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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50조 추경, 어느 정부서 하든 재정 여건상 무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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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문 대통령, 윤 당선인,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문 대통령, 윤 당선인,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뉴시스

문 대통령·윤 당선인 역대 최장 만찬 회동

적자국채 불가피, 퍼주기 공약 집착 안 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 어제 청와대에서 2시간51분간 만찬 회동을 했다. 만남이 있기까지 신경전이 심했고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 중 가장 늦은 ‘지각 만남’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우 갈비와 비빔밥에 레드와인을 곁들이며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 중 가장 길게 자리를 함께했다. 회동에선 흉금 없는 대화가 오갔고 안보 문제를 논의했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현 정부가 집무실 용산 이전 예산에 협조하기로 하고, 양측이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만큼 협치의 계기로 발전시키기 바란다.

윤 당선인 측은 회동과 관련해 코로나19 손실 보상을 위한 추경 문제를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았다. 윤 당선인은 피해를 본 소상공인 등에게 2월 추경으로 지급한 최대 300만원에 더해 600만원 추가 지급을 공약했다. 회동에선 손실 보상 필요성에 공감하고, 실무 협의를 하기로 했다. 국가 방역 조치에 협조하다 피해를 본 이들의 손실을 보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연초 16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에 이어 또 최대 50조원 규모로 추경을 하려면 재원 마련이 과제다. 인수위로부터 추경안 준비를 요청받은 기획재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을 들여다보지만 여력이 별로 없다.

지출 구조조정은 연내 집행이 어려워진 예산이 대상인데, 연초여서 조정하기 어렵다. 정부의 재량 지출도 국방비·인건비 등을 빼면 줄일 규모가 5조~10조원에 그친다는 분석이다. 윤 당선인 측에선 34조원가량인 현 정부의 한국판 뉴딜 사업 구조조정을 검토한다지만 청년 지원이나 돌봄 격차 해소 재원 등이 포함돼 쉽지 않다. 지난해 초과 세수로 발생한 일반회계 세계잉여금 중 추경용으로 쓸 수 있는 돈도 3조원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결국 추경을 또 하려면 부족한 돈을 적자국채 발행으로 채우는 수밖에 없다. 이러니 더불어민주당이 추경은 빠를수록 좋다면서도 인수위가 규모와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으라고 떠넘기는 것이다. 연초 추경만으로 이미 올해 나라 살림 적자 전망치는 71조원까지 늘었다. 추가 추경을 하면 적자가 더 늘어난다. 국가채무도 50조원 정도가 더해지면 올해 1100조원대를 돌파할 우려가 있다. 추가 추경을 현 정부가 할지, 새 정부가 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정부가 하든 경제 여건을 무시한 돈 퍼주기는 곤란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원자재 가격과 유가가 뛰는 등 인플레이션 우려가 크다. 경기 하강 신호 속에 돈줄을 죄어야 한다는 경고를 새겨야 한다. 대선 때 후보마다 표를 노리고 퍼주기 공약을 쏟아냈다. 재원은 없는데 지키려고만 드는 건 무책임하다. 냉철한 분석을 통해 가능한 수준을 가려내고, 어렵다면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국정 책임자의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