago Board of Trade Ⅲ), 2009. [사진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시카고 선물거래소 Ⅲ (Chicago Board of Trade Ⅲ), 2009. [사진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거스키의 ‘라인강 Ⅱ’(1999)가 433만 달러(약 50억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사람과 건물이 없는 독일 뒤셀도르프 외곽의 라인강을 몇 개의 수평선으로 담아냈다. 사진 작품으로는 당시 전 세계 최고가였다.

이번 전시에선 ‘라인강 Ⅱ’ 대신 ‘라인강 Ⅲ’(2018)를 볼 수 있다. ‘라인강 Ⅱ’와 배경과 구성은 거의 같지만, 분위기는 극과 극이다. 우 부관장은 “두 사진은 같은 계절(여름)에 같은 배경과 구성으로 촬영된 것”이라며 “2018년 가뭄으로 강 수위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고 동식물이 살기에 가혹한 환경이 된 사실을 반영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최근 논의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초대형 화면에 격자형 아파트의 획일적인 입면을 담아낸 ‘파리 몽파르나스’도 대표작이다. 작가가 디지털 후작업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발표한 것으로, 이 사진을 통해 거스키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꽉 짜인 인공 구조물을 직시한 장면으로 시대의 감성과 정신을 날카롭게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거스키 개인전 전시장. [사진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거스키 개인전 전시장. [사진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작품이 ‘시카고 선물거래소 Ⅲ’(2009)와 ‘아마존’(2016)이다. 특히 미국 아마존 물류센터를 촬영한 ‘아마존’은 압도적인 스케일과 디테일이 특징이다. 한눈에 다 잡히지 않는 거대 매장의 상품을 하나씩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로 담아냈다. 진열 선반을 각각 찍은 후 합성한 이 작품은 소비지상주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걸작으로 꼽힌다.

거스키는 1955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뒤셀도르프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사진관을 운영해 어릴 때부터 카메라 등 장비에 둘러싸여 자랐다. 80년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서 ‘유형학적 사진의 선구자’라 불리는 베른트· 힐라 베허 부부한테 배운 이른바 ‘베허학파’다. 거장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러프, 칸디다 회퍼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거스키는 200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어진 순회전을 열었고, 파리 퐁피두 센터(2002), 시카고 현대미술관(2002),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2003), 헤이워드 갤러리(2018) 등에서 개인전을 했다. 우 부관장은 “이번 전시를 위해 거스키는 2018년 등 총 세 차례 한국을 찾았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전했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