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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을 뭉개다가...文정부 겨눈 수사 무섭게 속도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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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최형원)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장에 대한 산업부 고위관계자들의 사퇴 종용 의혹,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그 배경을 두고 검찰 안에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2019년 1월 백운규 전 장관, 이인호 전 1차관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한 뒤로 약 3년간 사건을 뭉개다 지난 25일에야 산업부 운영지원과·혁신행정담당관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동부지검이 비슷한 구조의 ‘환경부 블랙리스트’사건 결론을 보자며 수사를 유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인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8일 산업부 산하 공기업 8곳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압수수색을 했다.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 산업부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사흘만이다. 이날 세종 정부종합청사 산업부 모습. 뉴스1

산업통상자원부의 인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8일 산업부 산하 공기업 8곳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압수수색을 했다.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 산업부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사흘만이다. 이날 세종 정부종합청사 산업부 모습. 뉴스1

‘블랙리스트’ 수사 檢, 산업부 산하 공기업 8곳 압색 

서울동부지검 수사팀은 28일 한국전력 산하 자회사인 서부발전·남동발전·남부발전·중부발전 본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각각 정하황·장재원·윤종근·정창길 전 사장이 임기를 1년 4개월~2년 2개월 앞둔 2017년 9월에 산업부 고위관계자로부터 사표 제출 압박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곳이다. 수사팀은 이날 한국무역보험공사·한국지역난방공사·한국에너지공단·한국광해광업공단(옛 광물자원공사)도 압수수색했는데, 이들 기관은 이명박 정부 당시 자원외교 실무라인에 있던 당시 각 기관장에 대해 2018년 5월 대검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법으로 사표 제출을 압박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날 한 언론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기소를 지휘한 한찬식 전 서울동부지검장과 주진우 전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 등이 좌천성 인사를 이유로 2019년 8월 검찰을 떠난 뒤부터 ‘윗선’의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무혐의 종결 압박이 있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앞서 수사팀은 2019년 5월 전직 발전사 사장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면서 ‘산업부 국장이 서울 광화문 인근 한 호텔로 불러 사표 제출을 강요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 전 지검장 후임으로 부임한 서울동부지검장 중 일부 검사장이 “혐의 성립이 안 되는 사건을 왜 아직 무혐의 처분하지 않고 있느냐”고 수사팀을 압박해 수사가 지연됐다는 내용이다.

2018년 12월 김도읍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청와대 특감반 조사단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산업부 블랙리스트'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12월 김도읍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청와대 특감반 조사단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산업부 블랙리스트'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환경부 사건 보고 수사 진행하자” 

하지만 당시 서울동부지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조사도 안 한 상태에서 무혐의로 처분하라고 했다는 건 비상식적인 얘기”라며 또 다른 증언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환경부 사건은 죄가 된다고 판단해 기소해 놓고 유사한 구조의 산업부 사건은 무혐의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환경부 사건이 기소 여부를 두고 내부적으로 의견이 많이 갈린 데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례도 일관성이 없다 보니 산업부 사건은 환경부 사건 결론을 보고 진행하자는 ‘수사 유보’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수사가 너무 더디다고 비판하지만, 그 당시에는 환경부 사건에서 무죄가 나올 경우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비판이 가능하지 않았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기소를 놓고도 청와대 안팎에서 외압이 심했다”며 “이 때문에 법원 판단을 핑계로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미룬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1심 결과는 기소 후 약 2년 9개월이 지난 지난해 2월 9일에야 나왔다. 1심 재판부는 김은경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2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24일 김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되는 산하기관 임원 수를 4명으로 보고 징역 2년으로 감형했고, 대법원은 지난 1월 27일 이 같은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산업부 압수수색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유죄가 확정된 지 2개월여가 지나서야 이뤄진 것으로, 그 이전까지는 어떠한 형태의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관한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관한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 때문에 고발 주체인 국민의힘은 “이 정권이 권력형 비리수사를 얼마나 그동안 철저하게 힘으로 막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김기현 원내대표)고 비판하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새 정부와 코드 맞추기이자, 검찰개혁을 마무리하려는 민주당을 향한 위협이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용진 수석대변인)며 반발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이날 출근길에 “구체적으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압수수색을 보고받고 ‘참 빠르네’라고 표현했다”며 검찰을 우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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