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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덕에 실명 위기 극복" 가수 민서연 찾아온 기적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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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독자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인연에 담긴 사연을 보내 주세요.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에 얽힌 어떠한 사연도 좋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photostory@joongang.co.kr

▶13차 마감: 3월 31일

아들은 압니다. 엄마가 가수로 자리 잡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요, 엄마도 압니다. 아들이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요. 서로 알기에 엄지 척입니다.

아들은 압니다. 엄마가 가수로 자리 잡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요, 엄마도 압니다. 아들이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요. 서로 알기에 엄지 척입니다.

안녕하세요. 가수 민서연입니다.

엄마가 가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20여 년 동안 응원해주고 있는
아들과 함께 제 인생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상복이 있었나 봅니다.
노래가 좋아서 20대 초반부터
여러 가요제(CBS 가요제 대상, SBS 사랑의 중계차 대상,
MBC 향토가요제 대상)에 참가했는데
그때마다 좋은 성적이 따라왔습니다.

그렇게 상을 타니 자신감도 생겼고,
어느 날 어릴 적 꿈꿔오던 가수 데뷔의 기회가 찾아와서
첫 앨범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마냥 순탄치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앓던 지병이 있었습니다.
혼자 끙끙 참고 앓다가 더는 견디기 힘들어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심각한 목 디스크였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앨범도 못 내고 가수 데뷔도 불가능하게 될까 하여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그때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아들이
아무 말 없이 치료비를 내주었습니다.
본인도 힘들었을 텐데 말입니다.

더구나 열심히 해서 앨범을 내자며
응원의 편지까지 주더군요.
이에 힘을 얻어
저는 오랜 시간 치료 후에
그렇게도 염원하던 첫 앨범을 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었습니다.

1집 앨범을 내며 가수 협회에 등록도 하고,
전국 방방곡곡 축제 및 행사며 방송국을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송 도중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졌습니다.
무리한 탓인지 이후로 급격히 시력이 떨어지더니
눈이 잘 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려면 운전도 해야 하는데
앞을 볼 수 없다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안과를 찾았습니다.
급성 신경성으로 인해
실명 위기까지 이르렀다는 의사의 진단이었습니다.
더구나 계속 노래를 부르게 되면
안압이 더 올라가 치료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는
통보까지 받았습니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좌절감이 몰려왔지만,
실명은 막아야 한다는 아들의 설득으로
노래를 중단하고 치료에만 전념했습니다.

눈 수술을 하고 2년이 다 돼가던 즈음에
노래에 대한 갈증이
못 견딜 정도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눈이 다시 아플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있었지만,
의사의 조언 및 아들의 응원으로
다시 앨범을 내고 음악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었던 음악을 다시 해서 그런지
아들의 격려 덕분인지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았고 눈도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즈음에 외국 공연 초청도 받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행사,
미국 메릴랜드에서 열린 한인 축제 공연,
독일 정월 대보름 잔치 공연 등
여러 해외 초청 행사에 다녀오면서
그동안 눈 치료로 못했던 음악 활동 갈증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습니다.

당시 혼자 외국 공연 나가는 엄마가 걱정되었는지
아들이 회사 휴가까지 내면서
자칭 매니저로 함께 가줘서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마음에 쏙 드는 트로트 작품이 있어서
신곡 ‘어떡합니까’로 8집 앨범을 냈습니다.
이번에도 코로나로 인해 공연 수입이 없는
엄마의 처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앨범 제작비 전부를 아들이 후원해줬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들도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어렵고 고생이 많았을 텐데도
아무 내색 없이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정말 아들의 꾸준한 관심, 사랑, 응원이 없었다면
가수 민서연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쓰러져도 언제나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도록
항상 곁에서 용기와 희망을 주는
내 아들과 인생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가수 민서연 올림


엄마는 아들의 헌신을 알기에 아들이 더 아립니다. 이제는 아들이 오롯이 자신의 삶을 위하길 바랍니다.

엄마는 아들의 헌신을 알기에 아들이 더 아립니다. 이제는 아들이 오롯이 자신의 삶을 위하길 바랍니다.

사진을 찍는 날 아들은
엄마의 옷을 바리바리 싸서 왔습니다.
정작 아들은 단벌이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엄마만 빛나면 된다’는 마음이 여겨졌습니다.

엄마가 보낸 사연에서 알 수 있듯
아들은 엄마의 버팀목이었습니다.

보낸 사연을 확인하려
다시금 가수 민서연 씨에게 물었습니다.

“엄마에게 어떤 아들인가요?”
“마음 아프지만, 아들이 오랫동안 우리 집 가장 역할을 했어요. 참 철없는 엄마였고 철든 아들이었죠.”
아들이 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는 든든합니다. 아들은 스무살 무렵부터 엄마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아들이 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는 든든합니다. 아들은 스무살 무렵부터 엄마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밤에는 과외 선생하고 낮에는 일하며 엄마를 도왔다면서요?”
“엄마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응원군이 돼 드리고 싶었어요.”
“대체로 아들의 꿈을 위해서 엄마가 헌신을 다 하는데 오히려 엄마의 꿈을 위해서 아들이 헌신했군요.”
“스무 살 때까지는 어머니가 혼신을 다해서 저를 키워주셨으니까요.”
가수 민서연으로 사는 길엔 감당할 수 없는 고비가 따랐습니다. 그럴 때 마다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아들과 노래였습니다.

가수 민서연으로 사는 길엔 감당할 수 없는 고비가 따랐습니다. 그럴 때 마다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아들과 노래였습니다.

“아니 어머니를 돕기 시작한 게 고작 스무살 이였다고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였어요. 당시 집을 떠나려 고민할 정도였어요. 당시 친구 어머니와 제 문제로 상담했었어요. 그분께서 ‘네가 집 문제에 얽히게 되면 네 인생이 참 피곤해진다. 너는 공부를 잘하니 우선 네 길부터 찾아라’며 조언할 정도였습니다.”
“묻기 미안하지만, 집 문제가 뭐였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빚이 좀 많았어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친구 어머니의 조언이 맞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무리 맞다 해도 엄마를 내버려 두면 안 되잖아요. 스무살 때까지 저를 키우려고 엄청나게 고생하시고 겨우 노래를 시작했잖아요. 이제야 하고 싶은 거 하시는 데 지원은 못 해 드리더라도 응원을 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겁니다.”
수많은 고비를 함께 헤쳐온 엄마와 아들은 말합니다.″ 노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합니다″라고요.

수많은 고비를 함께 헤쳐온 엄마와 아들은 말합니다.″ 노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합니다″라고요.

“그게 스무살 어린 나이에 마음먹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닐 텐데요.”
“그때 결정이 가장 힘들었는데 결정을 하고 나니까 편하더라고요. 어떻게든 돈을 벌면 되는 거니까요. 다행히 주변 지인들이 공부를 잘했다는 얘기를 해주셔서 과외를 많이 소개해 주셨죠. 과외 수입이 제일 컸는데 저녁에만 과외 할 수 있으니 낮에는 거의 노가다 같은 힘쓰는 일을 했어요. 나중엔 직장 다니며 밤엔 애들 가르쳤고요. 아무튼 20대를 다 그렇게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딱 서른 살 되니까 딱 통장에 딱 0원이 찍히더라고요. 그렇게 빚 다 갚았어요.”
사진을 찍기 전 엄마는 아들의 손을 잡고 분장실로 이끌었습니다. 아들에게 화장을 해주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난생처음이네. 우리 아들에게 엄마가 화장해주는 거″라 말하며 화장해주는 엄마의 손길에 정성스럽습니다.

사진을 찍기 전 엄마는 아들의 손을 잡고 분장실로 이끌었습니다. 아들에게 화장을 해주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난생처음이네. 우리 아들에게 엄마가 화장해주는 거″라 말하며 화장해주는 엄마의 손길에 정성스럽습니다.

“어머니가 왜 아들에게 고마움을 갚고 싶다며 사연을 신청했는지 알 것 같군요. 그런데 엄마도 나름 활발한 활동을 한 가수니 수입이 웬만큼 되지 않나요?”
“가수란 직업이 정기적인 수입이 있지 않잖아요. 게다가 엄마는 온몸이 종합병원이에요. 혼자 운전하다가 부정맥으로 응급실 간 적도 있고요. 실명할 뻔 한적 도 있고요.”

옆에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민서연 씨에게 물었습니다.

“실명 위기를 겪었다는 게 무엇 때문입니까?”
“현철, 최진희, 현숙, 진성 등 같이 활동하는 가수들이 다 스타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분들 열심히 하는 거 보고 나도 열심히 저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뛰어다녔죠. 열심히 한 만큼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죠. 제 노래비가 두 개 있어요. 진도엔 ‘내 사랑 진도’, 보령엔 ‘들국화’란 노래비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마음도 육체도 너무 과소비한 거예요. 결국 이게 신경성인가 봐요. 어느 날 자꾸 앞이 잘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도 막 다녔어요. 곧 나아지겠지 생각하면서요. 이게 급성으로 온 건가 봐요. 어느 날 고성 연포해수욕장 가서 무대에 올랐는데 사람이 물결로 보이는 거예요. TV 지직거리며 안 나올 때처럼요. 옆에 있는 후배들이 옷 입혀주고 가만히 무대로 저를 데려다가 놓으면 노래했죠. 사람이 앞에 있어도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나마 귀로는 음악이 들리니….”
아들에겐 엄마를 응원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삶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늘 엄마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아들에겐 엄마를 응원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삶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늘 엄마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이제는 다 보이나요?”
“치료하느라 한 2년 쉬었어요. 수술도 하고 다 나았어요. 지금은 좋아진 게 너무 감사해요.”
“듣고 보니 기적 같은 일이네요. 엄마는 이제 별걱정 없을 테니 아들은 아들의 삶을 살고 있나요?”
“30대부터는 좀 다르게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크리스천이니 선교 활동도 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정말 운 좋게도 회사 일을 하면서 회사 파견으로 봉사활동을 했어요.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서 의약품 봉사나 학교 선생 역할 하면서요. 나중엔 ‘태권도 챔피언십’이라든지 이런 활동도 했고요. 제 자비로 봉사하고 싶었던 일인데 회사에서 지원해줬으니 그 고마움 때문에라도 열심히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아무튼 저는 나름 잘 지내고 있으니 이젠 엄마만 잘되면 되죠.”
에볼라가 극성을 부리던 라이베리아에서 태권도 봉사를 하던 아들의 모습을 엄마가 조심스러워하며 보내왔습니다. 지금에야 자랑스럽지만, 당시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사진 민서연 제공

에볼라가 극성을 부리던 라이베리아에서 태권도 봉사를 하던 아들의 모습을 엄마가 조심스러워하며 보내왔습니다. 지금에야 자랑스럽지만, 당시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사진 민서연 제공

옆에서 듣고 있던 민서연 씨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저는 스타가 아니어도 노래할 수 있으니 행복해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요. 다만 내 가슴에 아린 게 딱 하나 있어요. 어린 나이에 제 하고픈 거 못하고 엄마를 위해 산 아들이 아려요. 이젠 제 짝 만나 제대로 아들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네요.”
인생 사진 촬영을 기념하기 위해 둘은 셀프 사진을 찍습니다. 이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모자의 따스한 정이 여겨집니다.

인생 사진 촬영을 기념하기 위해 둘은 셀프 사진을 찍습니다. 이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모자의 따스한 정이 여겨집니다.

이렇듯 엄마의 버팀목으로 산 아들과
위기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선 엄마는
두손을 꼭 잡은 채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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