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생김새를 보고 이름을 척척 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째서인지 생김새와 이름이 매칭되지 않으면 맛도 먹을 때뿐이다. 그래서일까 도미 머리 구이를 먹은 기억도 한참 만에 떠올렸다. 회 맛은 또 왜 이리 가물가물한지. 흰살생선의 왕이라고 불리는 도미의 머리와 살을 먹었는데도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니, 뭔가 서글프다. 이번 기회에 도미와 안면을 좀 터볼까 한다.

눈 위는 푸른빛을 띠고 몸은 선홍색의 참돔은 바다의 여왕으로도 불린다. 사진 명정구 박사
생김새를 찾아보니 아는 얼굴이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배우 유해진이 어렵사리 낚아 올린 그분 아닌가. 그런데, 이름이 도미가 아니라 ‘참돔’이다. 낚을 때 손맛이 있고 맛도 좋아 낚시꾼들이 가장 잡고 싶어 한다는, ‘돔’이란 이름이 들어간 물고기 중 하나다. 인기 많은 사람에게 소문이 무성하듯, 참돔 역시 인터넷에 떠도는 말이 많다. 포악하고 미식을 한다거나, 추운 걸 싫어하고 후각과 시각이 뛰어나며 굵은 낚싯줄은 물지 않을 정도로 영리하다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참돔을 둘러싼 소문과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을 확인해봤다.
① 진짜 이름은?
국립수산과학원 수산자원연구센터 정재묵 박사는 “도미라는 물고기는 세상에 없다”고 대답한다. 흔히 도미‧참도미‧돔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히 ‘참돔(Red seabream)’이 맞는 이름이다.
② 참돔은 미식할까?

제주도 서귀포 연안에서 만난 멸치 사냥 중인 참돔의 모습. 사진 명정구 박사
정재묵 박사는 “미식이 아니라 탐식한다”고 대답했다. 골라 먹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먹는 잡식성이다. 미식한다는 소문의 근거로 보이는 새우 같은 갑각류도 먹지만, 갯지렁이와 말미잘도 먹는다. 그럼 포악하다는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정 박사는 “탐식성이 강한, 먹이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나온 말 같다”고 한다. 참돔 이빨은 날카롭진 않아도 단단하다. 그 이빨로 고동을 깨서 씹어먹거나 소라게를 깨고 안에 숨은 게를 잡아먹는다. 고동에 붙어사는 고동끈말미잘도 잘 먹는다고 한다. 다만 멸치와 오징어는 많이 먹지 않는데, 멸치는 빠르게 헤엄치고 오징어는 크기가 커서다. 대신 낙지와 주꾸미를 먹는다.
③ 시각과 후각이 유난히 뛰어날까?
요즘 참돔 낚시의 트렌드는 ‘타이라바’라는 가짜 미끼라고 한다. 정재묵 박사는 “추가 알록달록하고 지렁이 비슷하게 연출된 가짜 미끼로도 잘 잡히는 어류가 참돔이다. 즉 시각에 반응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후각 역시 물고기의 중요한 먹이 탐지 기능이다. 어둡고 흐린 물속에서 특히 그렇다. 정 박사는 “후각으로 먹이를 찾는 대표적인 물고기는 상어다. 반면 참돔은 보통 낮에 먹이 활동을 한다”면서 “시각과 후각은 물고기 대부분이 비슷하다. 참돔의 시각이나 후각, 상피세포의 감각이 다른 물고기보다 상당히 뛰어나다는 말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물고기의 감각에 관한 내용은 생태학자 조너선 밸컴이 쓴 『물고기는 알고 있다』에 자세히 나온다. 물고기는 물속에서도 사물을 뚜렷이 볼 수 있고 인간보다 더 많은 색을 보며, 음악을 구별할 정도로 청각에 민감하고, 어떤 물고기는 맛없는 먹이를 뱉어낸다고 한다.
④ 추운 걸 싫어할까?
수온은 물고기 성장에 중요한 요소다. 정재묵 박사는 “수온이 따뜻하면, 또는 따스한 수온이 지속하면 물고기의 메커니즘이 좋아서 성장이 빨라진다. 반대로 추우면 성장이 더뎌 먹는 양이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수온은 양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 박사는 “일본산 양식 참돔이 유명한 이유가 수온에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주로 규슈지방에서 참돔양식을 많이 한다. 수온이 따뜻한 곳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바다와 달리, 규슈 쪽은 겨울에도 수온이 많이 차가워지지 않는다. 우리 바다에서 1년 키운 거랑 일본에서 1년 키운 게 다를 수밖에 없다.”
⑤ 선홍빛은 자연산 참돔의 상징?

자연산 참돔은 선홍빛을 띠지만 나이가 들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색이 바랜다. 사진 정재묵 박사
참돔은 30~200m 수심에 산다. 어류학자이자 해양학자인 명정구 박사는 “참돔의 선홍색은 비슷한 수심에 사는 물고기의 공통점”이라고 말한다. 빛은 수면을 뚫고 내려가면서 빨간색‧주황색‧노란색 같은 긴 파장의 색부터 흡수한다. 명 박사는 “빨간색 장갑을 끼고 바닷속으로 15m만 들어가도 빨간색이 청색처럼 보인다. 100m 수심에서는 연회색이 된다. 물고기의 붉은색은 100m 수심에서 살아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색깔인 셈”이라고 말한다.
자연산에 비하면 양식 참돔은 코코아 색깔 정도로 어두운 편이다. 정재묵 박사는 “먹이도 다르지만, 수심이 다른 것도 이유다. 연안에 있는 양식장 가두리의 수심은 7~8m, 깊어야 10~15m다. 당연히 빛이 투과되는 양이 다르다.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져 색이 다르다”고 말한다. 물론 양식 기술이 좋아져 붉은빛을 내는 카로티노이드계 색소가 함유된 크릴 등의 갑각류를 먹이로 줘서 발색을 뽑지만, 아무리 잘 뽑아도 자연산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자연산 참돔이라고 색이 늘 선홍빛인 건 아니다. 명정구 박사는 “나이가 들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색이 바랜다. 또 혼인색이라고 해서 산란기를 맞은 수컷도 색이 거무튀튀하게 바뀐다”고 설명한다.
⑥ 금어기가 없다?
참돔과 같은 도밋과인 감성돔은 바닷속 50m 이내의 해조류가 있는 암초 지대나 육지와 가까운 연안에 서식해 포획에 취약하다. 감성돔과 달리 참돔은 그나마 개체 수가 있는 편이다. 참돔은 깊은 바다에서 살다가 산란할 때 연안으로 올라온다. 시기별로 서식지도 다르다. 명정구 박사는 “감성돔은 바다가 육지 쪽으로 깊이 들어와 있는 만에서 알을 낳는다. 이때 집중적으로 잡는 것을 막기 위해 5월을 금어기로 정했지만, 참돔은 산란장이 광범위하다. 제주 바다 어디쯤이란 말만 떠도는 정도로 산란장이 잘 밝혀져 있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금어기는 없다. 하지만 수산자원관리법에 따라 체장 24㎝ 이하는 방생해야 한다.
⑦ 제철은 바로 지금!
여름이 가까워지면 참돔은 알을 낳으러 얕은 연안으로 이동한다. 산란하면 몸에서 단백질, 지방 같은 영양이 빠져나간다. 정재묵 박사는 “알을 낳고 활동이 다시 왕성해져 몸을 회복하는 시점, 그러니까 다시 살을 찌운 때가 제철이다. 5~7월까지 알을 낳는다고 보면, 8~10월에 살을 찌워 11월에서 4월 정도까지 맛이 좋다. 살이 오르고 지방도 차오르는 지금이 제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물고기의 맛은 먹이나 서식환경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한다. 명정구 박사에 따르면 항구 가까이에 있는 물고기는 기름 냄새가 배고, 낙동강 하구 펄에 사는 물고기는 흙냄새가 난다고 한다. 또 연안에 사는 돌돔은 바위에 붙은 소라나 따개비를 깨 먹어서 약간의 갯내음이 있다. 명 박사는 “참돔은 산란 때만 연안에 온다. 겨울에는 수심 100m에 살며 새우나 게 등을 먹는 육식성이라 잡내가 없어 맛이 깔끔하다. 언제 먹어도 살에서 단맛이 난다. 연안 고기와 달리 살이 고급이라 그야말로 ‘참돔’이다. 참돔의 ‘참眞’은 ‘진짜’ 또는 ‘최고’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⑧ 너무 크면 회 맛 떨어질까?

어린 참돔은 체측에 붉은색 띠무늬들이 보이지만 성장하면서 없어진다. 사진 명정구 박사
참돔은 근육도 살도 단단하다. 익혀 먹어도 그렇지만 회로 먹으면 특유의 쫄깃함이 있다. 정재묵 박사는 “쫄깃함은 자연산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서 “회를 뜨자마자 살을 접으면 자연산은 탄력 때문에 바로 펴진다. 반면 양식은 근육의 단단함이 자연산보다 떨어져 탄력이 덜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참돔이 너무 크면 회 맛이 떨어진다’는 소문도 있다. 명정구 박사는 “너무 어리거나 너무 나이가 많으면 그럴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넙치(광어)도 너무 어리면 맛이 없다. 하지만 모든 생선이 다 그런 건 아니다. 나이가 들고 크기가 커야 맛있는 생선도 있다. 보통 참돔은 3~4년 정도 자라면 산란한다. 어른이 됐다는 뜻인데, 이때부터가 맛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참돔은 수명도 길다. 정재묵 박사는 “20년 가까이 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명정구 박사는 “30년, 아주 오래 살면 50년도 산다고 한다. 나이가 많은 참돔은 1m가 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⑨ ‘돔’은 모두 같은 식구일까?
낚시꾼들 사이에서 맛 좋기로 꼽는 4대 돔은 돌돔‧벵에돔‧감성돔‧참돔이라고 한다. 분류학으로 보면, 4대 돔은 같은 농어목이지만 과는 다르다. 참돔과 감성돔은 대표적인 도밋과(그 외에 황돔과 붉돔도 있다)다. 돌돔은 돌돔과, 벵에돔은 황줄껌정이과다. ‘돔’이 가시 지느러미를 뜻한다는 소문도 있는데, 명 박사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정재묵 박사 역시 “그 어원이 어디서 시작된 건지 모르겠다”면서 “다만 돔이란 이름을 가진 물고기의 공통점이 참돔처럼 강한 등지느러미와 비슷한 지느러미를 가진 경우”라고 말한다. 또는 옥돔이나 자리돔처럼 예부터 즐겨 먹은 맛있는 물고기에게 ‘돔’이란 이름을 붙여 왔다고 한다. 명정구 박사는 “본래 ‘돔’이 붙은 물고기는 살맛이 있다. 또, 잡기도 까다롭다. 감성돔은 그물을 보면 뒷걸음질 친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잡기가 까다로워 이런저런 소문이 생긴 게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자연산 참돔의 머리. 사진 국립수산과학원
참돔 얼굴은 이제 확실히 익힌 듯하다. 사실 확인을 하며 수십장의 사진을 보고, 또 생선가게에서도 참돔을 뚫어지게 보고 왔기 때문이다. 다음은 살맛 좋다는 참돔 맛을 볼 차례다. 숙성회를 시키고, 밀키트도 주문해본다. 회는 감칠맛이 좋고 부드러웠으며, 오븐에 구운 살코기는 쫄깃하고 담백하다. 과장해서 말하면 젤리처럼 씹는 맛이 좋다. 탄력과 식감으로는 머리 부분의 턱 살이 최고라던데, 머리는 아직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 옛날, 머리 구이를 시킨 것도 사실 내가 아니라 지인이었다. 고기보다 술을 더 마셨던 기억이 난다. 머리 맛은 언제쯤에야 알게 되려나.
도움말=국립수산과학원 수산자원연구센터 정재묵 박사‧해양학자 명정구(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겸직 교수)박사.
참고서적=『물고기 박사가 들려주는 신기한 바다 이야기』 『물고기는 알고 있다』
이세라 쿠킹 객원기자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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