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기생이 된 피아니스트…사진 작가가 해석한 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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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슈만 ‘카니발’의 사진 작업을 함께 한 구본숙 작가(오른쪽)와 김태형 피아니스트. [사진 구본숙]

슈만 ‘카니발’의 사진 작업을 함께 한 구본숙 작가(오른쪽)와 김태형 피아니스트. [사진 구본숙]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 25세에 쓴 ‘카니발’은 어딘가 이상하다. 21개의 짧은 음악으로 된 30분 남짓의 피아노곡인데, 축제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는가 하면 갑작스러운 인물이 등장한다. 조용한 광대 ‘피에로’에 이어 까부는 광대 ‘아를르캥’이 나타난다. 연인 클라라를 암시하는 ‘키아리나’가 나왔다가, 옛 연인 에르네스티네를 소환한다. 또 동시대 천재 음악가 ‘쇼팽’과 ‘파가니니’에선 그들의 음악을 패러디한다. 8, 9곡 사이에는 연주하기 힘든 일종의 기호만 남겨놓고 ‘스핑크스’라 이름 붙였다.

사진작가 구본숙에게 이 작품은 여러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는 이 음악을 듣고 동대문시장에 가 천을 끊어다가 직접 바느질해 의상과 소품을 만들었다. 그는 “한국의 전통 오색에서도 특별히 채도가 높은 색을 찾아 구성했다”고 했다. 제목이자 주제인 축제에 맞추기 위해서다. “카니발은 일상에서 금기시했던 것을 허용하는 기간이다. 일탈과 전복이다. 한국에서도 오색의 색동은 특별히 경사스러운 날에만 썼다. 그 쨍쨍한 색채에 대한 허용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오색을 두른 왕, 기생, 광대, 여인 등을 각 곡의 주인공으로 각각 정했다. 모델이 필요했다. “피아노곡인 만큼 피사체가 피아니스트면 좋겠다 싶어 제안했는데, 모두 흔쾌히 응해주셨다.”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8명이다.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피에로, 조재혁은 왕, 이효주는 지체 높은 여인, 정지원은 어릿광대, 김규연은 어우동 모자를 쓴 기생으로 변신했다.

구본숙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상주 사진작가로 2004~2018년 근무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김선욱·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이유라 등 수많은 연주와 인물 사진을 찍었다. 음악과 관련한 여러 사진 작업에도 참여했다. 지난해에도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3중주 1번을 주제로 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열었다. 이번 사진도 청각에 대한 시각적 해석 작업 중 하나다.

24일 시작한 구본숙의 전시 ‘카니발’은 서울 평창동 갤러리 수애뇨339에서 31일까지 계속된다. 슈만의 ‘카니발’ 중 연주가 거의 되지 않는 ‘스핑크스’를 뺀 20곡에 따르는 사진 작품 20점을 전시한다. 그는 “슈만은 조증과 울증을 오갔고, 이 곡은 조증에 가깝다. 일탈적인 증상이었지만 음악 작품이었기에 이해가 가능하다”며 “일상적으로 허용되지 않던 것들을 해보는 카니발의 해방감을 이번 작품들을 통해 전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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