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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김정숙 여사 옷값 의혹 밝힐 묘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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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미국 순방 때 김정숙 여사가 입었던 옷들. [연합뉴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미국 순방 때 김정숙 여사가 입었던 옷들. [연합뉴스]

요즘 세간의 뜨거운 관심사 중 하나가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 의혹이다. 김 여사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번 명품 옷과 핸드백에다 값비싼 장신구로 치장하고 나타나 청와대 예산을 쓴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고가의 의상을 사댈 수 없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이 언론에 난 사진으로 확인한 것만 의상 170여 벌에 가방·액세서리가 200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문제의 의상과 장신구를 어떻게 마련했는지 밝히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한국납세자연맹은 2018년 청와대를 상대로 김 여사의 의전 관련 지출과 이 돈이 특별활동비에서 나왔는지 밝히라는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라며 공개를 거부했고, 연맹은 이 문제를 법원으로 들고 가 결국 승소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판결에 불복, 항소해 더 큰 논란을 불렀다. 이로 인해 김 여사 옷값의 진실이 묻히게 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탓이다.
논리는 이렇다. 오는 5월 문 대통령 퇴임 후 문제의 자료가 '대통령 지정 기록물'이 되면 최장 15년(사생활 관련 기록은 30년)간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임 전에 항소심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없어 결국 김 여사의 옷과 액세서리 관련 의혹은 블랙홀에 빠지게 됐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김 여사 옷값의 진실은 밝힐 수 있다. 그것도 여러 방법으로. 우선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예외 조항이 존재한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거나 관할 고등법원장이 형사 사건과 관련된 중요 증거라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하면 열람과 자료 제출이 가능하다. 현재로선 국회를 통해 비밀의 뚜껑이 열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영장 쪽은 얘기가 다르다. 김 여사의 옷값 지원 등에 불법이 저질러졌다면 수사가 이뤄질 것이고, 이럴 경우 대통령 지정 기록물이라도 공개 대상이 된다.
둘째, 청와대가 의전 자료를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결정하면 행정소송을 내는 방법이 있다. 정보공개법·대통령기록물관리법 모두 안보에 위협이 될 자료는 공개하지 않게 돼 있다. 하지만 김 여사의 의상비 관련 자료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언어도단이다. 그러니 대통령 지정 기록물이 돼선 안 된다. 일각에선 삼권분립을 존중하는 법원이 행정기관인 청와대의 결정을 폭넓게 수용할 공산이 크다고 본다. 일반론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특별하다. 무엇보다 1심 재판부가 청와대 측 안보 위협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는 전례 없는 판결로 대통령 지정 기록물 결정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빚어질 경우 청와대의 패소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번 1심 판결은 '알 권리'를 우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71년 미국 뉴욕타임스는 47권에 달하는 베트남전 관련 1급 비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미 국방부는 추가 보도를 막으려 소송을 냈으나 사법부는 알 권리를 주장한 언론의 손을 들어줬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아닌 한 어떤 것도 알 권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게 민주주의의 철칙인 것이다. 그러니 김 여사의 옷값 자료를 국가 안보를 핑계로 공개하지 않는 건 말도 안 된다.
끝으로 기록물 지정이 임박했다는 점을 고려해 청와대의 공개 거부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방안도 있다. 행정소송에서의 집행정지는 민사소송의 가처분과 비슷한 개념으로, 방치하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하고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 활용하는 것이다. 승소 가능성도 있어야 한다. 이번 의전비 공개 소송은 모든 요건에 해당해 2심 재판부에 집행정지의 법적 이익을 충분히 주장해 볼 수 있다.
이념을 초월해 존경을 받았던 인권운동가 고(故) 조영래 변호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다."

청와대 항소로 진실 묻힐 수 있어 #영장·소송·집행정지로 공개 가능 #"진실을 영원히 가둘 수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