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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물 먹은뒤 실명…평화회담 '키맨' 러 재벌, 독극물 소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평화협상에 참여한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55)가 협상 과정 중 한때 독극물 중독 증상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얼굴·손 피부 벗겨지고 눈 충혈, 실명까지…지금은 상태 호전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아브라모비치가 지난 3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회담에 참석한 직후 얼굴과 손 피부가 벗겨지고 눈이 빨갛게 충혈되며, 고통을 수반한 눈물이 계속 흐르는 증상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우크라이나 측 협상 대표단 고위 관계자 2명도 비슷한 증세를 겪었는데, 그 중 한명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루스템 우메로프(39)라고 WSJ은 전했다. 특히 당시 아브라모비치는 수 시간 동안 시력을 잃었다.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55)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평화협상 과정에서 중독 의심 증세를 겪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AFP=연합뉴스]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55)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평화협상 과정에서 중독 의심 증세를 겪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AFP=연합뉴스]

탐사전문 매체 밸링캣에 따르면 이들 3명은 증상이 나타나기 몇 시간 전부터 초콜릿과 물만 섭취했으며, 회의를 마치고 키이우의 한 아파트로 이동한 뒤 중독 증상이 나타났다. 이후 이튿날 리비우를 거쳐 폴란드, 이스탄불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회담 일정을 소화했다. 현재 이들 3명은 생명에 지장이 없고, 건강을 회복한 상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당시 아브라모비치와 만났으나, 아무런 증상을 겪지 않았다고 WSJ은 전했다.

소식통들은 평화회담을 방해하려는 모스크바 강경파들이 비밀리에 이들을 공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서방 전문가들은 해당 증세가 생화학 무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전자기 방사선 공격에 의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러시아 크렘린궁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14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국제 공항 VIP 라운지에서 출국장으로 향하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4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국제 공항 VIP 라운지에서 출국장으로 향하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로이터=연합뉴스]

일각에선 이들이 독극물 중독이 아닐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로이터 통신은 익명의 미국 관리를 인용해 "정보기관이 이들의 증상은 중독이 아니라 환경적인 이유 때문일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도 선을 긋고 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온갖 추측과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중독 당사자로 알려진 우메로프 의원도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믿지 마라"고 당부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현지 국영TV와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선정적인 뉴스에 목말라 있다"면서도 "러시아와의 협상에 참석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말 것을 권한다. 가급적 (물건의) 표면을 만지는 것도 피하라"고 말했다.

푸틴·젤렌스키 모두와 긴밀한 관계…휴전협정 키맨으로 활약

어머니가 우크라이나 출신인 아브라모비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자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그는 양국 간 휴전을 위한 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로 거론되며 러시아 측 키맨으로 평화협상 과정에 긴밀히 관여해 왔다.

아브라모비치는 러시아 협상단 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최근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시민들의 대피 등 인도주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는 아브라모비치에 대한 제재를 보류해 달라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고 WSJ이 보도한 바 있다. 다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인 아브라모비치는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 대상에는 올라가 있다.

아브라모비치는 테러 위협을 받은 후에도 폴란드, 터키를 차례로 방문하며 전쟁 당사국 간 중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아브라모비치는 오는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진행될 5차 평화회담을 위한 물밑협상에도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회담의 최대 걸림돌로 꼽히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 등 영토 보전 문제와 관련한 크렘린궁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더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이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장기 임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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