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 재탄생한 ‘돼지의 왕’…“피해자의 복수는 정당한가? 함께 고민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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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을 집필한 탁재영 작가(오른쪽)와 동명의 애니메이션 원작자인 연상호 감독이 29일 화상 인터뷰를 갖고 원작과 드라마 사이의 차이점과 관전 포인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 티빙]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을 집필한 탁재영 작가(오른쪽)와 동명의 애니메이션 원작자인 연상호 감독이 29일 화상 인터뷰를 갖고 원작과 드라마 사이의 차이점과 관전 포인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 티빙]

“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에게 사적 복수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이같은 도덕적 딜레마를 시청자들도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탁재영 작가)

지난 18일 1, 2화를 시작으로 현재 4화까지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돼지의 왕’은 언뜻 보면 학창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주인공이 가해자들을 하나하나 처치해나가는 통쾌한 복수극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리려는 시도로 읽히기도 한다. 모두 크게 어긋난 해석은 아니지만, 극본을 집필한 탁재영 작가는 “‘돼지의 왕’은 단순히 학교폭력만을 다루는 작품이 아니라, 세상은 왜 강자와 약자로 서열화 돼 있으며 그 사이에 폭력은 왜 존재하는지 등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한다.

탁 작가와 동명의 애니메이션 원작자인 연상호 감독은 29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1시간 35분 분량의 원작을 12부작 드라마로 만들며 달라진 부분 등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2011년 개봉한 ‘돼지의 왕’은 ‘부산행’, ‘지옥’ 등 스크린과 OTT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연 감독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의 2011년 개봉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포스터(왼쪽)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로 드라마화 된 '돼지의 왕' 포스터(오른쪽).

연상호 감독의 2011년 개봉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포스터(왼쪽)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로 드라마화 된 '돼지의 왕' 포스터(오른쪽).

원작이 거느린 팬층도 두터운 만큼 탁 작가는 “원작의 메시지와 의미를 훼손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많이 했다”며 “연 감독이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는 그대로 가져가되 일반 시청자들도 재밌게 볼 수 있도록 리부트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고민을 거쳐 학창시절 이야기가 중심이었던 원작은 범죄 스릴러 요소가 가미된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중학교 시절 끔찍한 학교폭력에 시달린 황경민(김동욱)이 과거 가해자들을 연쇄 살해하고 이를 20년 전 단짝이자 형사가 된 정종석(김성규)이 쫓는다는 게 주요 설정이다. 경민의 잔혹한 범죄와 종석의 추적 사이사이에 이들이 겪은 과거 폭력의 기억이 교차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 경민이 저지르는 복수극의 결말 등에 궁금증을 품게 한다.

이미 자신의 애니메이션 다수가 영상화된 바 있는 연 감독은 ‘돼지의 왕’을 드라마로 각색하게 된 과정에 대해 “탁 작가와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기 때문에 ‘돼지의 왕’을 성인 황경민의 연쇄살인 이야기로 만들면 시리즈가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먼저 했었다”며 “2부까지의 대본은 같이 얘기하면서 썼지만, 그 이후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드라마가 그려낸 캐릭터들의 성인 모습에 대해 “원작 개봉 당시 ‘폭력 가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며 “드라마가 10여년 전 그 질문들에 대한 좋은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티빙 '돼지의 왕'은 국내 OTT 제작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19금'을 내걸고 다소 적나라하게 폭력, 범죄 장면을 묘사한다. 이에 대해 탁재영 작가는 ″극 초반에는 주인공의 복수를 보면서 시청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그것이 과연 온당한지 고민하게 되는 딜레마를 위해 의도했다″고 말했다. [사진 티빙]

티빙 '돼지의 왕'은 국내 OTT 제작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19금'을 내걸고 다소 적나라하게 폭력, 범죄 장면을 묘사한다. 이에 대해 탁재영 작가는 ″극 초반에는 주인공의 복수를 보면서 시청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그것이 과연 온당한지 고민하게 되는 딜레마를 위해 의도했다″고 말했다. [사진 티빙]

그는 드라마화된 ‘돼지의 왕’이 던지는 ‘복수의 정당성’을 둘러싼 딜레마에 대해 “1~4회에서는 사실 ‘가해자’라고 통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뒤로 진행될수록 점점 피해와 가해가 실타래처럼 얽히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며 “복수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 앞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티빙을 통해 공개된 ‘돼지의 왕’은 국내 OTT 오리지널 시리즈로는 드물게 시청연령 19금을 내건 만큼, 폭력 및 범죄 장면이 다소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폭력 장면을 연기하는 아역 배우들을 위해 제작사 측에서 심리상담사를 상주하게 했을 정도다. 이같은 수위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 탁 작가는 “실제로도 많이 벌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을 좀 솔직하게 다루고 싶었다. 안 그러면 왠지 ‘가짜’가 될 것 같았다”며 “시청자가 극 초반에는 경민의 복수를 보며 연민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그것이 과연 온당한지 고민하게 되는 딜레마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좀 리얼하게 가자’고 하게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을 집필한 탁재영 작가(왼쪽)와 동명의 애니메이션 원작자인 연상호 감독. [사진 티빙]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을 집필한 탁재영 작가(왼쪽)와 동명의 애니메이션 원작자인 연상호 감독. [사진 티빙]

두 사람은 20년 전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는 김동욱·김성규 배우를 향한 만족감도 드러냈다. 연 감독은 “김동욱의 연기를 보며 ‘처단자’로서의 카타르시스뿐 아니라 죄의식까지 표현하는, 굉장히 ‘사려 깊은’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며 “김성규는 그의 연기만으로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탁 작가도 “현재 성인들의 행동이 20년 전 사건과 연결돼있다 보니 성인 분량의 장면만 보면 ‘갑자기 왜 이렇게 화를 내지?’ 싶은 장면들이 많다”며 “그런 부분을 배우분들이 훌륭하게 연기해주셔서 과거 사건과 편집해서 붙였을 때 엄청난 힘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다음달 1일 5, 6화를 공개하며 중반부로 접어드는 ‘돼지의 왕’의 향후 관전 포인트는 과거 서사가 더해지며 변화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될 전망이다. 원작에서 경민과 종석 사이에 나타나 이들의 우상으로 등극하는 김철 캐릭터는 아직 드라마에선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연 감독은 “제목이 ‘돼지의 왕’인데 아직 ‘돼지의 왕’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다. 다음 회차부터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탁 작가는 “지금까지는 단순히 연쇄 살인마를 추격하는 내용이었다면, 갈수록 이게 단순한 사건이 아님이 드러나며 인물들의 심적 변화 등 깊이가 더해진다”며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시청을) 시작하면, 아마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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