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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태일의 인정불가

이대남의 이준석 지지, 팬덤 아닌 합리적 선택

중앙일보

입력

김태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ㆍ 前신전대협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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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 특정 정치인을 향한 팬덤의 문제점을 지적한 임명묵 작가의 칼럼을 읽은 김태일 신(新)전대협 의장이 2030 남성의 이준석 지지는 기존의 정치 팬덤과는 다르다는 의견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신전대협은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전대협과는 무관하게 보수 성향 대학생들이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만든 단체입니다.

젊은이들이 목소리를 아는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인지도가 높은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한 명입니다. 지난 1년간 그는 많은 이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 대표는 과거의 ‘총재’나 ‘당 대표’와는 다르기에 여러 평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승리로 마무리한 시점에서 그에 대한 평가도 입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포옹하고 있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 [뉴스1]

지난 6일 국회에서 포옹하고 있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 [뉴스1]

이준석의 역할

지난해 12월은 윤석열 후보가 가장 큰 위기를 맞이했던 때입니다. 이 대표가 전국을 유랑하며 '실패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겠다'는 폭탄 발언까지 했습니다. 신지예씨 영입으로 하락하던 윤 후보 지지율은, 이 대표와의 갈등까지 겹치며 폭락했습니다. 이 '가출' 사건은 이 대표를 향한 '가볍다'는 평가의 핵심 근거입니다.

그러나 당시 여론조사에선 이 사건의 책임이 윤 후보에게 있다는 응답이, 이 대표에게 있다는 응답보다 높았습니다. 이는 이 대표와 갈등했던 소위 ‘윤핵관’의 대중적 비호감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캠프에선 ‘새시대위원회’를 만들고 2030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몬 ‘페미니스트 인사’를 영입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이 대표가 가출 같은 극단적 방법을 쓰지 않았다면 그의 의견은 관철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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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젠더 이슈입니다. ‘이준석은 반페미의 기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대표의 이러한 행보는 페미니즘에 시달려온 이대남을 불러모았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 논객이나 페미니스트들은 ‘이준석이 성별 갈라치기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갈등의 불을 지른 진범은 갈라치기 전문인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소수의 페미니즘 세력이었습니다.

물론 이 대표도 반성할 점이 있습니다. 선거 막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30 여성은 결집하기 어렵다'는 무시·조롱 발언을 했습니다. 이대남만큼 이대녀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행보는 이 대표의 정체성을 '반페미'가 아닌 '반여성'으로 보이게 해버렸습니다. 역대 대통령 선거 중 보수 정당이 2030 여성의 표를 가장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대녀는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프레임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대표는 호남은 확실히 챙겼습니다. 복합쇼핑몰 공약을 화두로 ‘서진’을 선언했습니다. 실제 분위기는 출렁였고, 호남 득표율 20% 초과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그렇지 않았지요. 선거 막판에 내놓은 대선 10%p 차이 승리 예상도 오히려 이재명 후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냈습니다. '정치9단'이라 불리던 박지원 국정원장은 이런 말은 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와 골프는 고개를 들면 망한다.'

여러 부족했던 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정권교체를 이뤄내고, 젊어진 국민의힘’이란 결과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대표가 아니었다면, 젊은 남성들이 '애초에 빨간 당은 거들떠 보지 않았을 것'이란 의견이 많습니다. 만일 지난해 6월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대선 승리와, 당의 쇄신 등 지금 국민의힘이 이뤄낸 결과를 모두 얻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2030이 원하는 건 권리 찾아줄 사람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접한 카드뉴스·짤·밈·쇼츠 등의 콘텐트는 젊은 지지자들이 스스로 만든 것들입니다. 선거 캠프가 생산해 일방적으로 유포하던 과거와 달리, 이번 선거에선 유권자들이 만든 콘텐트를 정치인들이 공유하며 소통했습니다. 이와 같이 2030세대는 유행과 흐름을 주도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를 노무현·박근혜·문재인 등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아이돌을 향한 ‘팬덤 문화’의 연장선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30세대의 정치인 지지 현상은 특정 인물을 향한 맹목적 팬덤과는 다릅니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만약 젠더 이슈에 대한 지금까지의 발언을 뒤집으면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합니다. 철학과 가치관에 어긋난다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12월 새시대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신지예씨를 영입한 김한길 위원장과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임현동 기자

지난해 12월 새시대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신지예씨를 영입한 김한길 위원장과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임현동 기자

선거 초반 윤석열 후보는 젊은층의 지지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월 이 대표와의 화합 이후, 청년들이 원하는 것들을 전격 수용하고 파격 공약을 제시하자 2030 남성들의 강한 지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김한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장이 또 다시 중용되고, 윤 후보가 여성가족부 존폐 문제에 있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자 ‘우리는 토사구팽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2030세대에게 정치인은 권력자가 아니라 대리인에 불과합니다. 2030세대는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과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특정 인물을 선택할 뿐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가치를 저버리면 가차 없이 지지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과의 동행을 잊고, ‘통합’을 명분 삼아 그들을 그저 병풍으로 취급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방치하고 무시하면 결별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2030세대의 정치세력화는 기존의 정치 관행을 타파하고 소통구조를 쌍방향으로 바꾸었습니다. 기성 정치권이 이를 다시 간과한다면, 젊은층은 또 다시 포기와 무관심으로 화답할 것입니다. 저는 이 같은 정치문화를 전면에 불러들이고 주류로 자리 잡게 한 것을 ‘이준석 현상’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준석 현상’ 이어가야 

정권교체를 이뤄낸 검찰총장, 여당의 대표가 될 젊은 정치인. 그리고 그 그릇에 열망을 담아낸 미래 세대. 이것이 이번 대선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사실들입니다. 2030세대의 열망은 우리가 마주했던, 언제 또 다시 맞이할지 모를 현재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표심을 넘어 정치를 좌우하는 민심이 됐습니다.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며, 자신들을 대변할 정치인을 선택해 어젠다로 만드는 것. 드디어 한국에도 젊은층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생태계’가 구축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은 것은 새 정부가 약속대로 온전히 실현해주는 것입니다. 불통으로 여겨지던 거대 정당을 젊은 바람으로 단숨에 쇄신하고, 무기력하던 새로운 세대에 정치 효능감을 불어넣은 ‘이준석 현상’은 계속 돼야 합니다.

정치인 이준석의 행보가 우리의 가치와 어긋나면 지지는 언제든 깨질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제 2·3의 이준석 현상’을 언제 어디에서든 또 다시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별·계층·지역·세대 등의 관점을 초월한 가치가 유연하게 화합하기 위해 새로운 광장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제 정치인의 몇 마디가 아닌, 모두의 참여와 감시만이 물과 기름 같은 국민 갈등을 스스로 씻어낼 화합의 비누가 되어줄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목소리를 아는 정치인은 얼마나 될까요. 이 미래 세대의 간절한 바람에 역행할 땐 재수(再修)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