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피에로ㆍ기생이 된 피아니스트…사진 작가가 해석한 축제의 음악

중앙일보

입력

슈만 '카니발'의 사진 작업을 함께 한 구본숙 작가(오른쪽)와 김태형 피아니스트. [사진 구본숙]

슈만 '카니발'의 사진 작업을 함께 한 구본숙 작가(오른쪽)와 김태형 피아니스트. [사진 구본숙]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 25세에 쓴 ‘카니발’은 어딘가 이상한 작품이다. 총 21개의 짧은 음악으로 된 30분 남짓 피아노곡인데, 축제의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는가 하면 갑작스러운 인물이 등장한다. 조용한 광대 ‘피에로’에 이어 까부는 광대 ‘아를르캥’이 나타나고, 연인 클라라를 암시하는 ‘키아리나’가 나왔다가, 옛 연인인 에르네스티네를 소환한다. 또한 동시대의 천재 음악가 ‘쇼팽’과 ‘파가니니’에서 그들의 음악을 패러디한다.

사진 작가 구본숙, 슈만 피아노곡 '카니발' 로 전시회 #피아니스트들에 오색 색동 입혀 축제의 해방감 표현 #김태형ㆍ김규연ㆍ이효주ㆍ조재혁 등 피아니트스 8인 참여

또 8곡과 9곡 사이에는 연주하기 힘든 일종의 기호만 남겨놓고 ‘스핑크스’라 이름 붙였다. 따라서 이 작품은 슈만의 정신을 지배했던 다양한 인물들의 총합이면서, 극과 극을 오갔던 그의 불안한 자아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사진작가 구본숙에게는 이 작품이 여러 종류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는 이 음악을 듣고 동대문 시장에 가서 각종 색의 천을 끊어다가 직접 바느질해서 의상과 소품을 만들었다. 그는 “한국의 전통 오색에서도 특별히 채도가 높은 색을 찾아 구성했다”고 했다. 제목이자 주제인 축제에 맞추기 위해서다. “서양의 카니발은 일상에서 금기시됐던 것들을 허용하는 기간이다. 일탈과 전복이다. 한국에서도 오색의 색동은 특별히 경사스러운 날에만 썼다. 그 쨍쨍한 색채에 대한 허용을 표현하고 싶었다.”

'카니발' 중 2번 곡인 '피에로'를 표현한 피아니스트 김태형. [사진 구본숙]

'카니발' 중 2번 곡인 '피에로'를 표현한 피아니스트 김태형. [사진 구본숙]

그렇게 오색을 두른 왕, 기생, 광대, 전통적인 여인 등을 각 21곡의 주인공으로 정했다. 이제는 모델이 필요했다. “피아노 곡인 만큼 피아니스트들이 피사체가 되면 좋겠다 싶어 제안했는데, 모두 흔쾌히 응해주셨다.”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8명이 응했다.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피에로, 조재혁은 왕, 이효주는 지체 높은 여인, 정지원은 어릿광대, 김규연은 어우동 모자를 쓴 기생으로 변신했다. 얼굴은 모두 하얗게 칠했고 음악의 이미지를 위해 정지된 포즈를 취했다.

구본숙은 한국의 음악 영재들이 대부분 거쳐 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상주 사진작가로 2004~2018년 근무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ㆍ김선욱ㆍ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ㆍ이유라 등 수많은 연주자의 연주 장면과 인물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음악과 관련된 여러 사진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음악에 있어서 한마디로 ‘풍월을 읊는 서당개’가 됐다. 어떤 곡의 연주를 들으면 여러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3중주 1번을 주제로 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열었다. 슈만 ‘카니발’에 대한 이번 사진들도 청각에 대한 시각적 해석 작업 중의 하나다.

그는 이처럼 음악의 순간을 주관적 해석으로 포착하는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20여년 동안 음악가들의 해석을 들으면서 그들의 순간, 표정 등을 포착했다. 한발 떨어진 객관적 작업이었다. 이제는 내가 주체적으로 음악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한다.”

3번 곡 '아를르캥'의 어릿광대 피아니스트 정지원. [사진 구본숙]

3번 곡 '아를르캥'의 어릿광대 피아니스트 정지원. [사진 구본숙]

11번 곡 '키아리나'의 피아니스트 이효주. [사진 구본숙]

11번 곡 '키아리나'의 피아니스트 이효주. [사진 구본숙]

24일 시작한 구본숙의 전시 ‘카니발’은 서울 평창동의 갤러리 수애뇨339에서 31일까지 계속된다. 슈만의 ‘카니발’ 중 연주가 거의 되지 않는 ‘스핑크스’를 제외한 20곡에 따르는 사진 작품 20점의 전시다. 그는 “슈만은 조증과 울증을 오갔고, 이 곡은 조증에 가깝다. 일탈적인 증상이었지만 음악 작품이었기에 이해가 가능하다”며 “일상적으로 허용되지 않던 것들을 해보는 카니발의 해방감을 이번 작품들을 통해 전하고 싶다”고 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