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만나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놓고 담판을 지었다. 큰 틀에서 추경을 편성하는 데 합의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 회동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추경의 필요성에 대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공감을 했고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선 실무적으로 합의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물론 산 하나를 넘었을 뿐이다. 추경 필요성에 대해서만 양측이 합의했을 뿐 나머지 정해진 건 없다. 장 실장은 “(코로나 손실 보상) 예산의 규모에 대해선 구체적 얘기를 안 했다”고 밝혔다. 추경 규모를 얼마로 할 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세부 지원 대상을 어느 범위까지 할 지.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나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뉴스1

의무지출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가장 큰 걸림돌은 어디서 돈을 구해오느냐다. 지출 구조조정만으로 윤 당선인이 공약한 50조원 추경 재원을 마련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기재부 재정정보공개시스템(열린재정) 통계를 보면 올해 총지출 예산 가운데 49.9%인 303조2000억원이 의무지출에 해당한다.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같이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예산을 말한다. 법을 통째로 바꾸지 않는 한 지출 규모를 줄일 방법이 없다.
정부나 국회가 심의 과정에서 조정할 수 있는 재량지출은 올해 304조4000억원으로 전체 예산 절반(50.1%)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 예산이 ‘무늬만’ 재량지출이다. 사업 성격상 당장 줄이기가 어려운 보건ㆍ복지(75조9000억원), 국방(51조3000억원), 공공질서ㆍ안전(22조원) 등 예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해마다 ‘마른 수건 짜기’식으로 지출 구조조정을 해온 터라 여력은 더 없다.
인수위는 재량지출 가운데 문재인 정부 핵심 정책으로 꼽히는 한국판 뉴딜 예산 34조원, 탄소중립 예산 12조원을 깎아 추경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역시 말처럼 쉽지 않다.
한국판 뉴딜 사업만 해도 연구개발(R&D), 사회간접자본(SOC), 고용 등 여러 분야에 흩어져있는 기존 예산을 다시 묶어 ‘간판’만 새로 단 성격이 크다. 중복 예산이 많다. 윤 당선인이 대선 때 공약한 청년도약계좌와 비슷한 성격인 청년내일저축계좌, 청년희망적금 등 예산도 한국판 뉴딜 예산으로 분류돼 있을 정도다. 탄소중립 예산도 마찬가지다. 전기ㆍ수소차 보급 확대(3조7000억원)처럼 당장 지원을 끊기 어려운 예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추경 편성 시점도 문제다. 윤 당선인 측은 새 정부 출범 전인 4월에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 중이다. 기재부 ‘재정동향’ 보고서를 보면 최근 5년간 1~4월 총지출 진도율(연간 대비 집행 실적)은 40% 안팎을 유지해왔다. 여ㆍ야ㆍ정이 ‘속전속결’로 4월 추경에 합의한다고 해도 이미 40%가량 예산이 지출된 시점이다. 일단 지급이 시작되면 중간에 끊기 어려운 예산 사업 특성 때문에 지출 구조조정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연도별 총지출 진도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세계잉여금(전년도 쓰고 남은 세금)을 활용하고 지출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50조원 규모 2차 추경을 위해 수십조원 규모 국채 발행을 더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지출 구조조정만으로는 윤 당선인이 주장하는 50조원가량 추경 재원 마련이 불가능하다”며 “추가 국채 발행(국가채무 증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1차 추경으로 인해 이미 1075조7000억원(올해 말 기준)에 도달한 국가채무가 2차 추경 편성으로 인해 1100조원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는 상황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출 구조조정을 최대한 한다고 해도 5조~10조원 수준에 그칠 전망”이라며 “윤 당선인이 공약한 각종 감세 정책과 유류세 인하 연장 등으로 인한 ‘세입 펑크’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결국 국채 발행을 더 해야 할 텐데 가뜩이나 인플레이션(고물가)이 심한데 불 난 곳에 부채질하는 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추경 규모를 (50조원에서) 줄이는 게 맞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