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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는 日…교과서에 '종군위안부' '강제연행' 표현 지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조선인 강제연행’과 ‘종군위안부’와 관련한 표현이 사라졌다. 또 일본이 “고유 영토”라고 주장해온 이른바 다케시마(竹島), 우리의 독도에 대해선 일본 정부 입장만을 기술하는 경향이 한층 강해졌다.

조선인 ‘강제징용’ 역사 지우기 

일본 문부과학성은 29일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열고 내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생이 사용할 239종의 역사·사회 등의 교과서가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심사를 통과한 역사 분야 교과서는 총 14종으로, 일본사 탐구 7종과 세계사탐구 7종이다.

이들 교과서는 정부 검정을 거치면서 신청 당시 있었던 ‘강제 연행’ 혹은 ‘강제 징용’이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동원’ 혹은 ‘징용’이란 단어로 수정됐다. 지난해 4월, 일본 정부는 우리 국무회의에 해당하는 각의를 통해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강제연행, 종군 위안부 등의 용어 사용이 부적절하다며 이를 ‘징용’이나 ‘위안부’로 통일하도록 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용의 '강제성'을 부인하려는 의도에 따른 조치다.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표기하며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설명한 일본 교과서들. 이영희 특파원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표기하며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설명한 일본 교과서들. 이영희 특파원

일본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이번 교과서 검정에서도 “정부의 통일적 견해에 기초한 기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도록 했다. 짓쿄(実教)출판사 등은 ‘강제 연행’이란 용어를 사용했지만 정부 지적에 따라 강제성을 배제한 단어인 ‘동원’으로 용어를 교체했다. 당초 짓쿄출판의 일본사 탐구에는 “조선인 일본 연행은 1939년 모집 형식으로 시작돼 1942년부터 관의 알선에 의한 강제 연행이 시작됐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검정을 거치며, 강제 연행은 모두 동원으로 바뀌었다. 5개 출판사 7개 교과서에 조선인 동원에 대한 내용은 모두 실렸지만, 정작 중요한 강제노동을 하도록 했다는 내용은 지워졌다.

일본 짓쿄사의 고등학교 '일본사탐구' 교과서. '일본 정부가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약 80만명의 조선인을 공장이나 탄광 등에 연행해 일을 시켰다'고 적혀 있다. 문부과학성은 이 중 '연행'이란 단어를 강제성이 제거된 표현인 '동원'으로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이영희 특파원

일본 짓쿄사의 고등학교 '일본사탐구' 교과서. '일본 정부가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약 80만명의 조선인을 공장이나 탄광 등에 연행해 일을 시켰다'고 적혀 있다. 문부과학성은 이 중 '연행'이란 단어를 강제성이 제거된 표현인 '동원'으로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이영희 특파원

‘종군 위안부’ 빼고 독도는 '영토분쟁'으로만 서술

종군 위안부 역사 지우기도 진행됐다. 일본 정부는 종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공식 사죄한 고노담화(1993년)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교과서 상에선 ‘종군 위안부’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도쿄서적(東書)은 종군 위안부 내용과 고노담화를 실었는데, 심사를 거치면서 지난해 이뤄진 각의 결정 내용을 반영한 뒤에야 검정을 통과했다. 짓쿄출판 역시 일본사 탐구에서 “많은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고 썼지만, 이를 위안부로 수정했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아시아평화와 역사연구소는 이번 일본 교과서 검정에 대해 “일본의 외교적 관점에서 위안부 합의,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을 다루고 있다”며 “일본 정부 입장 기술이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독도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사탐구 7종 교과서 외에도 독도를 기술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사 탐구 7종 중 2종이 독도 문제를 기술하고 있는데, 모두 ‘고유의 영토’를 주장하며 영토문제의 일환으로만 기술했다. 이 중 산천(山川)출판사는 독도에 대해 “1905년 1월 각각 타국이 점령한 흔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일본 영토에 편입했다”고 기술했는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수정 의견을 내지 않았다.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 일본 역사 교과서와 관련해 초치되고 있다. [뉴스]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 일본 역사 교과서와 관련해 초치되고 있다. [뉴스]

정부 “강한 유감”…“독도 놓고 허황된 주장”

정부는 이번 일본 교과서 검정에 대해 항의하며 시정을 촉구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우리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및 강제징용 문제 관련 표현 및 서술이 강제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변경된 것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그간 스스로 밝혀왔던 과거사 관련 사죄 및 반성의 정신에 입각한 역사교육을 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반박했다.

독도 왜곡과 관련해선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허황된 주장이 담긴 교과서를 일본 정부가 또다시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며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어떠한 주장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상렬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이날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로 구마가이 나오키(熊谷直樹)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들여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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